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rdoba
유럽에는 왜 이렇게 소매치기가 많을까!
이번 여름에 친구들과 함께 자동차 여행을 다녀온 아내의 동료가 포르투갈에서 차의 창문을 부수고 짐을 다 훔쳐가 버린 황당한 사고를 당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자세한 정황은 모르지만 유럽 여행을 가면 늘 등장하는 골칫거리가 소매치기와 도난 사고에 대한 염려이다.
나의 경우에도 파리 지하철에서, 로마 지하철과 거리에서 소매치기의 손이 내 주머니로 막 들어오는 것을 경험한 적이 있다. 이때는 그래도 다행히 피해를 당하는 것까지는 막을 수 있었다.
그러다 결국 이 년 전 이탈리아 여행 마지막 날 로마의 버스 안에서 대 여섯 명의 십 대 집시 무리에게 꽤 많은 현금과 아내의 핸드폰을 절취당하고 말았다. 그나마 여행의 마지막 날 이어서 다행이었지, 여행 초반에 그런 일을 당했다면 그 여행의 느낌이 어땠을까! 생각만 해도 끔찍하다.
도대체 왜 유럽에는 이렇게 소매치기나 도난사고들이 많을까? 어떻게 해야 이런 사고들을 당하지 않을 수 있을까? 결론부터 이야기한다면 본인 스스로 주의하고 조심해야 하는 것 외에는 방법이 없다.
차는 반드시 유료주차장에 주차하되 가능하면 건물 안이나 지하 주차장의 시설을 이용하는 것이 좋다. 부득이 길가 나 외부에 있는 주차장을 이용할 때에는 사람이 많이 다니는 자리에 주차를 하도록 한다.
현금은 가능하면 조금씩 꼭 필요한 금액만 가지고 다니되, 만약 큰 금액을 몸에 지녀야 할 경우에는 여러 곳으로 분산하여 보관하는 방법이 있다. 백 팩이나 가방은 꼭 앞으로 메어야 한다. 만약 등 뒤로 메게 되면 그 순간부터 가방 안에 있는 물건은 내 것이 아니라 모두의 것이 되는 것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사람이 많은 곳에서는 나에게 접근해오는 사람이 없는지 유의해서 주변을 경계해야 한다. 우리 부부도 이번 여행을 하는 동안 사람이 많은 곳에서는 “사주경계”라고 서로에게 말해 주면서 각별히 신경을 썼었다. – (로마에서 당한 학습효과) 자꾸 주변을 경계하듯 두리번거려서 보이지 않는 스틸러들에게 ‘아~ 제 네 들이 뭔가 의식하고 있네’라는 느낌을 주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만약, 불의의 사고로 소매치기나 도난을 당하게 되면 현장 근처에 있는 파출소에서 “police report”를 받도록 한다. 현장 근처에서 “police report”를 받을 수 없을 경우에는 사건 일시와 경위, 피해 현황 등을 메모해 두었다가 공항에 있는 공항 경찰서에서 “police report”를 받을 수 있다. (로마에서 그렇게 했다) “여행자 보험”에 가입하여 피해를 보상받을 때 반드시 필요하다.
근본 원인은 죄의식 없는 집시들의 의식이 문제
유럽의 3대 소매치기 국가는 프랑스, 이태리, 스페인이다. 주로 불법 체류자나 집시들이 소매치기 범죄를 저지르는데, 소매치기를 하다가 잡혀도 사람을 다치게 하지 않으면 대개 훈방이나 구류 며칠 정도로 처벌이 약하다고 한다. 그래서 유럽에서 소매치기가 없어지지 않는다는 이야기가 있다. 또 개인 사생활 보호 때문에 CC TV 등 감시 시스템이 부족해서 그렇다는 이야기도 있다.
하지만 무엇보다 더 근본적인 원인은 범죄 의식이 없는 집시들의 죄의식이다. 그들은 “하나님이 나눠 쓰라고 했는데 네가 다 가져가서 내가 좀 가져간다.”라고 하는 죄책감이나 범죄 의식이 전혀 없는 혐오스러운 의식구조를 가지고 있는데 이것이 근본적 문제다.
집시 Gipsy가 도대체 뭐길래......
