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 day. Andaluza를 따라 작은 마을 순례

Setenil, Grazalema, Arcos de la Prontera

by Arista Seo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음악과 함께한 아름다운 밤


[영화 #1]

“엘비라 마디간”은 서커스단의 줄 타는 소녀다. 어느 날 귀족 출신 젊은 장교 “식스틴”과 사랑에 빠진다. 전쟁에 대한 혐오감과 무상함에 빠진 “식스틴”은 아내와 두 아이를 버린 채 탈영을 한다. “엘비라”도 부모와 서커스로 쌓아온 명성을 버리고 “식스틴”과 함께 사랑의 도피 생활에 들어간다. 자유를 찾아 아름다운 사랑을 나누는 두 사람이지만 현실은 점점 최악이 되어갔다.

그들은 돈이 얼마 남았나 수시로 세어 보기도 하고, 허기에 지쳐 토끼풀을 뜯어먹기도 한다. 두 사람의 신분 차이는 합법적 결혼이라는 절차도 허락되지 않았고 오직 사랑만 있는 현실에 부딪치게 되었다. 결국 남자는 여자의 머리에 총구를 겨누지만 차마 쏘지 못하고 있을 때 어디선가 나비 한 마리가 나풀나풀 날아왔다. 그녀는 나비처럼 가벼운 몸짓으로 그 나비를 쫓아갔다. 그녀가 나비를 막 잡으려는 순간 화면은 멈추고 두발의 총성이 들린다.


실화가 바탕인 한 폭의 수채화 같은 영화 “엘비라 마디간”의 줄거리이다. 이 영화의 백미는 모든 걸 포근하게 감싸주는 “모차르트 피아노 협주곡 21번 2악장”의 아름다운 선율이다. 이 음악을 들으면 햇살 반짝이는 고요한 호수 위에서 미끄러지듯 배를 타고 있는 그림을 보았을 때의 느낌이 든다. 그리고 풀밭에서 나비를 잡으러 뛰어다니는 “엘비라”의 순수한 모습이 떠오른다.

지휘자가 악단에게 음악을 연주할 때 눈물이 날 만큼 아름답게 연주하기를 요청하는 음악.


[이야기 #1]

“우아한 영국 장미”라는 찬사를 받았던 영국이 낳은 천재 첼리스트 “쟈클린 뒤프레 Jacqueline du pre”. 가족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유태인 피아니스트이자 지휘자인 “다니엘 바렌보임”과 사랑에 빠져 결혼하고 유대교로 개종까지 했던 비련의 여인. 26세의 한창나이에 “다발성 경화증”이라는 희귀병에 걸려 남편에게도 버림받고 14년간의 투병 생활 끝에 비극적 죽음을 맞이했던 비련의 첼리스트이다. 자신을 버린 남편을 생각하며 세상을 향해 “어떻게 하면 삶을 견딜 수 있죠”라고 물으면서 끝까지 웃음을 지키려 했던 그녀에게 동시대의 음악가 첼리스트가 발견하여 헌정한 “오펜바흐 Offenbach”의 곡 “쟈클린의 눈물 Les larmes de Jacqueline”


묵직한 저음에서 끓어오르는 슬픔의 선율과 가슴 저미는 현의 애잔한 선율이 슬픔을 어떻게 이렇게 다양하고, 깊게, 높게 표현할 수 있는지……

슬픔이 얼마큼 아름다울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정말 아름다운 첼로곡.


["아르코스 데 라 프론테라" 파라도르 #1]

“아르코스 데 라 프론테라 Arcos de la Prontera”의 파라도르는 이슬람풍의 리모델링한 건물이다. 성 안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해 있으면서 작은 광장을 가운데 두고 로마시대에 지어진 성당과 시청, 파라도르가 둘러싸고 있는 형태이다. 해가 지고 난 뒤 비가 내리기 시작하더니 밤새도록 비가 내렸다. 비 내리는 광장의 풍경이 가로등 불빛의 난사로 더 아름다워 보였다.


창가의 커튼을 걷고 비 오는 광장을 바라보며 와인 한잔과 함께 “모차르트 피아노 협주곡 21번 2악장”과 “쟈클린의 눈물”을 들었다. 비 내리는 밤의 광장과 고풍스러운 방의 분위기, 가슴 저리도록 아름다운 음악, 달콤한 와인 그리고 사랑하는 사람. 나에게 주어진 이 시간의 모든 것이 벅차도록 아름다웠다.

"아르코스 데 라 프론테라" 파라도르 내부

"안달루시아" 지방의 작은 마을 순례 "세테닐 Setenil"


창 밖을 보며 오늘 지나온 하루를 되돌아보았다. 전날의 부족함을 채우기 위해 아침 일찍 숙소를 나와 론다 Ronda의 하나하나를 다시 담는 시간으로 오늘을 시작하였다. 일찍부터 시작한 까닭에 작은 마을을 찾아 떠나는 오늘 일정도 다른 날 일정 시작에 비해 늦지 않았다. 오늘은 안달루시아 지방에 있는 알려지지 않은 작은 마을들을 따라가는 여행이다.

