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밍웨이와 릴케의 도시 Ronda, Malaga, Mijas
세계 3위의 와인 생산국 스페인의 와인
스페인은 유럽에서 가장 넓은 포도밭을 가지고 있지만 와인의 생산량은 프랑스, 이탈리아에 이어 세계 3위에 해당하는 생산국이다. 넓은 포도밭에 비하여 와인의 생산량이 3위인 이유는 토양이 건조하여 포도나무 당 간격이 다른 국가에 비해 3배 이상 넓기 때문이다. 또한, 이슬람 무어인에 의하여 와인의 생산과 소비가 금지되었던 역사도 기술 측면에서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15세기 가톨릭 왕국 때부터 활성화되기 시작한 스페인의 와인 산업은 19세기에 이르러 체계화되기 시작하였다.
대표적 와인으로 Unico 우니꼬, L’Ermita 레미르따, Pingus 핑구스를 스페인의 3대 와인으로 꼽는다.
종류에 따라 Vino Viejo: 올드 와인, Tinto: 레드 와인(Vino Tinto), Blanco: 화이트 와인(Vino Blanco), Rosado: 로제 와인(Vino Rosado)으로 구분한다.
숙성 기간에 따라서는 Joven (아주 잠깐 숙성시키거나, 오크통 숙성을 거치지 않은 제품) → Crienza (오크통 숙성 6개월을 포함하여 최소 2년 이상 숙성 후 출시한 제품) → Reserva (오크통 숙성 12개월을 포함하여 최소 3년 이상 숙성 후 출시한 제품) → Gran Reserva (오크통 숙성 18개월을 포함하여 최소 5년 이상 숙성 후 출시한 제품)으로 나눈다.
마트, 상점 등에서 싼 제품들도 많이 팔지만 이번 여행에서는 보통 7€ ~ 8€ 가격 정도의 Crienza급에 해당하는 와인을 주로 마셨다. 우리나라 레스토랑에서 4만 원 이상의 가격에 판매하는 와인들에 해당하는 수준의 맛 이었다. 특히 스페인의 대표 와인 브랜드인 “리오하 Rioja” 제품을 주로 즐겼다.
리오하 Rioja는 1950년대 후반부터 와인의 품질 향상을 위하여 노력을 시작한 스페인 와인의 대표 산지로 프랑스 보르도에서 약 320여 km 떨어진 곳에 있는 지역이다. 보르도와 기후, 재배조건 등도 비슷하면서 “스페인의 보르도”라고 불리는 곳이다. 스페인을 여행하면 꼭 가격이 싸면서도 맛의 질이 우수한 대중적인 “리오하 Rioja” 와인을 맛보는 것도 즐거움을 더해주는 한 가지가 될 것이다.
새벽에 번개와 함께 천둥이 치면서 비가 세차게 내렸다. 천둥소리에 깨어 베란다에 나가 비 내리는 바다를 한참 동안 지켜보았다. 아침이 밝아오기 시작하면서 언제 그랬냐는 듯이 비는 잦아들기 시작했다. “파라도르”를 최초로 이용하는 고객에게 제공하는 무료 식사 쿠폰으로 아침 식사를 한 후 사람 없는 해변가를 둘이 걸었다. 첫 경험한 네르하의 파라도르는 현대식으로 리모델링한 시설이어서 휴양하기에 편한 곳이라는 느낌이 들었다.
차이코프스키 "피아노 협주곡 1번"의 감동
파라도르에서 나와 오늘 일정의 첫 번째 목적지인 “말라가 Malaga”를 향해 출발하였다. “말라가” 역시 “코스타 델 솔 Costa del sol”을 끼고 있는 도시로 “알메리아” “프리힐리아나” “네르하” ”미하스” “말라가” “지브롤터”에 이르는 300km의 해안도로는 드라이브를 하기에 좋은 아름다운 풍광의 도로이다. 비 온 뒤의 상큼한 공기와 지중해에서 반사되는 반짝이는 햇살이 싱그러움을 주어 여행의 발걸음을 가볍게 해주었다.
“자...... 이제 우리 음악을 들으면서 갑시다.” 옆에 앉아있던 아내가 운전하면서 지루하지 말라고 음악을 틀어 주었다.
