Alicante, Torrevieja, Cartagena
스페인 동남부 지중해성 기후 지역을 따라서
대서양 바다로 이어지면서 유럽, 아프리카, 아시아 주요 세 개 대륙에 둘러싸인 지중해는 인류 문명의 요람이라고 할 수 있다. 고대시대부터 중요한 교역로로 여러 민족들의 문물이 교류되기도 하고, 문명 간 충돌이 일어나기도 한 세계사의 중심이 되는 곳이었다. 현재도 지중해에 접하고 있는 국가 및 지역이 유럽 13개국과 지브롤터, 아프리카 5개국, 아시아 3개국과 팔레스타인 가자 지구 등 21개국 2개 지역이나 된다. 2008년에는 프랑스 “사르코지” 대통령의 제안에 따라 지중해 국가와 유럽 간의 협력 강화를 목적으로 하는 지중해 연안 43개국이 중심이 된 “지중해연합”이라는 국가연합이 바르셀로나에 본부를 두고 출범하기도 하였다.
한편, 지중해와 인접한 지역들의 자연적 특징으로는 여름에는 고온 건조하고 겨울에는 온난하면서 습기가 많은 “지중해성 기후”가 나타난다는 점이다. 그러다 보니 건조한 날씨에 견딜 수 있는 포도, 올리브, 오렌지 등의 수목 농업이 발달하였다.
지중해는 크게 8개의 해역으로 나뉘는데 이중 스페인과 접하고 있는 해역은 서쪽 지브롤터에서 시작하여 스페인 해안과 모로코 해안 사이까지에 해당하는 “알보란 해” Alboran Sea가 있고, 다른 하나는 스페인 동쪽 해안과 “발레아레스 제도”를 포함한 “발레아레스 해” Balearic Sea의 두 해역이다.
어제 우리가 바르셀로나 근교에서부터 발렌시아까지 오면서 본 지중해의 해역이 “발레아레스 해”에 속하는 지역이고, 오늘 우리가 이동하면서 앞으로 볼 지중해의 해역이 “알보란 해”에 속한다. 이 “알보란 해”에는 “코스타 블랑카” Costa Blanca, “코스타 델 솔” Costa del Sol 등 지중해를 품은 스페인 최고의 휴양지역들이 해안선을 따라 있다.
스페인의 고속도로 이용료는 예상했던 것보다 비쌌다. 어제 발렌시아까지 오는데 3만 원이 약간 넘게 나왔다. 국도로 다니면 시간은 더 걸리겠지만 구석구석 볼 수 있다는 장점도 있고 해서 국도를 이용하여 다니기로 했다. 오늘의 첫 목적지 "알리칸테" Alicante를 향해 출발하면서 구글맵에 “유료도로 제외”, “고속도로 제외” 옵션을 설정했다.
국도를 따라 가는데 대형 마트인 “까르푸”가 보였다. 그곳에 들려 먹을 음식과 간식거리, 스페인 과일주 “샹그리아”, 와인 등을 잔뜩 사서 차에 실었다. 다시 지중해를 옆에 끼고 달렸다. 도로 옆으로 주황색 오렌지가 주렁주렁 달려있는 오렌지 농장들이 한동안 펼쳐졌다. 조그만 마을을 지나칠 때는 토속상품을 파는 가게가 있는 거리의 모습도 보였다. 지중해를 향해 달려오다 멈춰버린 회색의 낮은 산에 있는 마을을 가로질러 가기도 하였다. 바다가 보이는 풍광 좋은 곳을 만나면 잠시 멈춰서 쉬어갔다.
어느새 지중해의 유명한 휴양지인 “코스타 블랑카” Costa Blanca가 시작되는 해변에 도착하였다. 비수기여서인지 사람들은 많지 않고, 한가롭게 해변가를 산책하는 사람들만 보였다. 해변가 레스토랑 노천 테이블에 앉아 지중해의 햇살을 받으며 여유롭게 점심 식사를 하고 있는 노부부들의 모습이 인상 깊었다.
스페인 최고의 겨울 휴양지 “알리칸테” Alicante와 “산타 바바라 성”
다시 지중해를 끼고 황량한 토양 위에 깔린 도로를 달려 “알리칸테” Alicante의 “산타 바바라 성”Santa Barbara Castle에 도착하였다. “알리칸테”는 지중해 “알리칸테 만”에 면해 있는 항구도시로서 그리스인들이 처음으로 도시를 세운 후 여느 스페인의 도시들과 마찬 가지로 로마인과 무어인들의 지배를 받았다. 그 후 아라곤 왕국에 속하였다가 스페인의 일반적인 역사 과정을 겪은 도시이다. 내륙에 있는 마드리드의 무역항으로 이용되며, 온화한 기후를 기반으로 겨울 휴양지로 발전하였다.