안달루시아 지방 작은 마을 찾아가는 길의 풍경


먼저 론다에서 북쪽 방향에 있는 “세테닐 Setenil de las Bodegas”이라는 작은 마을을 향해 출발하였다. 세테닐은 아몬드, 포도, 올리브 등을 생산하는 인구 3,000명의 작은 농촌이다. 이곳에 한여름의 더위를 이기기 위하여 절벽 아래 암벽의 동굴에 집을 지은 특이한 형태의 건물이 있다고 해서 가보기로 했다. 마을 언덕 위에서 마을 전체의 모습을 본 후 암벽 동굴 집으로 내려갔다. 대부분 2층은 주택이고 1층은 가게로 운영을 하고 있었다.

레스토랑 안을 기웃거리니 안에서 맥주를 마시고 있던 사람들이 들어오라고 나에게 손짓을 하였다. 안으로 들어가 사진 한 장을 찍자고 하니 기꺼이 자세들을 잡아 주었다. 레스토랑 밖에서 볼 때에는 좀 거칠어 보였는데 사진을 찍을 때 웃는 모습들을 보니 순박해 보였다. 왠지 정이 가는 미소들이었다.

세테닐 마을 전경과 암벽 동굴집

"그라살레마 자연공원"의 중심 그라살레마 Grazalema


오늘 숙박이 예약되어 있는 “아르코스 데 라 프론테라 Arcos de la Prontera”의 파라도르까지 가려면 “그라살레마 산맥 자연공원 Sierra de Grazalema Natural Park”을 우회하거나 넘어가야 했다. 우리는 세테닐에서 “자연공원 산맥”에 퍼져 있는 9개의 하얀 마을 중 가장 중심지인 “그라살레마 Grazalema”를 거쳐 넘어가기로 했다.

“그라살레마”는 “자연공원”에 속하는 “피나르 산맥 Sierra del Pinar” 기슭의 구릉 지대에 형성되어 있는 산악도시였다. 구불구불 돌아 깊은 산속으로 들어가니 붉은 지붕과 하얀 건물이 주변의 자연경관과 잘 어울리는 제법 규모가 있는 마을이 나타났다.

"그라살레마" 마을 모습

눈 내리는 산 길


다음 목적지인 “자하라 Zahara de la Siera”를 향했다. 산 위로 올라가니 제법 눈발이 날리기 시작하였다. 내비게이션의 안내에 따라가는 데, 도로를 바리케이드로 막아 놓은 것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한 판단하기 어려운 애매한 상태로 바리케이드가 놓여 있었다. 그냥 바리케이드를 지나쳐 내비게이션의 안내에 따라갔다. 아까보다 더 많은 눈이 내리기 시작했다. 이때 차에 내장되어 있는 내비게이션에서도 “눈길 조심”이라는 안내 문구가 떴다. 그런데 느낌이 좀 이상했다.


“이상하네…… 왜 다니는 차가 하나도 안보이지…… 아무리 산길이어도 우리만 가네…… “

“그러네요……” 그때서야 아내도 느낌이 이상했는지 좀 긴장을 하는 것 같았다.

“그리고 밖에 사람들은 다 걸어서 가는데…… 이 길 차 못 다니는 길 아닌가…… 왜 걷는 사람들이 우리 차 안을 보는 눈 빛이 좀 이상한 느낌이 드네……”

“우리 다시 돌아가요. 사람들이 자꾸 쳐다보는 게 좀 이상한 생각이 드네요.”

“에이…… 내비게이션에서 안내하는 거 보면 잘못 온 거 같지는 않고, 일요일이라서 여기 사람들이 가족들과 등산을 와서 이렇게 걷는 거 같기도 하고……” 긴장하면서 이런 이야기를 하며 10여분을 더 가는데 백미러로 경찰차가 오는 것이 보였다.

“어…… 경찰이다.” 아내는 잔뜩 긴장하기 시작했다.


차를 세우라는 경찰의 수신호를 보고 차를 세웠다. 차에서 내리니 경찰이 이 길로 가면 안 된다고 하면서 눈 때문에 위험해서 통제를 하였다고 한다. 그럼 어떻게 해야 하냐고 물으니 돌아서 다시 왔던 길로 되돌아 가라고 했다. 산길이 좁아서 차를 그곳에서는 돌릴 수가 없었다. 경찰이 따라오라고 하면서 경찰차가 앞서서 에스코트를 해주었다. 조금 더 가니 차를 돌릴 수 있는 넓은 공간의 도로가 나왔다. 그곳에서 차를 돌려서 올 때 보았던 바리케이드가 놓여있던 갈림길까지 갔다. 갈림길에서 차를 세우고 잠시 쉬면서 어쩔 수 없이 목적지로 가는 경로를 변경했다.

