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hambra, Tarrega "알람브라 궁전의 추억"
"코란의 에덴동산을 구현한 곳" 미슐랭 가이드
1895년 프랑스의 “앙드레 미슐랭”이 자동차용 지도와 여행 정보를 책으로 만들기 시작한 안내서가 있다. 이 책이 현재는 여행과 레스토랑 분야에서 가장 오래된 역사와 높은 권위를 자랑하고 있는 가이드북인 영어로 “미슐랭 가이드 Michelin Guide”, 불어로 “기드 미슐랭 Guide Michelin”이라고 불리는 안내서이다. 안내서는 식당에 관한 정보를 제공하는 “레드 가이드”와 박물관, 자연경관 등 관광 정보를 제공하는 “그린 가이드”로 구분되어 있다. 우리가 알고 있는 별의 개수로 식당의 등급을 판정하는 유명한 안내서가 바로 이 안내서이다. 이 안내서에 “알람브라 Alhambra 궁전”은 어떻게 소개되고 있을까?
“인간이 만든 가장 위대한 예술적 창조물의 하나이다. 알람브라의 요새는 가장 놀라운 건축물의 하나이고, 궁전은 지금 세계에서 현존하는 아랍 궁전 중 최고이다. 낙원과 흐르는 물을 결합시킨 설계는 코란의 에덴동산을 구현한 곳으로 이런 곳은 지구 상 어디에도 없다.”
더 이상 어떤 찬사와 평가가 필요할까……
이제 지구 상 유일한 곳을 느끼기 위한 내 마음의 정화만이 필요했다.
“알람브라 궁전”은 입장객 수가 제한이 있고, 가장 인기 있는 “나사리 궁전”의 경우 입장 시간이 정해져 있기 때문에 반드시 사전에 인터넷으로 예약을 하는 것이 좋다.
오늘은 하루 종일 “알람브라 궁전” 안에 있을 계획 이어서 모처럼 늦잠을 즐겼다. 아침 식사 후 호텔 앞 언덕 바로 밑의 인포메이션이 있는 알람브라 궁전 출입구로 갔다. 아침 9시 인데도 예상보다 사람들이 많았지만 예약을 한 덕분에 여유롭게 입장할 수 있었다. 궁전 안 곳곳에 관람하는 순서를 화살표로 표시한 안내판을 세워 놓아 관람객들의 동선을 유도해 주고 있었다.
사이프러스 나무 길과 헤네랄리페 앞 광장
궁전 안으로 들어서니 “마치 이집트의 오벨리스크 같다”며 화가 “반 고흐”의 사랑을 받은 사이프러스 나무들이 양 옆으로 쭈욱 늘어선 길이 펼쳐졌다. 하늘을 향해 곧게 쭉쭉 뻗은 나무들 사이로는 시에라네바다 산맥을 넘어온 아침 햇살이 내려오고 있었다. 먼저 궁전 위쪽 언덕 기슭에 자리 잡은 “무하마드 3세” 때 건설된 “왕들의 여름 별장” “헤네랄리페”로 향했다. 걷는 길 맞은편으로 사이프러스 나무와 숲이 그리고 그 사이로 붉은색을 띤 궁전과 성벽들의 모습이 보였다.
아침의 신선한 공기를 맘껏 마시면서 걷다 보니 사이프러스 나무와 화분들이 도열해 있는 붉은색을 띤 벽돌로 만든 광장이 나타났다. 이곳에 앉아 미리 준비해 온 오렌지 주스를 마시며 사이프러스 나무 사이로 비치는 안달루시아의 아침 햇살을 잠시 즐겼다.
왕들의 여름 별장 "헤네랄리페"
광장 위 정원으로 가는 길목에 파란 하늘을 배경으로 서있는 오렌지 나무와 사이프러스 나무 그리고 잘 정리된 관상수들이 정원과 “헤네랄리페”로 들어가는 출입구의 역할을 하고 있었다.
“헤네랄리페”는 “건축가(알라신)의 정원”이라는 뜻으로 자연을 강조한 아랍식 정원의 정수를 보여준다고 한다. 꽃, 나무, 물이 절묘하게 어울려져 있다. 저층 정원의 연못 같은 긴 수로와 크고 작은 분수대에서 뿜어져 나오는 물줄기, 주변의 오렌지 나무와 잘 다듬어진 사이프러스 나무들이 시원한 정제된 아름다움을 연출하고 있었다.
이곳의 많은 건물과 구조물은 여름을 염두에 두고 만들었다. 덥고 건조한 여름 기후를 이겨내기 위하여 그늘, 바람, 쉴 새 없이 흐르는 분수들로 뜨거운 태양의 열기를 식혀 시원한 공간을 만들려고 한 것이다. 시에라네바다 산맥에서 이곳까지 물을 끌어와 고도차와 압력차를 이용하여 흐르는 물이 있는 공간을 만들었다.
"아세키아" 정원과 "왕비의 정원"
“헤네랄리페”에는 크게 “아세키아 정원”과 “왕비의 정원” 2개의 정원이 있는데 그중 아래에 있는 “아세키아 정원” Patio de la Acequia이 대표적인 아름다운 정원이다. 기다란 수로 양 옆의 분수에서 뿜어져 나와 아치를 그리며 떨어지는 가느다란 물줄기를 보니 기타 음악 하나가 떠올랐다.