“산타 바바라 성”은 9세기에 이슬람 무어인들이 해발 166m의 “베나칸틸산” 위에 지은 성이다. 바다로 들어오는 침략자를 방어하기 위하여 지은 요새로 세계에서 가장 큰 중세 성 중의 하나이다. 성까지 올라가는 데 꽤 많이 걸어야 하지만 우리는 차량으로 성 정문 앞에까지 올라갔다. 성 전체를 둘러보는데 거의 2시간 정도 걸렸다. 정문에서 요새 위까지 엘리베이터를 운행하고 있을 정도로 가파르고 거리가 있었다. 헉헉대면서 힘들게 성 위에 올라가니 제일 먼저 눈에 들어온 것은 지중해의 푸른빛 바다가 아니었다.
성벽을 등에 대고 돌 벤치에 앉아 할아버지의 어깨에 얼굴을 기댄 채 지중해의 햇살을 받고 있는 할머니의 모습이 제일 먼저 눈에 들어왔다. 아름다웠다. 그 모습이 너무 아름다워 할아버지와 할머니에게 사진 한 장 찍어도 되겠냐고 물었다. “오 케이” 하시더니 두 분이 증명사진 포즈로 자세를 바꿨다. 조금 전의 포즈가 더 아름답다고 하니까 웃으시면서 내가 처음 보았던 자세로 다시 포즈를 취해 주셨다. 할아버지가 “자기네는 부부이며…” 뭐 그런 말씀을 하셨다. 난 추호도 불륜으로 의심한 적이 없는데…… 두 분의 사랑과 건강을 빈다는 인사를 한 후 발걸음을 옮겼다. 걸으면서 생각했다. 나도 저분들의 나이가 되었을 때 꼭 지중해가 아니어도 세상 어디에선가 아내가 내 어깨에 얼굴을 기대고 따스한 햇살을 받는 그런 여행을 하고 있으면 좋겠다고……
성 위에 오르니 지중해의 시원한 바람이 올라오면서 흘렸던 땀을 식혀주었다. 모래 해변과 요트가 정박해 있는 도크, “알리칸테” 시내가 한눈에 다 보였다. 지중해의 겨울 햇살과 푸른 바다를 한 없이 눈에 담을 수 있었다. 성 안 조그만 마당 같은 곳에 있는 철로 만든 기사의 조형물에서 천년 전 치열하게 싸우던 병사들의 함성이 들려오는 것 같았다. 반면에 성벽 위에 앉아 요가 자세로 두 손을 드는 여행자의 모습을 보면서 평화로움과 편안함이 느껴졌다.
핑크 빛 호수 “또레비에하” Torrevieja
“산타 바바라 성”을 내려오니 오후 3시가 넘었다. 시간 상 원래 계획대로 오늘 일정을 다 소화할 수가 없다고 판단되어 “무르시아” Murcia 여행을 포기하였다. 핑크 빛 호수로 유명한 “또레비에하” Torrevieja로 향했다. “알리칸테”에서 그리 멀리 떨어져 있지 않은 “또레비에하”에는 전 세계에서 7개밖에 없는 핑크 호수 중의 하나와 스페인에서 가장 큰 규모의 소금 공장이 있다. 호수의 분홍빛은 7,8월이 절정이어서 우리가 갔을 때에는 약간 붉은빛만 도는 호수였다.
“또레비에하” 호수에 도착하여 도로 옆에 주차를 하는데, 네덜란드 번호판을 달은 차가 건너편 길 옆으로 주차를 하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네덜란드 노인 부부 두 분이 차에서 내렸다. 별 신경을 쓰지 않고 나는 차에서 내려 호수 쪽을 향해 걸어갔다. 호수를 배경으로 열서너 살 정도의 소녀 두 명이 태양을 배경으로 자기들끼리 사진을 찍으며 체조 자세를 연신 취하고 있었다. 자세가 너무 유연해서 잘한다고 칭찬하면서 사진 한 장을 찍자고 했더니 호수를 배경으로 두 소녀가 포즈를 취해 주었다. 멋진 사진이 나왔다.
두 소녀에게 고맙다고 인사한 뒤 호숫가 쪽을 향해 잡초 우거진 길을 가는데 젊은 두 남녀가 열렬히 키스를 하고 있는 것이 보였다. 우스운 것은 아까 주차할 때 본 네덜란드 할아버지가 젊은 두 남녀로부터 얼마 떨어지지 않은 거리에서 꼼짝하지 않고 서서 키스하고 있는 두 사람을 계속 지켜보고 있는 것이었다. 그렇게 한참을 지난 뒤 그 젊은이들도 계면쩍었는지 그 자리를 벗어나 다른 곳으로 가버렸다. 그제야 지금까지 지켜보던 할아버지도 할머니가 있는 곳으로 갔다. 그 할아버지는 무슨 이유 때문에 그렇게 오랫동안 키스하는 젊은이를 지켜보고 있었을까? 아직도 이유를 모르겠다.
