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째 날>
내 인생의 버킷 리스트 "세비야 스페인 광장"
꽤 오래전 TV 방송에 나오는 삼성전자 광고를 보고 놀랬던 적이 있다. 그 당시 신인 연기자였던 “김 태희”가 스페인 전통 의상을 입고 이국적인 풍경의 광장에서 플라멩코 춤을 추는 광고 영상이었다. “김 태희”의 미모도 예뻤지만 그보다도 ‘도대체 세상에 저렇게 아름다운 광장이 어디지?’라고 배경이 된 광장이 더 궁금했다. 그리고 그곳이 스페인의 세비야에 있는 “스페인 광장”이라는 사실을 알고 난 뒤부터 “세비야의 스페인 광장”은 죽기 전에 꼭 가봐야 될 나의 버킷 리스트 중 한 곳이 되었다. 오늘은 그 세비야로 가는 날이다.
우리의 세비야 입성을 환영이라도 하듯 여행을 시작한 후 처음으로 하루 종일 비가 내렸다. 어제 코르도바에서 세비야에 예약한 아파트의 “사라”와 전화 통화를 하여 오늘 만날 시간을 정하고 안내해줄 직원의 전화번호를 받았었다. 아파트 앞에 도착해 전화를 하니 10여분 후 직원이 와서 어려움 없이 입실을 하였다. 오래된 집의 흔적들이 마음에 들었다. 간단하게 점심을 직접 해서 먹은 후 아파트를 나왔다. 아파트 현관을 나오자마자 바로 길 건너편에서 젊은 남녀가 우산 속에서 키스를 하고 있는 광경이 보였다. 비 내리는 우산 속에서의 그 모습이 예뻐 보였다. ‘아! 세비야는 처음부터 이렇게 모든 게 다 내 마음에 쏙 들지……’
"과달키비르 강"이 흐르는 네 번째로 큰 도시
세비야는 인구 약 70만의 내륙 항구도시로 스페인에서 네 번째로 큰 도시이다. ”과달키비르 강”이 도시를 흐르고 있는데, 우리가 묵었던 아파트가 강의 바로 옆이어서 세비야의 구시가지를 걸어서 다 다닐 수가 있었다.
이슬람이 점령하였던 시기에 “아이스비리야 Isbiliya”로 불렸던 세비야는 이사벨 여왕과 페르난도 왕이 이슬람으로부터 되찾은 뒤에는 무역의 중심지로 성장하여 16세기에는 스페인에서 인구가 가장 많은 도시가 되기도 하였다. 그 후 16세기 후반부터 근처에 있는 “카디스”에 항이 개발되면서 17세기 중반부터 서서히 내리막길을 걷게 되었다.
이 멋진 도시 세비야를 배경으로 하는 예술 작품들로는 “로시니”의 “세비야의 이발사”, “비제”의 “카르멘”, “모차르트”의 “피가로의 결혼””돈 조바니”를 꼽을 수 있으며 영화 “스타워즈 에피소드 2 ‘클론의 습격’” 편에서 배경 도시로 나오기도 하였다.
비 내리는 “과달키비르 강”가를 걸었다. 강 건너편으로 “황금의 탑”이 보였다. 이슬람의 “알모하데 왕조”가 적의 침입을 감시하기 위한 망루로 사용하려고 1220년에 세운 탑이다. 탑 윗부분이 황금색으로 되어있어 “황금의 탑”으로 불리며 현재는 해양박물관으로 사용되고 있다고 한다. 탑 위에 오르면 과달키비르 강과 세비야 시내를 볼 수 있으며 마젤란이 이곳에서 세계일주 항해를 떠난 역사적 의미를 지닌 곳이다.
세 번째로 큰 세비야 대성당과 히랄다 탑
마차와 트램이 지나다니는 비 오는 세비야의 거리를 감상하면서 “세비야 대성당”에 먼저 갔다. 1987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세비야 대성당 Catedral de Sevilla은 세상에서 세 번째로 큰 성당이다. 원래 그 자리에 있던 이슬람 사원을 허물고 1402년부터 1528년까지 거의 1세기에 걸쳐서 건축되었다. 고딕 양식과 신고딕 양식, 르네상스 양식이 혼재되었으며 성당 안에는 페르난도 왕의 무덤이 있다. 성당 안에 들어서자 한 손에 방패를, 한 손에 종려나무를 들고 있는 청동 조각상이 보였다. 가톨릭 세력의 최후 승리에 대한 믿음을 뜻한다고 하는데 성당 옆 “히랄다 탑”의 종루에도 똑같은 것이 있다.
성당은 스페인의 옛 왕국 “레온” “카스티야” “나바라” “아라곤”의 왕을 상징하는 조각상이 관을 매고 있는 “콜럼버스”의 묘가 있어 더 유명하기도 하다. 성당의 크기와 내부의 화려함에 정말 놀라웠고, 성화와 금으로 장식된 각종 장식물들도 전시되어 있었다. 성당 안을 구경하면서 너무 많은 금으로 화려하게 장식되어 있는 내부와 전시된 물품들에 좀 질린다는 느낌이 들었다.
대성당 앞에 히랄다 탑 Giralda 이 있었다. 높이 104m가 되는 종루로 꼭대기 전망대에 올라가 대성당을 포함한 세비야 시내를 보았다. 탑 안의 올라가는 통로를 계단이 아니라 경사로 만든 이유가 왕이 말을 타고 종루에 올라가기 위해서라는 생각을 하니 성당 안에서 질렸던 느낌이 비웃음으로 변했다.
