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와 다른 둘

by 아리스

첫 아이가 태어나고 나는 많이도 울었다. 아이는 예쁜데 이 작은 것 하나로 삶의 패턴이 송두리째 바뀌었다. 내가 밥을 먹건 자던 내 생리적인 욕구를 아기는 신경 쓸 리가 없었다. 꼭두새벽이라도 아기가 울면 아기를 돌봐야 했다. 내가 아파도 아기는 저를 봐달라고 울어댔고 내 컨디션은 안중에도 없었다. 언제 어디서나 아기의 컨디션과 안위가 가장 중요하게 되었다. 지극히 나에게만 맞추던 삶이 내가 아닌 제삼자를 위해서 살아야만 했다. 그것도 말도 못 하고 제 몸도 가누지 못하는 아기에게 맞춰야 한다니 우울감이라는 감정이 때때로 찾아왔다.


부모가 자식에게 베푸는 보살핌과 안위는 희생이었다. 내가 자식일 때는 당연하게 받았던 것들이 내가 부모가 되어 보니 그렇게 당연한 것이 아니었다. 사랑이라는 이름에 가려진 수많은 희생은 나를 깎고 깎아야 했다. 왜 아무도 알려주지 않았을까. 부모가 된다는 것, 엄마가 된다는 것은 나를 끊임없이 깎아내려야 한다는 것을.


첫아기를 키울 때는 내 삶에서 나를 걷어내는 시간이 필요했다. 그렇게 삶에서 나를 걷어내고 나니 한결 수월했다. 아침부터 밤까지 그리고 잠을 자는 동안에도 내 삶에는 아기로 가득 찼다. 그럼에도 행복했다. 아기는 예뻤고 누구보다 엄마인 나를 사랑했다. 여태껏 받은 사랑과는 차원이 달랐다. 작은 아기는 엄마인 내가 세상의 전부였다. 힘들지만 큰 기쁨이었다.


그렇게 사랑하는 첫 아이의 동생이 태어났다. 내 삶을 깎아서 첫째를 돌봤던 시간을 또 쪼개야 했다. 둘째를 돌볼 때면 첫사랑 같은 첫째를 방임한다는 생각에 미안함과 죄책감이 나를 옭아맸다. 둘째가 곤히 잘 때면 첫째와 못다 한 사랑을 나누려 했다. 그럴 때면 꼭 둘째는 울었고 누구를 먼저 달래고 안아야 할지 가늠이 되질 않았다. 동생보다 첫째를 더 위하고 사랑하라는 주변의 조언을 실천했지만 그렇게 하면 악을 쓰고 우는 둘째의 울음소리가 내 심장에 비수를 꽂았다. 안고 있던 첫째를 내려놓고 둘째를 안았다. 샐쭉 토라져 있는 첫째가 안쓰러워 다시 둘째를 내려놓고 첫째를 안았다. 그러다가 둘 다 내려놓고 엉엉 울기도 하고 둘을 끌어안고 펑펑 울기도 했다.


아이가 한 명일 때는 온전히 첫째에게 집중할 수 있었다. 아이가 잠이 들 때면 그 시간은 온전한 나만의 시간이었다. 아이가 잘 때면 아이를 낳기 전 내가 나타났다. 집 안의 풍경은 장난감으로 너저분했지만 우아하게 티 타임을 즐겼고, 예능 프로그램을 돌려보면서 깔깔대며 웃었다. 피곤한 날엔 따사로운 햇살을 받으며 잠든 아기와 달콤한 낮잠도 잤다. 아이가 잘 때면 나도 재충전의 시간을 가졌다. 충분히 할만한 육아였다.


둘째는 첫째가 두 돌 무렵에 태어났다. 둘째가 낮잠을 잘 때면 밀린 집안일과 방임된 첫째가 있었다. 둘째의 낮잠 시간은 그 어느 때보다 분주하게 흘러갔다. 첫째가 낮잠을 자면 주격만 바뀐 채로 시간은 빠르게 흘러갔다. 둘째를 낳고 나서 비로소 내 삶에서 나는 없어졌다. 이렇게 삶에서 나를 지우고 살 수 있다니 놀라웠다. 매일 나를 지우고 또 지웠다.


첫째만 있을 때는 '누구 엄마'라고 불리는 호칭이 그렇게 어색했다. 둘째를 낳고 보니 이제는 '내 이름 석자'가 어색해졌다. 그만큼 타자를 위한 삶이 익숙하고 편안해졌다. 두 살 터울 두 아이의 육아는 생각했던 것보다 힘들었다. 아이가 하나였을 때는 아이에게 젖만 주면 그만이었지만 둘이 되니 둘째 젖을 먹이면서 첫째 밥을 따로 챙겨줘야 했다. 우는 둘째는 주로 포대기로 감싸 업었다. 춤을 잘 못 추는 나는 요리를 하면서도 첫째에게 밥을 먹이면서도 덩실덩실 거려야만 했다. 그래야 등에 업은 둘째가 울지 않고 잠잠했다.


아이 하나와 둘의 육아는 엄연히 달랐다. 한 명이 더해진 것뿐인데 노동의 강도는 몇 배로 거세졌다. 그러나 노동의 대가 또힌 두 배가 아닌 몇 배로 다가왔다. 아이 한 명 한 명 예뻤지만 둘이 같이 있는 모습은 세로토닌 호르몬을 한 움큼 수혈받은 것처럼 빛이 났다. 조금 컸다고 엄마 없이 둘이 놀고 의지하는 모습이 보였다.


놀이터에 가면 삼삼오오 모여 노는 모습을 먼발치에서 바라보던 첫째는 이제 어디에서건 동생과 친구가 되어 신명나게 논다. 형제의 콜라보가 나타나면서 육아가 점점 쉬워졌다. 둘 키운 보람이 있었다. 고단했지만 행복했고 복닥거리는 집 안 풍경은 평안했다.


두 아이를 키우면서 느껴졌다. 내 삶에서 나를 비워낼수록 역설적으로 육아가 쉬워지고 삶이 행복해졌다. 지난날 육아는 분명 힘들었지만 행복한 기억들이 대부분인 것은 육아에 최선을 다했기 때문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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