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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일의 자유 7)

영화속 자연 Coromandel

by Arista Seo

“이 거봐…… 일찍 오니까 좋은 자리를 차지하잖아. 만약 늦게 출발했으면 오면서 봤던 한참 전에 있던 주차장에 세워야 했을 걸…… 그럼 많이 걸어야 되고, 여유 있게 시간을 보낼 수도 없었을 거야. 이 좋은 곳에서……”

윈도우 배경 화면으로도 유명한 ‘커시드럴 코브 Cathedral Cove’로 가기 위해 새벽 5시 40분에 ‘코로만델 탑 10 홀리데이 파크’를 나왔다. 덕분에 시원하게 펼쳐진 파란 바다와 모래 해변 바로 앞에 있는 주차장에서도 최고의 명당에 자리를 잡았다.

'하헤이 비치 Hahei beach'

“에고…… 고생했어요. 수고했슈……” 아내에게 하는 나의 공치사를 옆에서 들은 처형들이 한마디씩 거들어 주었다.


‘코로만델 탑 10 홀리데이 파크’에서 이곳까지의 거리는 55km밖에 안되지만 울창한 ‘코로만델 삼림 공원’의 비포장 도로로 오다 보니 시간은 2시간 정도가 걸렸다. 그래도 이른 아침 숲 속 상큼한 공기와 새들의 노랫소리가 참 좋았다. 도로를 달리는 차도 몇 대 없었다. 차 대신 새들이 참 많았다. 뉴질랜드는 뱀과 육식 포유류가 없어서 새들이 주인인 곳이라고 했는데 그 말이 정확했다.

'코로만델 삼림 공원' 산 길

확 트인 바다와 모래 해변이 코 앞에 펼쳐져 있는 ‘하헤이 Hahei 비치’ 주차장에서 아침 식사를 하였다. 식사 후 커피 한잔까지 하고 나니 8시 30분이었다.


주차장에서부터 ‘커시드럴 코브’까지는 걸어서 50여분 걸린다. 먼저 전망대까지 오른 후 숲 길을 걸었다. 전망대까지 가는 방법은 고급 별장들이 있는 주택가를 가로지르는 자동차 도로로 가는 방법과 해안을 끼고 절벽 위로 오르는 방법이 있다. 우리는 갈 때는 자동차 도로로 가고 올 때는 해안을 낀 트레킹 코스로 왔다.

전망대 가는 별장 주택가 도로 와 주변 꽃
전망대 가는 해안 트레킹 코스

파란색 넓은 바다를 옆에 끼고 사암으로 이루어진 절벽 위 숲 길을 걸으며 받았던 감동을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 잘 모르겠다. 결코 힘들지 않은 이 트레킹 코스를 한 발 한 발 걷는 것만으로도 행복했다. 그 시간 그곳에 모든 것이 좋았다. 그 자리에 있을 수 있는 것에, 느낄 수 있는 것에 감사할 뿐이었다.

해안 트레킹 숲길

왜 이곳에서 영화를 촬영하였는지 마지막 뷰 포인트 절벽 위에서 바다와 터널이 만든 비경이 보일 때 공감되었다. 가파른 절벽을 나무로 만든 계단을 이용해 내려온 후 해변에 서서 본 터널과 터널 속 풍경은 다른 세계로 넘어가는 관문이었다.

‘이 관문을 쉽게 통과시킬 수 없어서 가파른 절벽을 자연은 세워 놨구나’하는 생각이 들었다.


터널은 모든 이분법 구조의 관문이었다. 삶과 죽음, 이성과 감성, 행운과 고난, 물리 공간과 시간 공간, 현실과 가상.


모래 해변에 누워 출렁이는 파도와 바다를 보니 시원한 에이드 한잔이 생각났다.

커시드럴 코브 Cathedral Cove

‘하웨이 Hahei 비치’ 주차장으로 돌아온 후 해변 앞 초록 잔디 위에서 점심 식사를 하였다. ‘평화, 평온, 여유 이런 단어들에 공통적으로 내재되어 있는 성질이 이런 느낌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헤이비치 Hahei beach

뉴질랜드 북섬은 화산 활동으로 만들어진 섬이다. 특히, 통가리로 국립공원에서부터 동쪽 태평양 연안까지는 뉴질랜드에서 가장 화산활동이 많은 ‘타우포 화산대’에 속한다. 현재도 화산활동이 진행 중이다. 이런 이유 때문인지 바닷가 해안 모래를 파면 뜨거운 물이 나오는 곳이 있다.


