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양이 철학>을 읽고
고양이는 가축화한 동물 중 유일하게 야생성을 버리지 않은 동물이다. 어쩌면 고양이는 가축화한 동물이 아닌, 그저 인간을 먹이의 공급처로 생각하는 야생 동물일 수도 있다. 그들은 인간 곁에 배회하며 인간으로 하여금 사랑할 수밖에 없는 맑은 눈망울과 인간의 마음을 녹이는 울음소리, 부드럽고 윤기 나는 털을 모두 갖췄다. 고양이는 울타리 안팎을 넘나드는 신비로운, 그야말로 자유로운 영혼이다.
우리는 행복을 추구한다. 현재 행복을 추구한다는 것은 지금 모습 그대로 행복하지 않다는 의미다. 반면 고양이는 자기 모습 그대로 행복하다. 인간은 도달해야 하는 경지가 고양이에게는 타고난 조건인 것이다. 우리는 현재 내가 갖지 못한 것에 대하여 끊임없이 갈망한다. 많이 가진 자를 우러러보며 그의 물건에 경탄한다. 그러나 고양이는 자신이 살지 않은 삶을 결코 아쉬워하는 법이 없다. 뚱뚱한 고양이를 보며 부러워하지 않으며 자신의 위장을 채움으로서 자체의 삶을 만족한다.
고양이의 사회는 어떠한 위계가 없다. 따라서 개와 고릴라 등과 다르게 우두머리 개념이 없는 것이다. 그들은 어떤 사회집단에도 융화되지 않는다. 때때로 고양이는 친구를 사귀지만 고양이 무리, 고양이 모임 등은 없다. 개가 사람에게 꼬리치고 따르는 것과 다르게 고양이는 대체로 사람에게 무심하다. 고양이의 냉소적인 태도에 우리는 사뭇 서운해하지만 그것은 고양이만의 긍정 표현 방법이다. 고양이의 윤리는 일종의 사심 없는 이기주의다. 오직 자기 자신과 자기가 사랑하는 다른 것들에만 관심을 가진다.
고양이는 인간을 합리적으로 설득하려 하지 않는다. 시간이 충분하지 않다고 불평하지 않고 지금 주어진 삶에 만족한다. 그들은 보편적 사랑보다 무관심을 택한다. 그것이 고양이에게 최선의 친절인 것이다. 행복을 모르는 채로 행복해한다. 이득을 위해서 밤을 지새우는 고양이는 없다. 그저 깊은 수면에서 만족을 찾는다. 수면은 그 자체로 치유이자 행복이다.
인간과 함께 존재했던 수천 년의 세월 동안 고양이는 경악과 공포의 원천이자, 숭배와 미신의 대상이었다. 반짝이는 눈으로 소리 없이 걸어 다니는 고양이는 옛날이나 지금이나 설명하기 어려운 존재다. 고양이에 대한 인간의 모호한 감정, 상반된 태도는 여전히 존재한다. 아주 옛날부터 잔인하게 죽임을 당했고 동시에 사랑을 받은 고양이. 다양한 종교 집단을 통틀어 고양이를 숭배하는 사람과 죽이는 사람이 공존했다.
최근에는 톡소포자충증 같은 질병의 병원균을 퍼뜨리는 환경오염 물질로 취급받는 고양이에 대한 비난이 강력하다. 이와 같은 문제는 길고양이 중성화 사업(TNR) 같은 프로그램으로 반박할 수 있다. 1억 마리의 야생 고양이를 포함하여 전 세계 고양이의 수는 대략 6억 마리로 추정하고 있다. 여전히 세계는 고양이를 혐오하면서 동시에 극진히 사랑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