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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리스 Dec 19. 2024

깨질 사랑

<광인>을 읽고

 하진을 사랑하는 해원을, 준연은 좋아했는지도 모른다. 준연은 하진과 보내왔던 세월만큼 스스럼없는 관계가 익숙했다. 그러나 해원과는 친밀함 속에서 의식적으로 거리를 두고 있었다. 어쩌면 준연이 느낀 그 감정은 사랑이었으리라.


 사건의 발단은 '믿음'이었다. 믿음이 깨지면서 해원은 헤어 나올 수 없는 깊은 심연에 빠졌다. 믿음에 관해 대중은 두 가지 시선이 존재한다. 타자를 순결하게 믿어야 한다는 것과 믿게끔 행동해야 한다는 것이다.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믿음은 한 가지만 할 수 없는 노릇이다. 두 손이 마주쳐야 소리가 나듯 상대방을 믿어야 하며 믿음에 금이 갈 만한 행동은 하지 않아야 한다. 유리잔을 만드는 데에는 여러 가지 물질과 비용이 들어가지만 깨지는 것은 한순간이다. 이것은 사랑에 있어서 아주 중요한 핵심이며, 오래된 사랑도 간과할 수 없는 부분이다. 


 하진은 해원과 사랑하면서 준연의 병간호라는 어쭙잖은 이유로 준연과 한침대에 누웠다. 해원의 감정은 헤아리지도 않은 채 하진은 그랬다. 해원과 연애하면서 사랑한다면서 준연과 위스키 공장에서 하루종일 시간을 보냈다. 해원의 광기 어린 질투는 곧 분노로, 방화로, 범죄로 이어졌다. 


  준연이 위스키 공장에 내려가지 않았다면, 아니 그전에 하진이 준연을 부르지 않았다면 해원과 하진의 사랑은 해피엔딩이었을까. 사랑을 하기로 했다면 하진은 준연을 부르지 않았어야 했다. 준연에게 베푸는 호의와 친절은 우정을 과장한 모든 관계의 균열이 되고 만다.


 사랑은 다 똑같은 사랑이다. 영원할 것 같지만 유한하고 끝나면 그냥 끝나버리는. 한 조각의 사과는 달콤하다. 그러나 그 달콤함은 식도로 사과가 넘어가는 순간 휘발되고 만다. 그러나 사과 그림은 그렇지 않다. 5년 후에도 10년 후에도 예술은 그대로 존재한다. 그림 속 사과는 허상이지만 무엇보다 진실되다. 예술은 그런 면에서 사랑과 닮았다. 사랑은 한 사람의 혼을 휘감아 예술로 승화한다. 사랑하는 사람은 세상 모든 것이 아름다워 보이고 실연한 사람은 그와 반대된 모습을 하고 있다. 그럼에도 사랑은 늘 제자리에 있다. 그것을 누구와 언제 하느냐에 따라 사랑은 또 다른 시작이 될 것이다. 



광인 | 이혁진 | 민음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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