때 맞춰 옆에 있던 아내가 “음악 동영상 보면 “Tarrega”가 여기 정도에 앉아서 연주하는 동영상이 많아요.” 하면서 기타음악 “알람브라 궁전의 추억”을 들려주었다.
제자인 “콘차 부인”에게 이곳에서 사랑의 고백을 하고 실연을 당한 뒤 만들었다는 “알람브라 궁전의 추억”.
백성의 생명과 사랑하는 궁전이 파괴되지 않기를 바라는 간절함에 치욕의 길을 선택하며 눈물 흘렸던 비운의 마지막 왕의 모습과 찢어지도록 아팠을 실연의 아픔을 그토록 애잔하고 우수 어린 표현으로 승화시킨 “Tarraga”. 두 사람의 모습이 교차되었다. 규칙적으로 떨리듯이 반복적으로 연주하는 음을 들으면서 하트를 그리며 떨어지는 가느다란 물줄기를 하염없이 바라보았다.
“아세키아 정원” 위로 올라가면 “왕비의 정원”이 나타난다. “왕비의 정원”에도 양 옆 분수에서 물줄기가 나오는 길고 짧은 수로들과 오렌지 나무, 잘 정돈된 관상수들이 다소곳한 분위기를 연출하고 있다. 담벼락 옆에 고사한 나무 한 그루가 서 있는데 이 나무와 관련하여 후궁과 간통한 귀족을 목매달아 죽였다는 이야기, 궁녀와 사랑을 나눈 군인을 목매달아 죽였다는 이야기 등 여러 이야기들이 전해온다.
"헤네랄리페" 상층 정원과 파라도르
계단을 따라 올라가 상층 정원을 만났다. 겨울철이 아니라면 각종 꽃들이 만들어내는 아름다운 언덕 정원을 볼 수 있었겠다는 아쉬움이 드는 것은 욕심일까!
“헤네랄리페” 밖으로 나가는 길을 알려주는 화살표를 따라 걸었다. 나오는 길에 보이는 경관에서 삶의 피로가 풀리는 치유의 느낌이 들었다. 길 양 옆의 나무들이 만든 울창한 터널을 지나며 나뭇잎 사이로 비치는 햇살을 맞이하기도 하였다. 수로를 옆에 끼고 있는 언덕을 내려가며 물이 흐르는 소리에 귀를 기울이기도 하였다. 사이프러스 나무 숲 사이를 걸으며 감사의 기도를 드렸다.
헤네랄리페 정원과 알람브라 궁전을 만든 무슬림 건축가들은 정원을 해치지 않으면서 늘 푸른 병풍이 되어주는 사이프러스 나무를 가로수로 선택했다고 한다. 그래서 이곳에 사이프러스 나무가 많았다.
처음 입장했던 곳까지 와서 다리를 건너 성의 본채로 갔다. 가는 길 양 옆으로 잘 다듬어진 사이프러스 나무들이 그늘을 만들어주고 있었다. 걷다 보니 알람브라 궁전의 파라도르 “파라도르 데 그라나다 Parador de Granada”가 나타났다. 잠시 쉬기도 할 겸 안으로 들어가 커피숍의 야외 테이블에 앉아 건너편으로 보이는 헤네랄리페를 감상하며 여유 있는 시간을 보냈다. 중세 교회 느낌이 나는 “파라도르 데 그라나다”는 15세기 이슬람의 모스크를 프란시스코 수도원으로 개조하여 사용하여 왔는데, 그 수도원을 다시 개조해서 1945년에 호텔로 개장 한 곳이라고 한다. 야외 커피숍 앞이 식물원식 정원인데 겨울이어서 꽃들이 피지 않아 잠깐 둘러만 보았다.
"석류"를 의미하는 "그라나다", 군사요새 "알카사바", "카를로스 5세 궁전"
알람브라 궁전이 있는 “그라나다 Granada”라는 도시의 이름은 “석류”를 의미하는 스페인어 “그라나다”에서 유래한 것으로 추정된다. 이 지방에서 석류가 많이 생산되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으로 도시의 문장에도 석류가 그려져 있다. 무어인이 세운 “그라나다 왕국”의 수도였다가 이슬람 최후의 왕국으로 1492년 1월 가톨릭에 항복한 곳이다.
호텔, 박물관 등이 있는 거리를 지나 “카를로스 5세 궁전”의 맞은편 “알카사바 Alcazaba”로 갔다. “알카사바”는 알람브라 궁전 중 가장 오래된 부분으로 9세기경 짓기 시작한 군사적 성곽 및 이슬람 양식의 요새이다. 성벽을 따라 순찰 통로가 있으며, 총 24개의 탑 중 현재는 “벨라의 탑” 등 4개의 탑만 남아있다. “벨라의 탑”은 요새의 중앙에 있는 탑으로 성 내부와 알바이신 지구, 그라나다 구도심 등을 한눈에 조망할 수 있었다.