‘핫 워터 비치 Hot Water Beach’

‘하웨이 비치’에서 멀지 않은 곳에 있다. 이름 그대로 썰물 시간 대에 가서 해변 모래를 파니 뜨거운 물이 나왔다. 해변에 있는 상가에서는 아예 삽을 빌려주기도 했다.


이번 여행에서 있었던 몇 가지 실수 중 하나가 이날 저녁에 일어났다. 이날 낮에 찍은 사진을 외장하드에 옮기면서 실수로 사진의 대부분을 날려버리고 말았다. 특히, 두 곳의 사진은 한 장도 남기질 못했다. 그래서 ‘커시드럴 코브’와 ‘핫워터 비치’는 더 강하게 내 기억에 남나 보다.


‘타우랑가 Tauranga’는 온화한 기후를 지니고 있는 뉴질랜드의 대표적 휴양도시이다. 특히, 윈드서핑 등 해양 스포츠의 천국이라고 한다. 이곳에 있는 ‘파파모아 비치 탑 10 홀리데이 파크’로 이날 밤을 보내기 위해 갔다. 예약을 하지 않았지만 평일이기 때문에 사이트에 여유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막상 가보니 빈 파워 사이트가 한 곳도 없었다. 어쩔 수 없이 앱으로 다른 홀리데이 파크를 찾으니 마침 가까운 ‘마케투 Maketu’라는 도시에 파크가 있었다.

'마케투 Maketu'파크에서 본 석양

30여분 정도 가서 그곳 파크를 찾아 들어가는데 처음 느낌이 좀 이상했다. 파크 입구에 동남아인들 몇 명이 쭈그려 앉아 있는 모습도 그렇고…… 하지만 해도 저물어가고, 어쨌든 안으로 들어갔다. 마침 캠핑을 하고 있는 10대 후반의 독일 친구들이 있어 그들의 도움을 받아 주차를 할 수 있었다. 전기를 공급하는 파워 박스도 보였다.

그때까지는 편한 맘으로 저녁 식사를 마쳤다. 그런데 식사 후 좀 이상한 느낌이 들어 주변을 둘러보았다. 파크 오피스로 가니 현관에 당분간 파크를 운영하지 않는다는 게시물이 붙어있었다. 단, 뜨거운 물 샤워 등이 필요한 경우 매점에서 코인을 사서 사용하라고 적혀 있었다. 파크를 관리 및 운영은 하지 않고 개인이 장사를 하는 매점만 운영하고 있었다. 주변의 롯지를 돌아보니 파키스탄, 인도네시아 등에서 온 것으로 보이는 외국인들이 오히려 나를 신기한 듯 쳐다보았다. 순간 ‘아 여기 외국인 노동자들이 싸게 숙박하는 곳이구나’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니까 젊은 친구들도 돈을 아끼기 위해서 이곳에 텐트를 치고 ……’

마케투 파크

마음이 편하지 않았지만 일행들에게는 말하지 않고 캠퍼 밴으로 돌아와 하루를 마무리하고 있었다.

밤 10시가 조금 넘었을 때 밖에서 누군가 문을 두드렸다. 문을 열고 나가보니 인도네시아 쪽 사람들로 보이는 남자 두 명이었다. 그들의 얼굴은 웃고 있었지만 내 마음에는 경계심이 잔뜩 생겼다. 어디서 왔냐는 등의 기본적인 인사를 한 후 그 친구들은 돌아갔다.


그때부터 긴장되기 시작했다. 잠자리에 들었지만 잠이 제대로 오지 않았다.


‘아~ 제발 시간 좀 빨리 가라…… 아무 일도 없어야 한다. 혹시 이 시키들이 미리 상황 파악을 위해 와 본 거 아닐까…… 에이, 설마 무슨 일 있겠어! 아니야 만약, 만약을 대비해야 돼…... ’


이날 따라 왜 이렇게 밤은 더디게 가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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