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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리스 May 17. 2024

의식적인 삶

<불렛 저널>을 읽고

 


 펜을 꾹꾹 누르며 정성을 담은 손 편지는 문명의 이기와 함께 멸종 위기에 도래했다. 문서화 작업마저 디지털 기기로 넘어간 것처럼 종이 위 펜의 행방은 모호해졌다. 자판을 두드리는 행위는 그 옛것에 비하여 에너지나 시간적으로나 훨씬 용이하다. 시대는 4차 산업 혁명을 넘어 인공 지능 시대로 접어들었다. 그럼에도 '손글씨'의 강점은 무엇인가.


 우리가 어느 강의를 청강한다고 가정해 보자. 손으로 강의의 내용을 고스란히 옮겨 적는 일은 불가능하다. 우리는 강의 내용을 귀로 듣고 머리에서 생각을 정리한 후 노트에 작성하게 된다. 이러한 행위는 강의를 더 열심히 듣게 만들고 정보를 깊이 생각하게 해 준다. 반대로 청강한 내용을 타이핑한다면 강연자의 말 한마디 놓치지 않고 복사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런 타이핑은 정보가 들어오자마자 나자는 기계적인 암기가 될 수 있다. 무엇보다 노트에 적는 손글씨는 뇌를 거쳐 자신의 말로 재해석한 문장들이다. 손글씨는 연상적 사고를 강화시켜 정보에 관여하는 방식을 향상한다. 따라서 인식을 넓히고 이해를 높일 수 있다.


 손으로 쓰든 손으로 두들기든 우리가 문서화하는 작업은 미래를 위한 도약의 밑거름이다. 우리는 오래전 일화들을 사실과 다르게 또는 편향되게 기억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어떤 추억들은 지나치게 미화되거나 왜곡되어 기억하는 경우도 더러 있다. 기록은 우리가 세월을 거치며 감정에 따라 변질되는 기억을 바로잡아주는 역할을 해줄 것이다.


 시작이 반이라는 격언처럼 텅 빈 캔버스 앞에 놓이면 누구나 주저하게 된다. 물이 흐르듯 흘러가는 삶은 인생의 안전벨트를 맨 것처럼 편안하고 실패와 마주칠 확률이 적다. 안정된 삶이란 변화가 없는 삶과 마찬가지다. 실패가 두려운가. 넘어지지 않고 자전거를 탈 수 없는 것처럼 도전하지 않으면 매일 어제와 같은 삶을 살게 된다.


 모차르트, 베토벤, 바흐처럼 위대한 음악가의 대표 작품은 손가락으로 셀 수 있을 만큼 몇 곡이 되지 않지만 그들이 생전에 작곡한 곡은 무수히 많았다. 35세 나이에 세상을 떠난 모차르트는 600여 곡을 작곡하였으며 청각장애인이었던 베토벤은 650곡에 예술의 혼을 불어넣었다. 바흐는 무려 1,000곡이 넘는 작품은 세상에 내놓았다. 에디슨은 상대성 이론에 관한 논문을 세상에 발표하기 전 수 천 건에 달하는 실험을 실패가 아닌 과정이라고 여겼다. 하찮은 행동일지라도 움직이면 얻는 것은 분명히 있다.


 4월 눈부시게 아름다웠던 벚나무의 꽃잎들은 금세 꽃비가 되어 내린다. 여름이면 더 이상 빛을 내지 않는 떨어진 꽃잎들은 흙과 뒤섞여 이듬해에 자라날 식물들의 양분이 되어준다. 과거를 붙들고 있으면 과거는 우리의 머릿속에서 떨어진 꽃잎처럼 썩어간다. 다음 계절을 준비하는 자연처럼 지나온 과거를 성찰하며 나의 마음과 대화하는 것은 풍요로운 미래를 만들어 가는 준비 과정과 같다.


 세상에는 가진 것이 없어도 행복한 사람이 있는 반면 너무 많은 것을 가지고 있음에도 불행한 사람도 있다. 그러나 행복은 서로 나눠 가질 수도 없으며 거래할 수도 없다. 새로움은 금방 익숙함으로 다가오고 즐거움은 금세 따분함으로 변질된다. 세상은 그 어느 때보다 풍족하지만 사람들의 행복 지수는 비례하지 않는다. 행복은 내가 소유한 물질도 아니고 목표도 아니다. 얻으려고 애쓰면 더욱 멀어지는 것이 행복이다. 반대로 밖으로 흐르는 에너지의 방향을 내면으로 돌려보라. 깊고 느린 호흡과 내면으로 흐르는 에너지는 어쩌면 흐르는 숨처럼 행복이 흘러올지도 모른다.


 자동차 액셀러레이터를 밝기 전 목적지를 설정해 둔 것처럼 우리 인생에도 뚜렷한 목표가 있어야 한다. 그 목표는 옆 차선의 파란색 자동차의 것도 아니고 반대편 차로의 검은색 자동차의 것도 아니다. 내가 가고 싶은 곳이어야만 한다. 목적지의 절경이 아름다워서, 공기가 좋아서, 기름지고 신선한 음식이 많아서처럼 분명한 이유가 있어야 한다. 남들이 가니까와 같은 목표는 목적지를 이탈할 상황이 분명히 발생한다. 도토리는 아주 작고 보잘것없지만 우직하게 자라난 참나무는 울창한 숲을 일구며 많은 생명들의 보금자리가 되어 준다. 도토리가 참나무로 자라나는 것처럼 하나의 목표를 가슴에 심고 그 생명의 씨앗을 키우는 것이다.





우리 삶은 풍부하거나 부족하고, 승리하거나 실패하는 계절을 지나간다. 각 계절을 거치며 우리의 필요 역시 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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