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주에만 9개의 세미나를 들었다
나의 이번 주 스케줄을 보고 남편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참 대~단하다. 진짜 좋아하는 일 아니면 저렇게 못하지."
그제야 내가 이번 주에만 무려 9개의 세미나를 들었단 사실을 알게 되었다.
하나의 강의를 듣고 완전히 내 것으로 소화를 시키지 못한 상태에서 다음 강의를 들어야만 하는 스케줄은 마치 공부를 해도 해도 다시 해야 할 분량이 채워졌던 고3 시절이 생각나게 했다.
진짜 오랜만이다. 인풋으로 하루를 가득 채우는 삶.
직장생활을 오래 한 사람들은 대부분 공감할 테지만, 대학 때 배운 지식으로 참 오래도 우려먹는다는 기분으로 지속적으로 아웃풋을 만들어내야 하는 곳이 바로 회사이다. 몇 년을 그렇게 뱉어내는 삶을 살다 보면 어느 순간 내가 속이 텅 빈 껍데기 같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는데 그럴 때면 괜히 마음이 헛헛해져 퇴근 후 피곤함을 억지로 떨쳐가며 책도 읽어보고 괜히 영화도 찾아보곤 했다. 이런 갈증에 유독 회사에서 제공해 주는 교육에 적극적으로 참여했었는데 지나고 보니 그것마저 없었더라면 회사를 더 일찍 그만두지 않았을까 싶기도 하다(회사를 떠나면서 가장 아쉬웠던 복지 중 하나).
퇴사를 하고 아웃풋에 대한 압박이 사라지고 나니 신기하게도 딱히 인풋에 대한 욕심도 생기지 않았다. 궁금한 게 있으면 소소하게 동네도서관을 이용하거나 챗지피티가 어느 정도는 해결해 줘서 만족스러운 나날을 보내고 있었는데 정말 오랜만에 오프라인 세미나를 왕창 듣는 한 주를 보냈다.
9개의 세미나 중 반은 브랜드 준비를 위해 참여한 박람회에서 제공된 것이었고 나머지 반은 마케팅 관련 세미나였다. 일부러 이렇게 무리하게 스케줄을 잡은 건 아니었는데 어쩌다 보니 이번 주에 몰렸다. 하루 종일 듣고 오면 너무 피곤해서 쓰러져 자느라 바빴던 탓에 아직 내용 반의 반도 소화시키지 못했다. 까먹기 전에 정리해야 하는데 조급한 마음에 이번 주 브런치는 이 내용을 기록하는 걸로 대신하고자 한다(기록용이므로 구독자 프랜들리 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연재 흐름에도 맞지 않아요. 허허).
박람회에서 참여한 세미나는 크게 2가지 주제로 나눌 수 있는데 하나는 트렌드 예측, 하나는 AI였다.
트렌드 예측 세미나는 재밌었는데 한편으로는 조금 당황스럽기도 했다. 들을 때는 청산유수 같은 발표에 홀린 듯이 고개를 끄덕였으나 집에 와서 필기내용을 다시 보니 너무나도 상충되는 단어들이 하나의 주제에 같이 쓰여있는 게 아닌가! 해석하기 나름, 받아들이기 나름, 이런 식의 내용이라 이건 시간을 충분히 가지고 다시 곱씹어 봐야 할 것 같다.
AI 관련 세미나는 무려 4개나 들었는데 지금이 대혼돈의 시대라는 것이 고스란히 느껴진 시간이었다. 한국, 일본, 중국 세 나라의 전문가가 와서 발표를 해줬는데 나라마다 조금씩 다른 시선으로 접근하고 있는 점이 매우 흥미로웠다. 나름의 결론을 내보자면 일본은 알려진 이미지와 다르게 보수적인 나라가 아니고 중국은 정말 미친 속도로 발전하고 있으며 한국은 가장 규제가 심한 나라이다(대체 어쩌려고). 절대 내수시장만 보면 안 되겠다는 생각을 많이 했다. 더 넓고 크게 생각해야지.
마케팅 관련 세미나들은 시간으로만 계산하면 8시간 정도 되는데 이 정도 몰아서 듣고 나니 또 근거 없는 자신감이 뿜뿜 올라온다. 마케팅 분야에서 보자면 당연히 충분하지 않은 분량이겠지만 나에게는 이미 차고 넘치는 정보인지라 한동안 유사 세미나는 더 이상 듣지 않을 생각이다. 마케팅 강의들도 발표자에 따라 관점이 조금씩 달라서 듣는 재미가 있었고 고민하던 부분들이 꽤 많이 해소가 되어서 일단 실행에 옮기는 것부터 하려고 한다.
번외로 이번 주 내내 인풋에 허덕이면서 머릿속이 너무 번잡스러워 하루는 아무 생각 없이 레고만 했다.
덕분에 둘째 녀석이 매일 아침 일어나자마자 진행상황을 체크해 내 마음 한구석을 불편하게 했던 해적배를 드디어 완성했다. 시력이 더 떨어진 것 같지만 더 이상 하지 않아도 된다는 해방감에 행복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