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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리스 May 31. 2024

Prologue

전업맘과 워킹맘 그 기로에서

 오롯이 아이를 바라보며 선택한 장기 가정보육이었지만 한 편에는 응어리처럼 불편한 무언가가 있었다. 그것은 사회에서 도태되고 있는 '경단녀'의 모습이었다. 아이들과 함께하는 매일은 행복이었고 기쁨이었다. 그러나 아이들이 잠든 밤이면 공허함이 몰려들었다. 나 빼고 모든 사람들은 전진하는데 나만 제자리에 머물러 있으니 끝없이 아래로 추락하는 기분이 들었다.


 친정 엄마는 결혼과 동시에 직장을 그만두고 살림과 육아에 헌신하셨다. 그 당시의 보편적인 모습이었으리라. 언제나 집에는 나를 반겨주는 엄마가 있어서 나는 외로움이라는 감정 한 번 느끼지 않고 따뜻하게 자라났다. 그에 반해 시어머님은 남편을 낳고 100일도 안 돼서 복직하셨다. 남편은 양가 할머니의 손에서 자라났고 어머님은 자녀 두 명을 낳았지만 육아에 참여해 본 적이 없는 시대를 앞선 여성이었다.


 '많이 사랑해 줘라, 내가 바빠서 사랑을 주지 못했다.'

남편과 결혼을 앞두고 어머님께서 하신 말씀이다. 나는 때때로 남편에게 '생각보다 잘 컸다'며 우스개 소리를 던지곤 한다. 세대 차이는 나지만 나와 남편의 유년 시절을 떠올리면 교집합이 상당했다. 비어있는 집에서 호기심 많은 아이들이 모이곤 했고, 그곳에서 꼭 사건사고가 발생했다. 사건과 사고는 크고 작은 것들이 섞여있지만 대체로 음란물, 술, 담배 같은 것들이었다. 비어있는 집이란 엄마와 아빠 두 분 다 일하는 특성이 있어야 했다. 따라서 엄마가 회사에 다니면 아이가 막 자란다는 결론이 나온 것이었다. 그에 반해 남편은 정말 생각보다 잘 컸다.


 그 옛날 시절에 100일도 안된 아기를 여기저기 맡기며 일하던 그녀였으니 아이를 낳았다고 일하지 않는 내 모습이 이상하게 보였으리라. 어머님은 손주가 이제 막 걷기 시작할 무렵, 나에게 '이력서'를 건네주셨다. 계약직이지만 괜찮은 자리라고 하셨다. 그간 내가 일하지 않고 '노는' 모습이 탐탁지 않으셨던 것. 그 종이 한 장에 많은 생각이 스쳤다. 계약직으로 처음 접해보는 업무를 할 바에야 요가 지도자를 다시 하는 게 낫겠다 싶었다. 마침 수련받고 있던 요가원에서 주 3회 오전 타임 강사를 맡아달라는 제의가 들어왔다. 다시 일하게 된다는 기쁨보다 어머님이 건네신 종이를 거절할 분명한 이유가 생기게 된 것이 달가웠다. 그러던 중 둘째 아이가 뱃속에 들어서면서 복직에 대한 이야기는 흐지부지되어 버렸다.


 흐리멍덩하게 흐르는 시간 동안 아이는 세 명으로 불어났다. 세 명의 아이를 키우며 살림을 하는 일상은 전쟁터를 방불케 했다. 그럼에도 '생산 활동'을 하고 싶다는 욕구는 내면에 남아있었다.


 아이들을 장기 보육하면서 낼 수 있는 시간은 아이들이 잠든 밤이었다. 모두가 잠든 밤이 되면 나의 작은 공간에 불을 켰다. 앞 날이 까마득하기보다 새로 늘어놓은 일거리에 설렘이 가득했다. 고작 돈 몇 푼이었지만 이렇게라도 돈을 벌 수 있다는 사실이 새삼 신기하고 기뻤다.


 아이들이 어느덧 자라서 학교와 유치원에 가게 되자 시간이 조금 더 늘어났다. 오전 9시부터 낮 12시 30분. 3시간 30분이라는 시간은 누군가 영화 한 편을 보며 그냥 흘려보내는 시간이지만 나는 그렇게 보낼 수 없었다. 얼마나 바라왔던 시간이던가. 아침과 점심을 거르면서 시간을 사용했다. 분초로 시간을 나눠 누구보다 바쁘게 오전 일과를 보냈다. 육아 9년 만의 일이었다.


  회사에 다니지 않았는데 소득이 생겼다. 잠을 자는 시간에도 통장에 입금이 되었고 누구의 엄마가 아닌 내 이름을 부르는 사람들이 늘어났다. 일정치 않은 소득이지만 어머님께 당당히 명함을 건네드릴 수 있었다. 친정 엄마는 그런 나를 가엽게 보셨다. 아이들 뒤치다꺼리하며 살림하기에도 버거운 시간에 왜 그렇게 아득바득 사느냐고. 나는 엄마가 흘린 눈물을 다 알고 있었다. 유년 시절 엄마의 품은 위로였고 사랑이었다. 그러나 중학교 입학과 동시에 엄마의 사랑을 느낄 시간이 없었다. 자식만 바라보고 살던 엄마에게 갑자기 공백 시간이 많아진 것이다. 내가 없는 시간 동안에도 엄마는 나의 그림자만 바라보며 울고 웃으셨다.


 지금 나의 움직임은 어쩌면 그때를 대비하기 위함이다. 아이들이 나의 품에서 멀어질 때 그들의 뒷모습만 바라보지 않으리라. 아이들이 떠난 시간 동안에는 내 이름으로 열정 있는 삶을 사는 것이다. 해 질 녘 아이들이 돌아오면 앞치마를 두르며 엄마로서 복귀하는 그런 삶. 내가 바라는 인생이다. 결혼을 하고 자녀를 낳았다면 어느 것 하나 선택할 수 없는 일이다. 아이들이 학업에 매진할 때는 나도 내 일에 몰입하고  우리는 다시 아늑한 집에서 재회하는 것이다. 따뜻한 집밥과 서로를 위하는 마음이면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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