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다 보니 셋

’동심‘을 가진 ’엄마‘가 되었습니다.

by 아리스

결혼 전부터 특별한 자녀 계획은 없었다. 자연스럽게 생겨난 두 아이의 육아는 힘든 만큼 보상받았다. 육아가 힘들어 지칠 때면 아이들의 맑은 웃음소리와 반짝이는 미소가 나를 일으켰다. 아이들이 너무 예뻐서 아이를 더 갖고 싶었다. 바라던 대로 셋째가 생겼다.


두 아이는 예뻤지만 눈물이 마를 날이 없었다. 분명한 원인 없이 그냥 눈물이 방울방울 맺혔고 현실이 서글펐던 적이 더러 있었다. 그러다 아이가 한 명이 더 생긴 것이다. 미취학 아동 세 명의 육아는 눈물을 흘릴 시간조차 없었다. 매일 반복되는 하루지만 몇 배속은 빨리 감기를 한 것처럼 빠르게 흘러갔다. 야근이 잦은 남편은 주말에나 육아에 참여할 수 있었으니 요즘말로 내 신세는 독박 육아였다.


희한하게도 세 아이의 육아는 그 언제보다 쉬웠다. 엄마라는 역할이 미숙해서 첫째의 육아는 힘들었고, 나를 온전히 내려놓지 못해서 둘째의 육아는 힘들었다. 당시에는 몰랐지만 돌이켜보니 그랬다. 셋째를 낳고 완전한 엄마가 된 것 같았다. 그 어디에도 '내 이름'은 없었지만 나는 완벽한 '엄마'였다. 내 이름을 누구도 궁금해하지 않았고 스스로도 잊어갔다. 내 이름이 있던 그 자리에는 세 아이의 '엄마'가 자리 잡았다. 비로소 진정한 어른이 된 것 같았다.


사회적인 활동은 여전히 하지 못했고, 만나는 친구 한 명 없었다. 몇 년째 고립된 상황에 우울감이 때때로 찾아와 기분이 끝없이 추락하는 날들이 종종 있었다. 그러다 아이가 세 명이 되니 우울해할 시간마저 없었다. 그럼에도 그 어느 때보다 행복했다.


한 침대에서 세 아이와 뒤엉켜 잠을 잤다. 우당탕 뛰어다니는 아이들과 술래잡기를 하고 집 안 잡동사니를 한데 모아 아이들과 매일 새로운 작품을 만들었다. 물감을 꺼낸 날이면 아이들은 온몸으로 물감을 가지고 놀았다. 아이들이 마음껏 노는 모습은 참 예뻤지만 뒷정리는 종일 걸렸다. 집 앞 놀이터라도 나가려고 하면 세 아이 옷을 입히고 준비하는데 두 시간도 걸렸다. 다녀와서도 마찬가지였다. 남는 게 시간이니 아이들을 재촉할 일도 시간에 속박될 일도 없었다.


살림할 시간은 부족했다. 아이를 키우는 동안은 살림은 좀 내려놓기로 했다. 깔끔한 집 안은 ‘나’를 위한 이기적인 풍경이므로. 조금 더러워도 지저분해도 치울 시간에 아이들과 하나라도 더 놀려고 했다.


혹자는 매일 아이들에게 얽매여 사는 내 인생이 전쟁 같아 보였으리라. 시끄럽고 사고뭉치 같은 아이가 세 명이니 말이다. 어른의 시선에서 아이들은 분명 그렇다. 아이들과 눈높이를 맞추고 같이 어울려 놀다 보니 아이들은 그만한 이유가 있었다. 아이들은 그들만의 놀이와 동심에 충실했던 것뿐이다.


아이를 키운다는 것은 동심을 두 번 겪게 되는 기쁘고도 신명 나는 인생이다. 아이가 셋이 되고 나서야 비로소 아이들과 즐겁게 놀 줄 아는 엄마가 됐다. 누군가 그랬다. 아이와 놀이를 할 때는 놀아주는 것이 아니라 같이 놀아야 한다고. 아이들은 논리 정연하지 못할 뿐 어른과 똑같이 사고하고 볼 줄 안다. 엄마가 영혼 없이 놀아 주는 것보다 직접 놀이에 참여해서 같이 놀면 아이뿐 아니라 엄마도 즐겁다.


엄마인 나도 그랬다. 때로는 귀찮아서, 힘들어서 마지못해 놀아주면 놀이가 재미없어서, 이 상황에서 벗어나고 싶어서 괴로웠다. 다시 유년 시절로 돌아간 것처럼 아이들과 어울려 놀면 아이들과 친구가 된다. 재미도 있을뿐더러 시간도 금방 지나간다. 세 아이를 낳고 나서야 다시 동심 세계로 들어가는 법을 배웠다. 나는 인생에서 동심을 두 번 겪는 진정한 '행운'을 얻었다.







이전 10화하나와 다른 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