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역은 ‘허각역’입니다.
'허각옴'. 회사 동료 결혼식에 간다던 남편의 메시지다. 삼성역 근처로 간다고 했었는데 허각은 어디인가 궁금했지만 막상 떠오르지 않았다. 메시지를 받은 나는 잠시 망설이다가 초록 검색창에 '허각역'이라고 검색을 했다. 포털 사이트는 나의 엉뚱한 생각을 무시하고 충격적인 결과를 내밀었다.
허각
신체 163~4cm, 63kg, O형
출생 1985년 1월 5일(39세)
소속사 빅플래닛메이드엔터
데뷔 2010년 11월 4일
허각이라고 해서 종각과 비슷한 어감의 새로운 역이라고 생각했던 내가 어리석었다. 이런 상황을 보고 웃픈(웃기고도 슬픈) 이야기라고 하나보다. (허각 님께는 죄송합니다.) '허각'이라는 유명인을 몰랐던 건 아니었다. 허각이라는 사람이 왔다기보다 허각이라는 지명에 왔다는 줄 착각했다. 주어, 목적어 다 빼고 알맹이만 거론하니 어디서 등장한 것인지 헷갈렸을 뿐.
어제는 근교 식당에서 밥 값을 계산하는데 카운터에 앳된 남자 사진이 여러 장 걸려 있었다. 나는 여자 사장님에게 '아드님이신가 봐요'라며 괜한 너스레를 떨었다. 그러나 그 사진 속 인물은 지난해 인기를 끌었던 TV 프로그램 '미스터 트롯'에서 상위권에 랭크되었던 유명인 중 한 명이었던 것. 아, 세상에 모르는 것이 점점 더 많아지는구가 새삼 깨달으며 부끄러움은 내 몫이 되었다.
학창 시절부터 그랬다. 친구들은 화려한 화면 속 그들을 선망하고 추종했다. 저녁 밥상머리에서 늘 회자되는 이야기는 오늘의 뉴스였다. 나는 늘 궁금했다. 내 행복과 거리가 먼 이야기들, 현재 나의 삶과 무관한 그들의 이야기로 가득 찬 사람들은 왜 그것들로 울고 웃는가. 그들을 입에 오르내리는 시간과 그 감정의 에너지가 아까웠다. 언론을 내 삶에서 지워냈다. 뉴스를 끊고 산지 어느덧 10년. 뉴스는 매일 더 자극적인 보도들로 국민의 마음을 들었다 놨다 하지만 나는 그것을 알리가 만무했다. 전쟁으로 많은 사람들이 죽어나가도 나 혼자 평온했다. 유명인이 불의를 저지르고 스캔들이 나서 주가가 폭락해도 나 홀로 요지부동이었다.
언론의 '득'만 가져가면 아무런 탈이 없으나 그것은 취사선택이 불가피한 일. 그리하여 내가 선택한 것은 차단이었다. 우리는 좋은 일보다 안 좋은 일에 귀를 더 쫑긋 세우는 부정 편향성을 지니고 있다. 뉴스는 그런 국민들의 마음을 아주 잘 알고 있어서 나쁜 소식들 위주로 우선 보도한다. 나쁜 상황이고 자극적일수록 뉴스의 가치는 더욱 높아지고 나쁜 상황이 호전되면 기사 거리는 가치를 잃어버린다. 그러다 보니 낚시성 '어그로'가 판을 치는 세상이다. 따라서 쉽게 가짜 뉴스가 우리 주변을 채우게 된다.
그들은 국민을 더욱 공포스럽고 흥분하게 만든다. 속세에서 벗어난 사람일지라도 언론에서 부동산에 대해 한 목소리로 떠들기 시작하면 마음이 움직이기 마련이다. 힘없는 국민은 큰 목소리를 내는 언론을 전부 사실이라고 믿으며 그 결과 언론은 권위를 만들어내는 수단으로 자리 잡았다.
점점 팍팍해지는 현실에 혀를 차는 국민들이다. 그러나 정녕 세상이 잿빛으로 변한 것일까. 우리는 하루에 모두 소화하기 힘든 정보의 홍수 속에 살고 있다. 그 많은 화제 중 대중들 입에 오르내리기 위해서는 어제의 그것보다 더 자극적이어서 흥분할만한 요소가 만연해야 한다.
우리의 옛 조상들은 인육을 먹었으며 어떠한 마취 없이 살아있는 사람을 해부하기도 했다. 역사의 그늘 아래 이러한 기록들은 여전히 존재하지만 대중들의 뇌리에는 쉽게 휘발되거나 미화된다. 바야흐로 인공 지능 시대다. 우리네 삶은 매일 더 윤택해져 그 어느 시대보다 살기 좋은 시대가 아니던가.
우리는 뉴스의 소비자이며 사용자다. 언론의 그 모든 것을 모두 소비하다가는 소화불량자로 전락하고 말 것이다. 뷔페에서 음식을 골라 먹는 것처럼 뉴스도 고를 줄 알아야 한다. 그래도 허각이나 미스터 트롯을 모르는 건 너무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