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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리스 Jun 14. 2024

육아하며 사업하기

전업맘의 스마트 스토어 이야기 1

 세 명의 아이와 몸으로 놀아주는 것은 한계가 있었다. 반면에 아이를 무릎에 앉히고 읽어주는 그림책과 손으로 무언가를 만드는 활동은 비교적 수월했다. 부드러우면서 촉촉한 클레이를 만지면 내면 깊이 평온함을 느꼈다. 여러 가지 색을 섞어서 새로운 색을 만들고 원하는 모든 것을 입체적으로 만들 수 있으니 그것은 우리가 즐겨하는 놀이었다. 놀이터에서 놀 때면 화단에 나뒹구는 나뭇가지와 모양이 제각각인 돌멩이들을 주워 매일 또 다른 피조물을 만들어냈다. 아이들의 상상력은 뛰어났고 동심은 반짝반짝 빛났다.


 아이들은 손으로 조작할 수 있는 것들만 있으면 그 어디라도 잘 놀았다. 아이들이 나뭇가지를 하나씩 주우면 나는 세 개씩 더 집었다. 아이들이 놀이터에서 곤충 채집에 삼매경일 때도 예쁜 돌멩이가 있으면 하나씩 주머니에 넣곤 했다. 클레이는 아이들이 마음껏 조몰락거리기에는 양이 터무니없었다. 어떻게 알게 된 도매 사이트에서 대용량 클레이를 구입하니 충분히 놀고도 남았다.


 일상과 다르지 않던 어느 날, 신사임당의 <킵고잉>을 읽은 것이 화근이었다. 책의 마지막 페이지를 덮기도 전에 세무서로 직행했다. 이미 레드오션이었던 그 시장에 나도 발을 디딘 것이다. 아이들이 잠든 밤이면 놀이방 불을 환하게 켰다. 아이들과 만들었던 그것들을 혼자 재현해 내고 핸드폰 카메라로 그럴싸한 조명 하나 없이 이리저리 찍었다. 다음 날 밤에는 새근새근 자는 아이들 곁에 누워 어제 찍은 사진들을 쇼핑몰에 올렸다. 핸드폰 하나로 촬영과 업로드까지 가능하니 전자상거래 일은 생각보다 간편했고 시간에 구애받지 않아도 되니 양육이 주 업무였던 나에게 ‘적절한 부업거리’였다.


 첫 주문이 들어오던 날의 설렘은 아직도 선명하다. 떨리는 두 손으로 정갈하게 구성품을 담고 로고 스티커를 붙였다. 혹여나 먼지 하나라도 들어갈까 몇 번을 확인 또 확인하며. 제법 그럴싸한 포장을 끝내던 찰나에 모든 것이 순조롭다 느꼈다. 아니나 다를까, 택배 포장 박스를 생각하지 못했던 것이다. 집에는 택배로 물건을 보내기 위한 완충제와 박스는 전무했다. 인터넷으로 박스를 주문하면 이틀은 족히 걸리는데  그 시간을 마냥 기다릴 수 없었다. 고민하기에도 부족한 시간, 마침 분리수거 날이었다. 분리수거장에서 그나마 빳빳하고 깨끗한 박스를 주워왔다.


 아이들과 평소 만들기를 했던 지난날의 나처럼 '전업맘'을 타깃으로 새로운 주문을 기다렸다. 그러나 주문이 다섯 건 들어오면 네 건은 단체 주문이었다. 노인 복지 회관, 도서관, 유치원, 초등학교, 중학교, 미술 학원 등 그 기관도 다양했다. 단체 주문은 일반 주문과 다르게 몇 번의 유선 통화를 거쳐야 했고, 주문서와 세금계산서 등을 이메일로 보내야 했다. 나름 프로페셔널하게 전화를 받으면 수화기 너머로 세 명중 한 명은 악을 쓰고 울거나 엄마를 애타게 찾았다. 계산서 발행을 해야 하는 단체 주문은 스마트 스토어 전산 상으로 거래가 이루어지지 않기 때문에 구매자 수가 올라가지도 않았고, 별 다섯 개 듬뿍 들어간 리뷰도 불가능 하니 주문은 많아도 상품평은 잠잠한 쇼핑몰이었다.


 아이들과 만들며 놀았던 작품들은 대단히 독창적이고 다채로웠다. 그러나 작품에 들어간 나뭇가지와 똑같은 나뭇가지 100개를 줍는 일은 불가능했다. 클레이로 만든 앙증맞은 펭귄의 눈을 담당했던 돌멩이와 같은 것은 아무리 찾아봐도 없었다. 자연을 뒤지며 제작 사업을 하는 것은 한계가 있었다. 그러던 중 클레이를 사려고 들른 도매 사이트에서 기성품처럼 반짝이는 만들기 구성품을 발견했다. 며칠을 고민해서 상품을 구상하고 만들고 찍고 했던 일들이 그곳에 축약되어 있었다. 또한 그 작품의 완성도도 뛰어났고 무엇보다 저렴했다.


 내가 구성한 보잘것없는 상품의 단가가 3,000원이라면 도매 사이트의 근사한 구성품의 단가는 1,000원이었다. 서둘러 제작하던 것을 접고 도매 사이트에서 물건을 사입하기 시작했다. 미술 재료들이 그득했던 집에 상품들이 차곡차곡 쌓여갔다. 물건을 쌓을 수 있는 모든 곳에 물건을 '적재' 시켰다. 아늑했던 집은 순식간에 '창고'로 전락했다.


 제작에서 사입으로 전환한 것은 보름 만이었다. 주문이 물밀듯 들어왔다. 그러나 주문은 꼭 창고 깊숙이 박아둔 것이나 재고가 어디에 있는지 한참은 헤매야 하는 것들이 들어왔다. 주문이 한 번 들어오면 온 집안을 헤집어야 했다. 아이들이 잠든 밤이면 자투리 시간에 소일거리로 하려고 했던 것이 판이 커져갔다. 쉴 새 없이 들어오는 주문에 행복과 혼란이라는 감정이 공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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