집시(Gipsy)의 기원은 인도 펀잡 Punjab 지방에서 쫓겨난 민족이라고 한다. 일부가 이집트를 거쳐 스페인으로, 일부는 발칸반도를 거쳐 헝가리, 체코로, 다른 일부는 독일, 프랑스 등지에 흩어져서 살고 있다. 불어로 “보헤미안 Bohemian”, 이탈리아나 스페인어로 “히타노 Gitano”, 독일어로 “치고이너 Zigeuner”라고 부른다. 집시 Gipsy는 영국인들이 유럽으로 온 이집트인으로 잘못 알아 부른데서 연유했다고 한다. 자신들을 집시라고 부르는 것을 싫어하며 스스로 “롬 Rom”이라고 하는데 “평원의 방랑자”에서 온 것으로 평원의 주인이라는 뜻이다. 이들만의 언어도 있는데 이를 “로마니어”라고 한다.
집시를 주인공으로 하는 예술 작품으로는 스페인 출신 바이올리니스트이자 작곡가인 “사라사테 Pablo de Sarasate”의 “치고이너 바이젠 Zigeunerweisen(집시의 노래)” “세르반테스”의 “집시여인” “비제 Bizet”의 “카르멘 Carmen” “빅토르 위고”의 “노틀담 드 파리”를 대표적으로 꼽을 수 있다. 영화로는 “에밀 쿠스트리차” 감독의 “집시의 시간 Time of the Gypsies”이라는 영화가 있다. 집시들의 고유한 생활과 사고방식을 충실하게 재현하였을 뿐만 아니라 대사들까지 전부 집시 언어로 만들어져 영화를 통해 오늘날 집시들이 사는 모습을 볼 수가 있다.
중세 3대 문화 도시 코르도바 Cordoba
어젯밤부터 내린 비는 아침에도 촉촉이 내리고 있었다. 오늘은 이슬람이 안달루시아 지방을 지배하고 있을 당시 콘스탄티노플, 바그다드와 함께 3대 문화도시로 불렸던 “코르도바 Cordoba”를 여행하는 일정이다. 비 내리는 “아르코스 데 라 프론테라” 고성의 좁은 골목길을 내려와 안달루시아 지방의 중앙을 향해 달렸다. 코르도바로 가는 오전 내내 비가 내렸다 안 내렸다를 반복했다.
코르도바는 카르타고의 식민지로 역사를 시작하여 로마 속주의 중심도시로 역할을 하였다. 그리고 이슬람의 지배기에 수도가 되어 당시 인구가 50만이 넘는 중세 문화의 중심지가 되었다. 이 시기에 코르도바는 “콘비베시아 Convivencia”라고 하여 이슬람, 유대, 가톨릭이 서로 인정하고 함께 공동체를 형성하는 공존의 문명을 처음으로 꽃 피웠다. 물론 수적으로 소수였던 이슬람이 현실적 이유로 선택한 정책이고 분명 차별이 존재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상대를 인정하면서도 독자적인 정체성을 유지할 수 있었던 정책이었다. 관용이 번영을 불러온 역사적 사례라고 하겠다.
코르도바는 구시가지 전체가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어 있다. 우리가 예약한 호텔이 구시가지와 신시가지의 경계에 위치해 있어 걸어서 구시가지 전체를 돌아다닐 수 있었다. 도시 전체의 분위기가 왠지 무게감 있고 진중한 느낌이 드는 도시였다.
코르도바의 상징 메스키타 Mezquita
먼저 코르도바의 제일 명소 “메스키타 Mezquita”로 갔다. 코르도바 메스키타는 이슬람 문화와 가톨릭 문화의 융합을 상징하는 곳이다. 즉 한 공간에 두 개의 종교 사원이 공존하는 건축물이다. 로마인과 서고트인이 세운 교회에 이슬람이 회교 사원을 세웠고, 다시 가톨릭이 점령하면서 개조하기 시작하여 메스키타 한가운데 기둥 4줄을 뜯어 내고 그 자리에 대성당을 만든 구조물이다. 크게 기도소, 정원, 종탑 세 부분으로 구성되어 있다. 기도소는 2만 5천 명이 한꺼번에 기도할 수 있는 규모로 “이중 말발굽 아치” 모양을 벽돌 크기의 석회암과 붉은 벽돌이 교대로 쌓아 장식하였다. 처음에는 아치 기둥이 1000개가 넘었으나 성당을 세우면서 150여 개의 기둥을 없앴다고 한다. 그리고 천장 곳곳에 원형 돔을 두었다.
