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문자 T인 사람도 가능한 영역일까
이번 주는 유독 브랜드 주인의 태도에 대해서 여러 가지 생각을 많이 한 시간이었다. MBTI가 모든 것을 정당화시키진 못하지만 설명하기 간단한 면이 있으므로 언급을 하자면, 나는 검사 때마다 T의 비중이 압도적으로 높게 나오는 편이다. 이런 나의 성격은 그동안 삶을 살아오는데 적지 않은 영향을 끼쳤는데 남직원의 비율이 압도적으로 높았던 조직생활에서는 같이 일하기 좋은 쿨하고 뒤끝 없는 인재로 평가받은 반면, 친구들 사이에서는 절대 먼저 연락하지 않는 무심한 친구로 비치기 일쑤였다. 여중, 여고를 나오면서 학습한 F 감성의 친구들과의 소통법은 인생을 살아가면서 도움은 되었으나 나를 행복하게 만들어 주진 못했다. 나이가 들수록 감정소모가 큰 만남은 피하게 되고 결국 결이 비슷하거나, 이런 나에게도 상처받지 않는 F들만이 주변에 남았다.
회사를 다니면서 주어진 일을 처리하는 것만으로 평가받을 때에는 이런 성향이 딱히 문제가 되지 않았다. 하루 종일 혼자 일해도 전혀 문제가 없는 연구직에 가까운 업종이었기에 가능했을 거다. 하지만 브랜드를 준비하고 있는 지금, 특히 여성의류브랜드를 만들고 있는 나는 자꾸만 성향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일단, 상품의 소비주체는 대체로 여성이다. 그리고 여성들은 (호르몬으로 인해) 남성에 비해 대체로 감성적인 편이다. 요즘 브랜딩의 대세는 스토리텔링이다. 이 브랜드의 이야기가 메인 고객인 감성적인 여성을 감동시켜야 한다.
명확하지 않은가, 나의 한계가.
바디수트 브랜드를 준비한다고 얘기하면 주변에서 여러 성공스토리를 가미한 타브랜드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하나같이 사장님이 고객에게 진심으로 다가가 마음을 먼저 내어주고 고객의 이야기를 들어주면서 찐 팬을 만들었다는 공식이 존재한다. 그런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나는 생각했다.
'아, 이건 무조건 내가 배워야 하는 부분이다.'
(누구보다 고객에게 진심이었던 타브랜드의 예)
https://brunch.co.kr/@aristories/38
그래서 실제로 많은 노력을 해보았다. sns에서의 작은 관심이라도 잊지 않고 찾아가 그들의 스토리를 보고 진심 어린 답글을 남기고 DM으로 오는 소소한 이야기에도 최선을 다해 답변을 했다. 누군가는 그게 무슨 노력이냐고 할 수도 있지만 솔직히 나에겐 쉽지 않은 일이었다. 나는 기본적으로 타인의 삶에는 큰 관심이 없으며 스스로에게 집중하는 삶을 살 때 가장 행복함을 느끼는 편이다. 혼자 있는 게 너무나도 편안하고 하루 종일 아무와 얘기하지 않아도 외롭긴 하지만 나쁘진 않은 그런 사람이다. 이런 내가 노력만으로 진심으로 소통하는 다른 브랜드와의 경쟁에서 이길 수 있을까? 과연 나의 이런 모습이 고객에게 감동을 전할 수 있을까?
몇 번 소통에 열을 올리는 작업을 해보고 내가 내린 결론은 나에게는 분명 부담을 주는 일이라는 것이었다. 하려고 애쓴다면 할 수는 있겠지만 오래가지 못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솔직히 언젠가는 드러날 수 있는 나의 본모습에 기존에 소통을 했던 사람들은 상당한 배신감을 가질 것만 같았다.
어려웠다. 마치 나는 장사를 하면 안 되는 사람처럼 느껴졌다.