호숫가에서 나와 차를 타러 가는데 멋진 포즈로 모델이 되어주었던 두 소녀가 집으로 가는 모습이 보였다. 손을 흔들어 고마움을 표현했더니 소녀들도 손을 들어 응답했다.
고대 카르타고 제2의 도시, 크루즈선 기항지 “카르타헤나” Cartagena
오늘의 마지막 목적지 “카르타헤나” Cartagena를 향했다. “카르타헤나”는 한니발의 아버지 “하밀카르 바르카”가 세우기 시작한 카르타고 제2의 도시로 “한니발”이 로마에 패하면서 로마의 통치하에 번영을 누렸던 도시이다. 앞에 바다가 수심이 깊어 스페인 남동쪽 해군기지가 있는 도시로 크루즈 기항지이기도 하다. “카르타헤나”로 가는 길에 투우의 나라 스페인답게 도로변에 있는 스페인의 상징인 소 간판도 보았고, 소의 동상도 보았다. 이름 모르는 예쁜 유대인 마을도 보였다. 해지는 스페인 동남부의 평원을 렌즈에 담기도 하면서 “카르타헤나”로 향하였다.
“카르타헤나” 광장 공용 주차장에 주차를 한 후 예약지에 적힌 주소를 보고 아파트를 찾아갔다. 가는 중에 숙소 주인인 “마리아”로부터 전화가 와서 30분 안에 도착한다고 대답한 후 적혀있는 주소를 찾아갔는데 간판이나 리셉션 등이 없었다. 집의 벨을 눌러도 반응이 없었고 예약 정보에 적혀있는 번호로 전화를 걸어도 통화가 되지 않았다. 당황스러웠다. 갑자기 ‘이거 사기에 걸려든 거 아니야!’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한번 그런 생각을 하니까 지금 처해있는 상황이 다 의심스러웠다. 마침, 근처에 있는 광장에서는 신년 행사를 하고 있었다. 이럴 때 필요한 무대뽀 정신! 행사장을 통제하고 있는 경찰관에게로 갔다.
“여행객인데 예약한 주소의 집을 찾을 수가 없다”라고 도움을 요청했다. 경찰관 한 명과 함께 집을 찾아갔지만 조금 전에 우리가 찾아갔던 바로 그 집이었다. 경찰관이 벨을 누르고, 옆에 있는 가게의 주인들에게 무언가를 물어봐도 실마리를 찾을 수가 없었다. 급기야 경찰관이 무전으로 본부와 통신을 하면서 무언가를 요청하는 것 같았다. 어떻게 된 과정인지 모르지만 본부와 경찰관이 여러 차례 무선 통신을 한 후 “집주인에게 연락이 되어 주인이 이곳으로 온다.”라고 나에게 말했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개인 주택이다 보니 간판 같은 것은 없고, 주인 마리아는 이곳이 아닌 다른 곳에 살면서 임대업을 하는 것이었다. 전화번호는 최근에 바뀌었다고 했다. 경찰관에게 감사의 인사를 한 후 공용 주차장으로 가서 차를 가지고 왔다. 잠시 고생했던 것에 비하여 아파트의 시설이 넓고, 깨끗하고, 훌륭했다.
아파트에서 저녁 식사를 한 후 거리로 나왔다. 아파트가 “카르타헤나”의 주요 명소인 크루즈 기항지 “카라코티나 해변” Cala Cortina de Cartagena에서 가까웠다. 1907년 건축가 “토마스 리코”가 스페인 전통 양식에 프랑스 디자인을 가미하여 만든 시의회 건물 “콘시스토리얼 팔라치오” Palacio Consistorial de Cartagena를 본 후 바닷가 쪽을 향해 갔다. 거리에 서있는 해군 병사 동상이 해군 기지가 있는 도시라는 것을 말해 주고 있었다. 요트 선박장 앞 거리에 있는 건물들의 조명과 동상이 묘한 대조를 이루며 “카르타헤나”의 지나온 시간들을 잠깐 동안 회고하게 하였다.
이번 여행 첫날부터 계속해서 잠들기 전에 하루 한 병씩 와인을 마시면서 정리의 시간을 가져왔다. 와인 가격이 싸기도 하거니와 8유로 정도의 가격이면 우리나라 고급 레스토랑에서 몇 만 원에 파는 정도가 되는 수준의 와인 맛이었다. 특히, Rioja 와인이 아주 맛있었다. 이날도 아침에 산 Rioja와인을 마시며 행복했던 오늘 하루에 대하여 감사의 마음으로 마무리를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