정원은 기도소 들어가기 전에 몸과 마음을 씻기 위한 분수가 설치되어 있다. 분수대 주위에는 올리브, 오렌지 나무로 빛을 가려주고 정원 주위에 아치 회랑을 설치하였다.
종탑은 별도의 입장료를 내야 올라갈 수 있는데 그곳에 오르면 과달키비르 강과 코르도바 역사 지구를 한눈에 볼 수 있다.
코르도바 로마교
메스키타 외벽을 따라 길을 걷다 라파엘 상이 보이는 곳에서 남쪽으로 가면 코르도바 알카사르가 위치해 있다. 이사벨 여왕과 페르난도 왕이 이곳에 거주하면서 레콘키스타를 수행한 것으로 유명한 곳이다. 천천히 걸어 알카사르의 정문으로 갔으나 정기휴무일이어서 문이 닫혀 있었다. 아쉬움을 뒤로하고 알카사르에서 멀지 않은 곳에 있는 로마교로 향했다.
1세기에 만들어진 길이 233m의 로마교는 웅장한 느낌이 드는, 16개의 아치로 만들어져 있다. 여러 차례 증개축을 해서 현재도 보행자 전용 다리로 사용하고 있었다. 다리 끝에 칼라오라 탑이 있는데 다리와 알카사르를 지키기 위해 세워졌다고 한다. 다리 가운데에 코르도바의 수호성인인 “성 라파엘”의 동상이 있다는 것이 좀 색다른 느낌이 들었다. 이 다리에 있는 상을 포함하여 코르도바 시내에는 모두 12개의 라파엘상이 있다고 한다. “푸엔테 문”을 향해 돌아오는 다리 가운데서 바라본 메스키타 방향의 풍경에서 오래된 시간의 향기가 느껴졌다.
트리운포 광장, 라파엘 탑과 푸엔테 문
"트리운포 광장 Triunfo” 에서 메스키타가 있는 누런 벽을 기대고 로마교 다리를 보니 바로 오른쪽 아래로 라파엘 기념탑이 보이고, 로마교로 가는 방향에 웅장한 4개의 기둥으로 되어있는 “푸엔테 문 Puerta del Puente”이 보였다. 작은 광장이지만 정감이 가는 공간이었다.
유대인 지구, 포트로 광장, 코레데라 광장
코르도바의 구시가지 구석구석을 다녔다. 메스키타를 중심으로 이슬람 지구와 유대인 지구로 나뉜 길을 따라 걷다가 벽과 지붕에 꽃 화분이 걸려있는 일명 “꽃 길”이라 불리는 유대인 지구의 골목을 걸었다. 소설 “돈키호테”에 등장하는 여관 “포사다 델 포트로 Posada del Potro”가 있는 “포트로 광장 Plaza del Potro”에서는 이곳저곳을 기웃거리기도 하였다. 과거 투우장이 있던 자리이며, 소설 “카르멘”의 배경이 된 곳인 코레테라 광장 Plaza de la Corredera에서는 스페인 오렌지로 갈아 만든 주스를 마시며 광장의 해 질 녘 풍경을 담았다.
주변으로 웅장한 건물들과 광장 가운데 기마상이 있는 코르도바 상업의 중심지 “텐디야스 광장 Plaza de las Tendillas”에 오니 사람들로 붐비는 것이 느껴졌다. 이곳 역시 건축물들이 멋졌다. 역시 스페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호텔로 돌아오는 길에서 느껴지는 도시의 정경이 차분하면서도 품격이 있어 보였다. 길을 걸으며 마주치는 사람들에게서 언젠가 과거의 영광이 다시 돌아올 것이라는 희망을 가슴에 담고 하루하루 진중하게 살아가고 있다는 느낌이 와 닿았다.
2,000년이라는 시간의 무게가 코르도바에서 마주쳤던 한 사람 한 사람에게 스며있는 듯한 느낌. 그건 어쩌면 과거의 영광만을 꿈꾸는 단순함이 아니라 코르도바라는 공동체가 지금까지 축적시켜온 자부심이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