히랄다 탑에서 내려와 세비야의 전형적인 모습을 띠고 있는 골목길을 따라 “세비야 알카사르”로 갔다. 여행안내 책의 정보에 오후 4시 이후에는 “알카사르” 입장이 무료라고 되어있어 근처를 더 돌아다니며 세비야를 즐겼다. 알카사르 앞에 탑이 하나 있어 자세히 보니 “이사벨 여왕”의 동상이 서 있는 탑이었다. 이곳 세비야뿐만 아니라 스페인 곳곳에서 제일 많은 동상이 “이사밸 여왕”의 동상이다. 스페인 역사에서 이사벨 여왕이 차지하는 비중을 알 수 있는 사실이다.
작은 알람브라 "세비야 알카사르"
오후 4시가 되어 알카사르 입구로 가니 무료입장이 없다고 한다. 허위 정보가 아까운 1시간여를 보내게 했다. 우리 외에 몇몇 한국인 여행객들도 아깝게 시간을 보낸 것 같았다.
“세비야 알카사르 Real Alcazar”는 요새로 건설되었지만 궁전의 성격도 가지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작은 알람브라”라는 별명이 왜 생겼는지 이해할 수 있었다. 알람브라 궁전과 마찬가지로 왕의 처소, 알현실, 가족들의 처소, 대사의 방 등과 중정 형식의 건물에 아름다운 정원을 가지고 있다. 벽돌을 주로 사용하였으며, 섬세한 문양의 타일 패턴을 벽과 바닥에 장식하는 무데하르 양식을 살리면서 르네상스 양식의 기둥과 아치들을 절묘하게 결합한 빛나는 건축물이었다.
알카사르에 들어가면 정면에 제일 먼저 보이는 건물이 이슬람 군주가 사용했던 “돈 페드로 궁전”으로 이곳 알카사르가 가톨릭의 회복 후에도 왕궁으로서의 역할을 계속하였으며, 이슬람이 사용했던 건물을 그대로 유지하면서 일부 건물을 증축해 오늘에 이르게 한 것으로 짐작하게 하였다.
비 오는 정원의 아름다움이 마치 영화 “인디에나 존스” 시리즈에서나 나올 법한 아름다움과 원시, 신비를 보여주고 있었다. 너무나 아름답고 좋아서 계단을 몇 번이고 오르락내리락하면서 사진에 담았다. ‘아~ 좀 더 일찍 들어왔으면 더 좋았을 텐데……’ 여행안내 책의 허위 정보가 더 미워졌다.
알카사르가 문을 닫는 6시가 조금 넘어서 거의 마지막 손님으로 아쉬움을 달래며 알카사르를 나왔다. 해 질 녘 겨울비 내리는 세비야 거리를 우산에 의지한 채 걸었다. 걸으면서 본 거리의 건물과 동상들이 만들어내는 풍경이 내리는 비 때문에 더 아름다워 보였다. 그렇게 세비야의 겨울비 내리는 거리의 아름다움에 취한 채 멀지 않은 곳에 있는 “스페인 광장”까지 갔다.
아! 스페인 광장
1929년 “라틴 아메리카 박람회”를 위하여 20세기 스페인 최고의 건축가 “아니발 곤살레스”에 의해 지어진 세비야의 스페인 광장은 반달 모양의 수로로 둘러싸인 광장이었다. 광장을 둘러싼 건물 양쪽에 탑이 있고, 건물 앞으로 물이 흐르게 되어있다. 전체적으로 채색 타일과 갈색 벽돌이 조화를 이루고 있는 가운데 광장을 바라보는 건물 벽에는 스페인의 역사적 사건들을 모자이크로 장식해 놓았다. 아치형 다리를 건너 건물 아래로 가면 이슬람풍의 타일로 만든 벤치에 스페인 58개 도시의 이름과 그 도시를 상징할만한 역사적 사건이 각 벤치에 타일로 장식되어 있다. 타일의 선명함과 아름다움에 그저 감탄사만 나왔다.
‘스페인 광장에 가면 소매치기를 조심하라고 했는데……’ 오늘은 비가 와서 사람도 거의 없고, 광장에 고인 빗물에 반사되어 보이는 건물의 아름다움을 어떻게 말로 형용할 수가 없었다. 해가 지고 어둑해지면서 들어오기 시작하는 주황색 조명이 광장 바닥 타일의 선을 더욱 아름답게 해주었다. 수로의 물에 반사되는 주황색 가로등과 건물 그리고 아치형 다리, 타일들……. 광장 가운데 분수에서 나오는 초록, 분홍, 보라의 물줄기들……. 건물의 2층에 올라가 광장을 내려다보았다.
‘아~ 감사합니다. 저희를 위하여 비를 내려 이렇게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광장을 눈과 가슴에 담게 해주셔서……’
잠자리에 들기 전 아내와 와인 한잔을 하면서 그때까지도 남아있던 오늘의 세비야와 스페인 광장이 준 감동의 여운을 함께 나누었다. 내일은 세비야와 스페인 광장이 어떤 감동으로 우리에게 다가올 것인지 설레며 한편으로는 기대도 되었다.
가슴의 콩닥콩닥 뛰는 소리를 느끼며 세비야의 첫날은 이렇게 감동과 행복으로 가득한 마무리를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