클래식 음악에서 피아노 협주곡의 “황제”라 불리는 베토벤의 “피아노 협주곡 5번”을 능가하는 것으로 평가받기도 하는 차이코프스키의 “피아노 협주곡 1번”이었다. 손 열음이 협연하는……
호른이 드높게 울리며 웅장하게 시작되는 첫 도입 부분부터 오케스트라와 피아노의 서로 밀고 당기는 힘차고 화려하면서도 강렬한 연주가 들리자 가슴이 뛰기 시작했다. 피아노의 힘 있는 독주가 클라이맥스를 향하여 치달아 오른 후 한차례 숨 고르기를 마쳤다. 짧은 순간을 쉬었다 이어진 바이올린과 피아노의 유려한 연주에서 나오는 감미롭고 아름다운 협연 소리에 그만 나도 모르게 눈물이 두 뺨을 타고 흘러내렸다.
지중해가 보이는 자연의 풍경과 그 풍경 속에서 행복에 빠진 나의 마음을 적나라하게 음으로 표현한 음악의 아름다움에 감동되었다. 이렇게 아름다운 자연을 보고, 아름다운 음악을 들을 수 있다는 것에 감사했다. 행복했다.
"말라가 Malaga"의 "히브랄파로 성 Gibralfaro"
피카소의 고장이기도 한 “말라가 Malaga”는 BC 12세기에 페니키아인이 건설한 후 카르타고, 로마, 서고트, 이슬람 국가 등의 식민지 생활을 해온 이베리아 반도에서 주요한 요충지이다. 지중해 해변을 낀 휴양지로 바르셀로나에 이어 스페인에서 두 번째로 큰 항구도시이며, 안달루시아 지방에서도 세비야에 이어 두 번째로 큰 도시이다.
먼저 “말라가” 시내가 한눈에 내려다 보이는 “히브랄파로 성 Gibralfaro”으로 갔다. 페니키아인들이 세운 등대가 있던 자리에 “그라나다 왕국” 때인 14세기에 지어진 성이다. 이슬람 양식의 요새인 알카사바 요새와 붙어있는 높은 성벽과 울창한 소나무로 둘러쳐져 있는 성이었다. 이곳에서 항구에 들어와 있는 크루즈 선과 투우 경기장, 대성당 등 말라가 시의 전경을 천천히 여유롭게 감상하였다.
성에서 내려와 “말라가 해변 공원”에 가려고 시내 중심에 있는 공영주차장에 차를 주차한 후 시내를 걸어서 둘러보았다. 거리가 한산했다. 커다란 글자 조형물이 이곳의 유명한 관광명소라고 하여 찾아가려 했으나 찾지 못해 포기하고, “말라가”에서 서쪽으로 30km 정도 떨어져 있는 “미하스 Mijas”로 향했다.
또 하나의 하얀 마을 "미하스 Mijas"
“미하스”는 “프리힐리아나”처럼 산기슭에 있는 작은 하얀 마을이다. “미하스”의 수호 성녀인 “페냐 성녀”가 모셔져 있는 천연동굴 성당으로 유명한 곳인데, 예쁜 거리와 하얀 마을을 보러 많은 관광객들이 오는 곳이기도 하다. 또 하나 유럽의 부자들 별장이 많이 있어 전망대에서 바라 본 경관도 한몫을 한다.
헤밍웨이와 릴케의 도시 "론다 Ronda"
시인 “릴케”는 말했다. ‘나는 꿈의 도시를 찾아 헤맷다. 그러다 마침내 찾은 곳이 론다다.’라고
헤밍웨이는 론다의 풍경에 대해 ‘사랑하는 사람과 로맨틱한 시간을 보내기 좋은 곳’으로 말하면서 론다에서 집필한 그의 작품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에서 이런 이야기를 한다. ‘이 세상에 너 하나뿐이라서 널 사랑한 게 아니라, 널 사랑하다 보니 이 세상에 너 하나뿐이다.’
“론다 Ronda”는 릴케와 헤밍웨이 때문에 여행 전부터 내 가슴속에서 무언가를 부풀게 했던 도시였다. 그리고 론다로 가면서 접했던 풍경은 부풀은 나의 가슴을 더욱 설레게 했다. 언제부터인지 아내가 틀어 준 “그라나도스 Enrique Granados”의 안달루시아 지방을 묘사한 ‘스페인 무곡 제 5번 “안달루시아”’가 기타 음악으로 들려오고 있었다.
