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Monologue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아리스 Sep 15. 2023

네가 좋아할 그날까지

내 품에 초딩

 

너그러움은 아이들이 아이답게 굴 때, 이를 받아들이는 태도를 일컫는다. 아이에게 깨끗한 셔츠를 입혀 놓으면 오래가지 않으며, 아이들은 이동할 때 걷기보다는 대부분 달리기를 하고, 나무를 보면 올라가며, 거울을 보면 그 앞에 서서 얼굴을 찡그리는 행동을 인정한다는 뜻이다. 너그러움의 본질은 아이들을 일체의 감정과 소망을 누릴 수 있는 헌법적 권리를 가진 인간으로 인정하는 것이다. … 물고기는 헤엄치고, 새는 비상하며, 인간은 느낀다. 어린이들이 어떤 느낌을 갖는 것은 누구도 막을 수 없다.
_<부모와 아이 사이> 중



오늘 오전에는 아이들과 악당과 경찰놀이를 했다. 당연히 내가 악당이고 경찰은 3명이었다. 나는 장난감 자동차를 타고 경찰들을 위협했다. 저음의 무시무시한 웃음소리를 자아내며 타고 있던 자동차 트렁크에 장난감을 손에 잡히는 대로 욱여넣었다. 에어컨을 틀어 두었기에 실내 온도는 26도에서 27도 사이의 적정 온도였으나 아이들은 붉어진 얼굴에 땀방울은 이내 흐르고 세상 재미있다며 깔깔거린다. 그러고 보니, 이렇게 놀지 않은지가 한참은 되었다. 매일 같은 일상이었는데, 이제 이렇게 놀아주지 않아도 아이들끼리 잘 놀기도 하거니와 연기를 하며 체력적으로 노는 것은 굉장한 소모거리라 생각이 들었던 것 같다. 악당과 경찰 놀이는 시간관계상 짧은 시간이었지만 아이들은 두고두고 이야기를 꺼내며 재밌어했다. 초등학교 2학년인 1호는 이제 이런 역할 놀이는 유치하다고 싫어할 것 같았는데 가장 재밌어하는 것 같다. 이럴 때면 아직 아기 같아서 예쁘고 소중하다.


 주말임에도 아이들과 집 안에서 북적였던 건, 내가 일 년에 한 번 정도 있는 약속이 있어서였다. 유치원 동창인 친구가 결혼한다며 청첩장을 건넸다. 유치원 동창을 30대 중반에도 이렇게 만날 수 있음에 감사하고 귀한 인연들이다. 총 세 명이 만나는 이 모임은 일 년에 한 번 정도 만나지만, 만난 이례로 가장 편안했고 즐거웠던 것 같다. 곧 결혼할 친구까지 유부녀 세계로 온다니, 공통분모가 많아지는 것 같아서 그렇게 느껴졌을 터이다. 또 산본에서 만난 인연들이 내가 거주하고 있는 주변부에 터전을 잡았기에 더 반가웠다. 길어야 3시간일 거라고 얘기하고 나간 외출은 4시간을 훌쩍 넘겨 귀가했다.


 내가 부재중일 동안 남편은 아이 셋을 데리고 식당, 키즈카페, 슈퍼마켓을 배회하며 시간을 보냈다. “오늘 할만했어, 앞으로 주말마다 시간 만들어 줄 수 있겠는데, 친구 자주 만나고 와”라며 유쾌하게 미소 짓는 남편에게 무한 감사의 눈빛을 보냈다. 애정 표현이라곤 일절 없는 내가, 남편이 좋아하는 등 마사지와 허그를 했더니 세상 당황한 웃음을 보인다. 오늘 아침까지만 해도 늦게 일어나는 남편을 게으른 눈초리로 바라보았고, 매일 말만 뻥긋해대는 남편이 한심하게 느껴졌었다. 나도 참 간사하다. 그리고 미안하다. 매일 같은 자리에서 유쾌하게 있는 당신이, 늘 아낌없는 사랑을 퍼주는 당신이 최고이거늘 또 현실의 행복을 간과하고 있었다.


 잠자리 독서 시간에 2,3호가 스르르 잠이 들었다. 1호는 엄마를 독차지할 생각에 입을 틀어막아도 웃음이 새어 나왔다. 한쪽 침대에 2,3호를 눕히고 1호를 품에 폭 안았다. 일부러 불편하게끔 장난 삼아 꾹 누르듯 안았는데, 버둥대지 않고 가만히 있더란다.

“엄마, 엄마가 아까 안아줘서 좋았어”

수줍고도 귀엽게 말하는 1호는 영락없는 내 품에 아기였다. 우리 집 어린이 중 가장 연장자라고, 이제는 초등학생이어서 잘 안아주지 않는 1호도 아직은 엄마의 품을 좋아하니, 나도 좋구나. 고맙다. 네가 좋아할 그날까지 꼭 안아주고 싶다.



매거진의 이전글 초록이의 사랑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