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sboa
I "전자 감응식 유료도로"와 포르투갈의 역사
“금방 톨게이트 나오니까 잔돈 준비해 주세요.”
“옙, 알겠습니다.”
도로 옆에 세워져 있는 동전 그림 표지판을 본 후 아내에게 동전 준비를 부탁했다. 그런데 한참을 가도 요금을 받는 톨게이트가 나타나지 않았다. 이상하다고 생각하며 가는데 또 동전 그림 표지판이 보였다. 마찬가지로 한참을 가도 요금을 받는 톨게이트가 보이지 않았다. 그때서야 포르투갈에 “전자감응식 유료도로”가 있다는 이야기가 생각났다.
포르투갈의 “전자감응식 유료도로”는 일부 특정 구간에서만 요금을 징수하는데 사전에 인터넷으로 이용 신청을 해 지정한 통장에서 자동으로 요금을 인출해 가도록 하는 시스템이다. 우리나라 하이패스 시스템과 달리 유료도로 구간의 처음이나 끝에 게이트가 설치되어 있지 않았다. 사전에 인터넷으로 이용 신청을 하지 않은 경우에는 도로를 이용하고 난 뒤 우체국에 가서 이용 요금을 납부하면 되게끔 되어있었다.
고속도로를 주로 이용해서 포르투갈 최대의 항구 도시이자 수도인 리스본 Lisboa으로 갔다.
포르투갈의 어원은 대서양과 도루강이 만나는 지역의 ‘포르투스(항구) 칼레(따뜻한)’마을이라고 한다. 3세기까지는 로마의 지배를 받았고, 그 후 서고트족을 거쳐 이슬람의 지배를 받던 지역에 9세기경 북부 ‘갈라시아’의 장군 페레스가 이슬람과 싸워 “페레스 공작령”을 세우면서 시작되었다. 당시 “레콩키스타”의 선봉이었던 카스티야 왕국의 왕이 “엔리케”에게 이슬람과의 전투에서 공을 치하하여 “포르토” 지방을 하사하면서 1093년 “포르투칼레 공국”을 설립한 것이 포르투갈의 기원이라고 한다.
그 후 1143년 아들 “아폰수 1세”가 완전 독립을 선언하고, 1249년 아랍 세력을 완전히 몰아냈다. 포르투갈의 역사를 보면 후계자가 없어 1580년부터 1640년까지 60년간 에스파냐의 왕이 통치했던 시기를 제외하면 1,000년 가까이 독립 국가로 역사를 이어왔다. 그리고 포르투갈 역사의 최 전성기는 15세기 대항해 시대였다.
I 제로니무스 수도원과 벨렝 탑
대항해 시대의 주역 “헨리크 왕자”와 “바스코다가마”의 세계일주 기념으로 건축된 “제로니무스 수도원 Mosteiro dos Jeronimos”을 먼저 들렸다. 1983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이 수도원은 웅장한 회랑의 긴 복도와 동식물, 산호를 모티브로 한 장식이 특징이다. 또한 천장과 창문 등을 독특한 “마뉴엘 양식”으로 건축하였다. 성당 안에는 바스코다가마의 무덤이 있다.
수도원 맞은편으로 공원과 광장이 잘 조성되어 있었다. 수도원에서 나와 맥도널드 햄버거로 점심을 한 후 광장에 있는 “발견의 탑”을 둘러보았다. 정류장 근처 가판대에서 “리스본 일일 교통카드”를 사서 버스를 타고 “벨렝 탑 Belem Tower”으로 갔다. 탑은 1515년부터 21년까지 7년간 지어진 마뉴엘 양식의 3층 탑으로 리스본의 상징 건축물이다. 탑에서 멀리 세계에서 두 번째로 긴 2.2km의 현수교인 “4월 25일” 다리도 보였다. 다리는 본래 “살라자르 다리”라던 이름을 1974년 4월 25일 독재를 몰아낸 무혈혁명을 기념하여 바꿨다고 한다.
I 리스본행 야간열차
벨렝 탑에서 나와 “타구스 강”을 따라 걸었다.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 모르는 기차가 옆으로 달렸다. 분명 고속철도처럼 깔끔해 보이지도 않은데 왠지 모르게 달리는 기차의 모습이 정감스러워 자꾸 쳐다보게 되었다. 영화 “리스본 특급” “리스본행 야간열차”가 생각나서 그랬는지 모르겠다.
리스본의 거리 모습과 풍경을 맛보고 싶으면 영화 “리스본행 야간열차”를 추천한다. 독재 시절 민주화 운동을 했던 젊은이들의 사랑과 인생을 추적해가는 영화인데 리스본의 거리 구석구석과 명소들에서 올 로케를 해서 그대로의 리스본을 영상으로 볼 수 있는 영화이다. 이 한 편의 영화로 리스본을 다 보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다. 덤으로 스위스 베른의 풍경도 볼 수 있다.