산 길 도로에 눈오는 모습


“자하라”의 고성을 포기하고 “베나마호마 Benamahoma”를 거쳐 가는 경로로 변경하였다. 가는 길 곳곳에 양 떼와 산기슭에 모여있는 작은 마을들이 보였다. 화려하거나 특별한 볼거리가 있는 여행 일정은 아니었지만 안달루시아 지방 고유의 정취를 그대로 간직하고 있는 소박하고 평화로운 분위기를 느낄 수 있는 일정이었다.

변경된 경로로 가는 길 풍경

가톨릭의 최전선 마을 "아르코스 데 라 프론테라"


“아르코스 데 라 프론테라 Arcos de la Prontera”는 “과달레테강 Guadaleta”이 삼면을 둘러싸고 있는 구릉지대에 있어 높은 곳에서 내려다보는 경관이 아름다운 “최전방에 있는 마을”이라는 뜻의 이름을 가진 곳이다. 11세기부터 무어인의 터전이었던 까닭에 아직도 이슬람풍의 하얀 건물들이 많이 남아 있었다. 13세기 가톨릭이 무어인을 몰아내면서 무어인과 경계를 짓는 지역이었다고 한다.

파라도르는 성문으로 들어가 제일 높은 곳에 위치해 있었다. 오래된 시가지이다 보니 골목길이 좁았다. 성문을 통과하면서 일방통행 길이 시작되었다. 일방통행 길을 따라 조금 더 올라가는데 도저히 차가 통과할 수 없을 것 같은 좁은 길이 나타났다. 아무리 생각해봐도 차가 긁힐 것 만 같았다. 마침 우리 뒤에 오는 차들도 보이지 않았다. 비상등을 켜고 후진을 하기 시작했다. 뒤에서 오던 차 한 대가 다행히 카페 앞 넓은 곳에서 기다리고 있다가 우리 차 옆으로 추월해서 갔다.


‘어휴, 도대체 저 좁은 길을 어떻게 통과할려고 가는거지……’ 라고 생각하는데, 걸어서 골목을 내려오며 우리가 후진하는 모습을 보고 있던 젊은이가 차의 창문을 두드렸다. 차 창문을 내리니 젊은이가 나에게 물었다.

“어디를 가려고 그러는데 그렇게 후진을 하니?”

“나, 파라도르 예약해서 거기로 가야 되는데 저기 좁은 골목을 차가 통과하지를 못할 것 같아서……”

“아니야. 충분히 통과할 수 있어…...”

“아니야. 나 운전 잘하는데…… 저기로 가면 양쪽 사이드 미러가 다 닿을 거야”

“에이, 만약 닿을 거 같으면 사이드 미러를 접으면 되잖아.. 나 믿고 한번 해봐”

‘헉! 그렇네. 접으면 될 거 같은데…… 벌써 내 뒤에 오던 차들도 두 대나 통과하였고……’ 급 자신감이 생겼다.

“오케이. 쌩큐!!!”


다시 시도해 좁은 골목을 통과하여 파라도르에 도착했다. 체크인을 하면서 프런트의 여직원에게 차 운전해서 여기까지 오기 힘들었다고 이야기하니 웃으면서 처음 오는 사람들은 그렇다고 대답했다. 모른 척 그냥 가도 될 텐데 일부러 이야기해 준 아까의 젊은이가 정말 고마웠다.

구시가지 일방통행로의 좁은 길


파라도르 내부가 고풍스러웠다. 다른 곳에 못가고 이곳에서만 쉬어도 충분히 힐링이 될 수 있을 것 같았다. 파라도르의 테라스에서 전방에 펼쳐져있는 평야가 한눈에 다 내려다 보였다. 특히, 해 질 녘 노을이 너무나 아름다웠다. 파라도르에서 나오면 바로 옆에 로마시대에 세웠다는 성당이 세월의 이끼를 낀 채 서 있었다. 파라도르를 나와 구시가지를 걸으면서 하얀마을들을 둘러보았다. 해가 질 무렵이 되어 노을을 보기 위하여 다시 파라도르로 돌아왔다. 파라도르 테라스에서 아름다운 스페인의 붉은빛 노을과 야경을 감상하였다.

파라도르에서 바라 본 풍경들


잠자리에 들기 위하여 커튼을 칠 때까지도 비는 계속 내리고 있었다. 아름다운 밤이 점점 깊어져 가는데 아름다운 선율의 “모차르트 피아노 협주곡 21번 2악장”과 “쟈클린의 눈물”은 그때까지도 계속해서 반복 재생되면서 들려왔다.

오늘도 아름다운 시간들과 아름다운 사람들을 만날 수 있었음에 감사했다. 내 영혼에 아름다운 날의 추억으로 새겨진 또 하나의 하루가 생겼다.





여행 12일차 차량 이동 경로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