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컷 사마귀에게 느낀 자연의 경이로움
몇 주전, 새벽 운동을 다녀오는 데 아파트 공동 현관문에 매달려 있는 왕사마귀를 발견했다. 집에 도착하니 오전 6시가 갓 넘은 시각이었지만 아이들은 모두 기상 상태였고, 이 기쁜(?) 사실을 전했다. 서둘러 1, 2호는 흥분함을 감추지 못한 채 공동 현관문으로 내려갔다. 이윽고 채집통 안에는 그 큰 왕사마귀가 자리를 잡고 있었다. 아이들은 왕사마귀에게 "초록이"라는 이름을 지어주었다. 1호가 수영 레슨을 가지 않는 날에는 선선해진 오후에 집 앞에 나가서 곤충 채집을 했다. 초록이에게 줄 먹이를 구하는 행위였다. 초록이는 잘도 받아먹었다. 큰 무당거미 두 마리를 저녁에 넣어두고 아침에 일어나면 채집통 안의 무당거미는 흔적조차 없이 사라졌다.
지난 주말, 수리산 아래에서 채집 활동을 했다. 물론 초록이도 데려갔다. 아이들은 초록이에게 먹일 일용할 양식을 구하기에 여념이 없었다. 초록이보다 몸집이 더 큼지막한 사마귀도 잡았다. 그 녀석도 왕사마귀인데, 둘이 같은 채집통에 넣어두면 한 마리는 죽을 것이라는 시나리오를 알고는 있었지만, 우리에게는 여분의 채집통이 없었다. 야생의 다큐를 찍듯 아이들은 작은 채집통에 초록이와 새로 잡은 왕사마귀, 방아깨비, 메뚜기, 풀무치, 잠자리, 거미 등을 모조리다 욱여넣었다. 채집을 한창 즐기고, 돗자리에서 휴식을 취하며 채집통을 관찰했다.
먹이사슬 관계 속에서 엉키고 설켜있을 것이라 짐작했던 것과는 반대로 초록이와 새로운 왕사마귀는 서로 사랑하고 있었다. 새로운 왕사마귀가 초록이를 등에 업고 있는 것으로 보아 새로운 왕사마귀가 암컷이고 초록이가 수컷이리라. 둘은 그렇게 서로를 끌어안고 삼일을 넘게 시간을 보냈다.
그저 경이로웠다. 먹이를 넣어주면 잘도 받아먹던 초록이는 암컷사마귀를 보자마자 그녀의 등에 올라타서 식음을 전폐하고 오로지 사랑에만 전념한다. 점점 초록이의 뱃가죽은 홀쭉해져 실오라기처럼 앙상하기만 한데도 그녀를 뒤에서 포옥 안아준다. 암컷 왕사마귀는 그러는 중에도 홀로 식사를 한다.
오늘 낮에는 몇 날 며칠을 부둥켜 앉고 있던 사마귀 부부가 서로 떨어진 채 멀리서 눈 맞춤을 하고 있다. 마침 채집통 안의 먹이는 떨어진 터라 마음이 조급했다. 짝짓기가 끝나면 암컷 사마귀는 영양보충 때문에 수컷 사마귀를 잡아먹을 수도 있기 때문이었다. 사마귀 부부는 고작 곤충이지만 진실로 사랑하는 것 같았다. 한참을 서로 눈 맞춤을 하더니 암컷 왕사마귀가 다시 초록이를 등에 업는다. 진정한 부부인 것이다. 우리는 서둘러 사마귀 부부의 특식을 준비하러 바깥으로 향했다.
도심에서 곤충 잡기란 버겁기도 하지만 그럼에도 작은 방아깨비 네 마리를 잡아서 사이좋게 개구리에게 두 마리를, 나머지 두 마리는 사마귀 부부에게 넣어 주었다. (개구리도 지난주 수리산에서 데려온 생명체이다.)
초록이는 그렇게 사랑을 나눈지 일주일만에 아내에게 육신을 헌신했다. 자연의 순리가 초록이에게도 열외없이 일어났다. 안타깝지만 받아들여야하는 자연의 이치다.
아이들은 이 작은 자연에서 무엇을 배울까. 특별한 배움 때문에 집 안에 작은 생명체를 키우는 것은 아니었다. 그저 곁에서 더 자주 들여다보고 싶은 그 마음을 헤아렸을 뿐이다. 그렇다고 현재 먹이로 채집하는 방아깨비, 메뚜기, 풀무치, 여치, 잠자리, 무당거미, 귀뚜라미, 밀웜, 거저리 등을 하찮게 여기진 않는다. 강자가(개구리, 사마귀, 도마뱀) 없을 땐 우리는 메뚜기 등의 곤충들에게 그들에 맞는 먹이를 급여하며 최선을 다하여 키웠으며 현재 밀웜 사육통도 그러하다. 언젠간 잡아먹힐 곤충이라고 절대 홀대하지 않는다. 살아있는 순간 동안에는 최적의 사육 환경과 먹이 제공을 위해 공을 들인다.
아이들은 집에서 곤충과 파충류들을 키우며 그들의 세계를 더 자주 엿볼 수 있었다. 개구리와 사마귀의 똥은 분명 다르다. 사마귀가 짝짓기를 하는 과정과 그들이 먹이를 사냥하고 먹는 모습 등 어른인 내가 보아도 자연의 신비는 놀랍고 위대하다. 몇 해 전, 배추흰나비 유충을 키울 때 그 신비는 극에 달했다. 애벌레가 곧 번데기가 되고 이윽고 흰 날개를 뽐내는 배추흰나비 성체가 된 것이었다. 성체가 되어서 날갯짓을 하는 배추흰나비는 자연으로 보내주었다.
아이들은 이 모든 것을 기억할까. 기억하지 못하더라도, 이 엄마는 기억하리라. 아이들이 생명을 키워내며 겪었던 감정과 그 예쁜 모습들을 고이 간직하리라. 아이들도 그 내면에는 신비로운 마음들이 예쁜 씨앗이 되어 품고 있으리라 나는 확신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