어렸을 적 옷쇼핑을 스스로 하기 시작했을 때부터 개인 온라인쇼핑몰에서 구매를 많이 했는데, 지금까지도 그 쇼핑몰의 주인장 얼굴들이 또렷이 기억이 나는 걸 보면 확실히 잘되는 쇼핑몰의 경우 주인장이 끊임없이 본인을 드러내고 고객과의 소통에 주저함이 없었던 것 같다(지금도 괜한 내적친밀감으로 그들의 sns를 들어가 보곤 한다. 여전히 잘살고 있네, 울 언니들 ^ㅁ^). 물론 그들의 성격은 각자 달랐지만 소통을 적극적으로 하고 고객입장에서 생각했다는 부분에 있어서만큼은 의심의 여지가 없었다. 그때는 이렇게까지 자신의 삶을 다 드러내면서 장사를 해야 하나? 싶었는데 지금 생각해 보니 그게 성공방정식이었다.
여기까지 생각이 미치고 나니 꽤 씁쓸해졌다. 하지만 인정할 건 인정하고 어쨌든 앞으로 나아가야지.
다른 형태의 성공방정식을 찾아보는 게 어떨까 싶어서 꽤나 많은 브랜드를 뒤적였다. 특히 고객과의 친밀한 소통 대신 사업전략으로 살 수밖에 없는 구조를 만든 케이스들 위주로 찾아봤다. 쉽지 않았다. 특히나 의류브랜드 같은 경우는 고객과의 친밀감은 거의 필수적이었다. 아마도 제품자체가 필수재가 아닌 소비재이므로 꼭 사지 않아도 되는 제품을 홀린 듯이(?) 사게 만들어야 하므로 브랜드의 이미지가 매우 중요한데 브랜드가 제대로 자리를 잡기 전까지는 친밀함이라도 있어야 결제까지 이끌 수 있기 때문이리라.
그런데 이렇게 조사를 하는 과정에서 중요한 사실 하나를 발견할 수 있었다. 의류이지만 제품이 고객의 불편함을 해결하는 경우에는 소통의 관심사가 문제에 집중이 된다는 사실이었다. 고객은 본인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사람을 찾고 있는 것이고 브랜드 주인장이 그 문제를 (본인대신) 잘 해결할 수 있도록 적극적으로 지지하고 기다려준다는 사실을 말이다.
나는 바디수트 브랜드를 준비하고 있다. 바디수트는 내가 출산 후에 겪었던 체형변화로 우울한 나날을 보내던 중 자존감 회복과정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던 아이템으로, 기존 제품들에 백 프로 만족하지 못해 더 나은 제품을 만들려고 브랜드를 시작했다. 그러니까 나의 브랜드의 경우에도 미감에 이끌려 구매하는 성격의 상품이 아닌 문제를 해결하는 상품으로 볼 수 있다. 이 문제에 대해서는 그 누구보다도 절절하게 고통받았고 또한 위로받았으며, 아무리 말 수가 적은 나일지라도 이 이야기를 풀어놓자면 밤새 떠들어도 모자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고객과 소통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았다.
비록 고객들의 일상이나 다른 감정에 대해 공감해 주는 능력은 부족할지언정, 고객이 해결하고 싶어 하는 문제만큼은 깊이 공감하고 있고 진심으로 해결해 줄 의지가 있다. 나의 부족한 부분을 메꾸기 위해 억지로 노력을 하는 대신 내가 잘할 수 있는 방법으로 고객에게 다가가야겠다는 결론이 내려졌다. 그리고 이 부분만큼은 정말로 자신이 있었다.
브랜드라는 것을 처음 만드는 과정에서 너무나도 많은 정보 속에서 이리저리 휘둘리고 있는 중이다. 누군가는 이게 정답이라 하고 또 다른 누군가는 저게 정답이라고 한다. 지천에 널리고 널린 게 정보인 요즘, 그 중에서 가져가야 할 정답지는 결국 나와 가장 핏이 잘 맞는 정보가 아닐까. 외부로 귀를 활짝 열어두고 모든 정보를 흡수하던 시기를 거쳐 지금은 나에게 맞을 것 같은 몇 가지 정보로 테스트를 해보는 단계에 와있다.
물론 이번에 찾은 결론도 정답이 아닐 수 있다. 나에게 맞는 방법일 수는 있어도 고객에게 진심이 전달되지 않는다면 다시 전략을 바꿔야 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분명한 건 치열하게 고민했던 지금의 이 시간, 그리고 그 과정에서 방법을 찾아나간 경험은 남을 거란 거다. 그렇다면 다음에 다시 반복하는 것쯤은 지금보다 몇 배는 더 수월할 테니 지쳐서 나가떨어지지만 않는 다면 살아남을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