알카사바를 나와 “카를로스 5세”가 알람브라 궁전의 일부를 헐어내고 르네상스 양식으로 지은 “카를로스 5세 궁전”으로 갔다. 기둥 32개가 중심의 회랑을 받치도록 되어있는 2층 구조로 1층은 도리아식, 2층은 이오니아식 기둥으로 만들었다. 특이한 점은 외관은 사각형이지만 내부는 원형 구조로 되어 있다는 점이다. 내부에서 소리의 울림이 좋아 매년 국제 음악제가 이곳에서 열린다고 한다. 2층에서는 가톨릭 성화 등의 전시회가 열리고 있었고, 1층에서는 이슬람 문화 유적 전시회가 열리고 있었다.
알람브라 궁전의 백미 "나사리에스 궁전"
예약한 시간에 맞추어 궁전 앞에서 기다리다 드디어 알람브라 궁전의 백미 “나사리에스 궁전 Palacio Nazaries”에 들어섰다. “나사리에스 궁전”의 첫 번째 방인 “메수아르 홀”은 토후들이 국왕을 알현하기 위하여 대기했던 방으로 벽면에 조각되어 있는 것은 꾸란의 경구들이라고 한다.
“메수아르 홀”을 나오자 국왕을 알현하던 “황금의 방”으로 이어졌다. 안뜰 중앙에 분수가 있고, 아치가 안뜰을 중심으로 회랑을 만들고 있다. 입구 회랑 아치는 식물을 기하학적으로 재구성한 화려한 아라베스크 문양들이 새겨져 있다. 이슬람은 동물이나 인간에 대한 각종 문양을 새기지 않고 오로지 식물만을 형상화한 것이 특징이라고 한다.
알람브라 궁전을 대표하는 명소로 “나사리에스 궁전”의 “아라야네스 정원”을 뽑을 수 있다. 직사각형 연못을 중심으로 남쪽으로는 국왕이 거처하던 “코마레스 홀”이 북쪽으로는 그라나다 시내의 전경을 볼 수 있는 망루 겸 접견실인 “코마레스 탑”이 있다. 연못에 비친 하늘과 건축물 등 너무나 아름다운 곳이어서 그곳에 한참 동안 머무르며 한 곳 한 곳을 두 눈에 담았다.
“코마레스 탑“ 안에는 “Salon de Comares”라는 큰 홀이 있다. 이 홀이 “나스르 왕국”의 통치자들이 그라나다를 떠나기 전 가톨릭 사절들과 협상을 진행 한 곳이라고 한다.
“아리야네스 정원”과 함께 나사리에스 궁전의 대표적 명소라고 할 수 있는 곳이 “사자의 안뜰 Patio de los Leones”이다. 중앙에 유대인이 아랍의 왕에게 선물했다는 12마리의 흰 대리석 사자상이 떠 받치고 있는 분수가 있고, 분수를 중심으로 네 방향에 있는 건물들과 수로로 연결되어 있다. 정원을 중심으로 둘러싸고 있는 건물들을 받치고 있는 대리석의 기둥은 모두 124개라고 한다.
“사자의 안뜰” 한 편으로 설화석고로 만든 돔형 천정이 정교하고 화려하게 새겨져 마치 별자리를 연상시켜 눈길을 끌었다. 특히, 천정 아래에 문양으로 장식한 창문을 두어 외부에서 들어온 빛이 천정을 더욱 빛나게 하고 있었다. 궁전에서 가장 아름다운 방 중 하나인 “아벤세라헤스의 방”에 있는 아치의 화려함과 아름다움도 눈길을 끌었다.
또 다른 가장 아름다운 방의 하나인 왕이 총애했던 여인이 사용했을 것으로 추정되는 “두 자매의 방”에도 천정 중앙에 장식이 별자리를 연상시켰다. 가득 채운 정교한 문양이 하늘에서 쏟아지는 별을 보듯이 아름다웠다.
궁전의 방들과 회랑을 돌아 “나사리에스 궁전의 끝에 다다르니 중정의 정원이 보였다. 귀족들의 정원이었다고 하는데 과거의 영광을 다 잊은 채 고즈넉한 느낌을 주는 정원이었다.
궁 밖으로 나와 파르탈 정원에서 잠시 숨을 돌리면서 정신없이 감동하고 눈이 호강했던 시간들을 차분히 정리해보는 쉼을 가졌다. 물에 비친 건물과 오렌지 나무, 아치형 회랑을 가진 건물들의 풍경이 이제는 정감 있게 다가왔다.
천천히 매표소 출입구 쪽을 향해 걸었다. 그리고, 아침에 “헤네랄리페”로 갈 때 들렸던 사람들이 잘 오지 않는 산책로로 갔다. 산책로 벤치에서 폐장시간인 오후 6시까지 앉아 있으면서 맞은편으로 보이는 “알람브라 궁전”의 해 넘어가는 풍경을 바라보았다.
이날 밤도 와인 한잔과 함께 아내와 “Tarrega”의 “알람브라 궁전의 추억” 기타음악을 몇 번이고 반복해 들으면서 “꿈같은 알람브라 궁전의 하루”를 마무리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