I 28번 트램의 추억
주차장에서 다시 우리 차를 타고 리스본 언덕 꼭대기에 있는 “상 조르즈 성 St. George’s Castle”으로 갔다. 성으로 가는 길에 “리스본 대성당”의 모습도 보였다. 성 입구에 도착하니 주차장에 이미 차가 꽉 차서 주차를 할 수가 없었다. 어쩔 수 없이 다시 언덕을 내려와 “알파모 Alfamo 지구” 의 “코메르시우 광장 Praca do Comercio”을 지나 근처 상가의 지하 주차장에 주차를 했다. 그리고 28번 트램을 타기 위하여 다시 버스를 타고 “코메르시우 광장” 건너편 번화가로 갔다.
리스본에는 1930년대부터 운행한 낡은 1칸짜리 트램이 있다. 총 5개의 노선-12번, 15번, 18번, 25번, 28번- 을 운행하는데 이중 노란색 28번 노선 트램이 가장 인기가 좋다. 빛바랜 도심의 언덕을 넘어 주요 관광지와 좁은 골목 등을 다니며 리스본의 경치를 가장 즐길 수 있는 노선이기 때문이다. 28번 노선은 38개 정류장을 편도 1시간에 걸쳐서 다니고 있다.
28번 트램을 꼭 타고 싶었다. 버스에서 내려 28번 트램 타는 곳을 찾지 못해 헤매다가 결국 경찰의 안내를 받아 28번 트램을 탈 수 있었다. 주변은 이미 어두워져 있었다. 트램을 타고 “상 조르즈 성”도 지나쳐 한참을 갔다. 어딘지 모르는 곳에서 내린 후 왔던 길로 되돌아가는 트램을 다시 탔다. 좁은 골목을 구부구불 잘 가던 트램이 갑자기 멈췄다. 운전사가 무선으로 몇 번 통화를 하더니 태연하게 기다린다. 트램 안의 승객 중 몇 명은 내려서 걸어갔다. 그리고 남은 사람들은 아무 일도 없다는 듯 조용히 그 자리에서 기다린다. 20여분이 지난 후 트램이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다. 트램 가는 길에 서 있는 앰뷸런스가 환자를 태우는 동안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다. 오래된 빛으로 채색된 도시 뒷골목의 풍경이 이렇게 여유로울지 몰랐다.
I 절제된 낭만과 파두의 서정성
“상 조르즈 성 St. George’s Castle” 구경을 포기하고 “포르타스 도 솔 Portas do Sol” 광장에 내렸다. 바로 옆으로 “조르즈 성”의 야경이 보였다. 광장에서는 버스킹의 음악에 맞춰 여러 사람들이 춤을 추고 있었다. 왠지 모르게 그 광경에서 절제된 표출이 느껴졌다. 그건 리스본 아니 포르투갈의 색깔이었다. 향수와 동경, 슬픔, 외로움 등의 정서가 담겨있는 “파두 Fado”에서 느껴지는 서정성과 같은 색깔.
광장에서 리스본 대성당 방향으로 내려오면서 리스본 도시의 야경을 즐겼다. 리스본 대성당도 문을 닫아 안으로 들어갈 수가 없었다. “리스본 파두” 공연을 보러 갈까 고민하다 파두 공연은 “포르토” 에서 보기로 했다. 이 결정이 여행을 마친 후 이번 여행에서 몇 안되는 후회의 결정이 될 줄 이때까지는 몰랐다. “코메르시우 광장”까지 걸으며 짧아서 너무나 아쉬운 리스본에서의 시간을 마지막까지 짜냈다.
운명, 숙명을 뜻하는 라틴어 Fatum에서 유래된 포르투갈 대중음악 “파두 Fado”는 우리와 비슷한 일종의 한(恨) 같은 민족 특유의 정서가 담겨있다. 기원은 포르투갈의 옛 서정시에서 비롯되었다는 설과 뱃사람이나 죄수가 부르던 노래에서 유래되었다는 설 등 다양하다. 파두는 가슴 바닥에서 끌어올리는 듯한 창법과 반주 등이 우리네 정서와 많이 교감된다. 그래서 듣고 있으면 슬프다. 세상의 모든 것이 운명적으로 이루어진 듯한 생각도 든다. 파두 중에서도 리스본 뒷골목에서 서민들이 부르는 “리스본 파두”가 백미라고 하는데……
“아말리아 로드리게스”의 “Maldicao 어두운 숙명”을 들으면 내가 슬픈 것이 아니라, 누군가의 슬픈 운명에 공감하게 되는 묘한 아픔이 울려온다.
대서양을 끼고 있는 해변도로를 따라 숙소가 있는 리스본 근교 휴양지 “카스카이스 Cascais”로 갔다. 호텔에서 TV를 켜니 출연자가 파두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이렇게라도 위로를 받는가 보다……’
와인 한잔을 마시며 TV에서 나오는 파두를 들었다. 눈을 감으니 노란색 트램과 좁은 언덕길, 트램 안에 앉아있는 까무잡잡하면서 약간 투박스러운, 과묵할 것 같은 포르투갈 사람들의 얼굴이 떠올랐다.
스페인과는 다른 무엇! 그 차이는 무엇일까!
이렇게 또 다른 새로운 경험으로 인해 나의 세상이 넓어져 가는 것에 감사하게 되는 하루가 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