"론다"는 6세기 켈트족이 “아룬다 Arunda”라는 이름의 마을을 세우면서 역사가 시작되었다. 론다에 도착해서 미리 예약해둔 숙소를 찾아가 짐을 푼 후 걸어서 론다의 중심 “에스파냐 광장”을 향해 갔다. 제일 먼저 투우 경기장이 보였다. “론다 투우장 Plaza de Toros de Ronda”은 세비야 투우장 다음으로 오래된 투우장이자 스페인 원형 투우장의 모델이 된 곳이라고 한다. 1787년에 만들어진 약 6,000명을 수용할 수 있는 규모이다. 투우장 정문 앞에는 론다 출신이면서 3,000여 마리의 소와 싸웠다는 유명한 투우사 Cayetano Ordonez와 Antonio Ordonez의 동상이 서 있다. 물론 소의 힘찬 모습을 동상으로 만들어 세워 놓기도 했다. 론다의 투우장은 피카소가 말년의 헤밍웨이와 함께 투우를 즐긴 곳으로도 유명하다.
"론다"의 상징 "누에보 다리"
투우장에서 조금 더 걸어가니 “에스파냐 광장” 바로 앞에 “과달레빈 강”의 오랜 침식작용에 의해 생긴 “엘 타호“ 협곡에 놓인 “누에보 다리”가 나타났다. 론다의 구 시가지와 신 시가지를 가로지르는 120m 깊이의 협곡에 놓인 이 다리는 스페인의 건축가인 “마르틴 데 알데우엘라 Jose Martin de Aldehuela”가 설계하여 40년의 공사 기간을 거쳐 1793년에 완공한 다리이다. 론다의 상징물이 된 이 다리는 시가지를 연결하는 세 개의 다리 중 가장 늦게 완공되어 새로운 다리라는 의미의 누에보라는 이름을 붙였다고 한다. 다리를 만든 건축가는 다리 측면에 자기 이름과 완공 날짜를 새기려다 떨어져 죽었다는 웃지 못할 이야기도 있다. 다리 한가운데에 보이는 작은 창문은 과거 감옥으로 사용했던 곳이라는데, '정말 탈옥은 꿈도 못 꾸었겠구나'하는 생각이 들었다.
멀리 과달레빈 강이 흐르는 안달루시아 지방의 평야와 사방을 둘러싼 산들이 보이고, 가까이 누에보 다리와 하얀 마을이 보이는 전망대를 끼고 “론다 파라도르”가 자리 잡고 있다. 파라도르를 끼고 길을 따라 가면 헤밍웨이의 산책로가 이어지는데, 아마 이 길을 걸으면서 그가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를 구상하였을 것이다. 우리도 따라서 걸어 보았지만…….
헤밍웨이의 산책로 끝에는 “알라메다 델 타호 공원 Alameda del Tajo”이 있어 쉬어가기가 좋았다.
헤밍웨이와 릴케가 "론다"를 사랑한 이유
협곡 밑에까지 내려가 누에보 다리를 올려다본 후 다시 론다의 중심 “에스파냐 광장”으로 갔다. 숙소로 돌아가는 길에 밤의 론다 거리를 얼핏 걸었지만 단지 조용한 작은 도시라는 생각만 들었다. 그날 밤 잠자리에서도 뭔지 모를 아쉬움이 자꾸 들었다. 다음날 아침 우리는 일찍 일어나 다시 “에스파냐 광장”과 “누에보 다리”로 갔다. 다시 한번 천천히 하나하나 둘러보면서 두 눈에 담는 시간을 가졌다. 마침 주말의 이른 아침이어서 다니는 사람과 차들도 많지 않았다. 그때 이 작은 마을의 조용함과 자연에서 나오는 공기의 맑고 서늘함이 가슴을 흩고 지나갔다.
‘이것이었네…… 헤밍웨이가, 릴케가 사랑한 도시의 이유. 맘껏 사유하고, 사랑할 수 있는…… 세상을, 사람을 안을 수 있는 자연과 사람들이 있는 곳……’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행복에 대한 감동으로 시작하여 아쉬움을 남기지 않고 가득 채우면서 깨달음으로 마무리한 감사의 하루가 또 차곡차곡 쌓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