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의 정석> 서평
19세기 유럽 탐험가들이 어느 고립된 사회를 발견했다. 서 태평양 야프 섬 주민들은 커다란 석회암 원반 한가운데에 구멍을 뚫고 그 구멍 뚫린 돌을 고유의 교환 수단으로 만들어냈다. 야프 섬 주민들은 그 구멍 뚫린 돌은 라이(rai)라 명명했으며 라이를 채굴하는 곳은 400킬로미터나 떨어진 팔라우 섬이었기 때문에 여러모로 희소성이 있는 화폐였다. 라이가 야프 섬에서 상거래 매개체로 작동했듯이 현대의 우리는 국가마다 종이에 불과하는 화폐를 만들고 숭배하고 떠받든다.
화폐가 생겨나기 이전의 상거래 수단은 소금, 쌀, 미국 교도소 수감자들의 고등어 파우치, 금 등이 있었다. 소금은 물에 젖으면 녹아 없어졌고, 쌀은 무거웠다. 고등어 파우치는 보관하기 어려웠으며 금은 아직까지 화폐와 동등한 가치를 지니고 있다. 오랜 역사에서 시행착오를 거친 화폐는 오늘날 국가에 큰 업적을 남긴 인물이 새겨진 종이로 대체되었다. 종이돈은 계산 단위가 명확하고, 가치를 저장할 수 있다. 오래 보관한다고 썩거나 시들지 않으며 가벼워서 소지하기 편하다. 교환을 용이하게 해 줄 수 있어서 가치 있는 화폐는 종이에 불과하지만 우리는 그 종이를 귀하게 여긴다.
고유의 가치를 지닌 화폐는 인플레이션과 디플레이션에 따라서 가치가 오르락내리락하기도 한다. 돈은 너무 차갑지도 너무 뜨겁지도 않아야 할 생태계다. 내가 오늘 가려던 식당에 가지 않는다면 나는 절약하는 행위이지만, 그 식당은 손님 한 명을 놓쳤으므로 수입이 줄어들게 된다. 경제학자 존 메이너드 케인스가 말하는 "절약의 역설"현상이다.
역사를 살펴보면 종이화폐를 발행할 권한을 손에 쥔 정부가 그 직권을 남용한 사례는 넘쳐난다. 조지 워싱턴과 대륙 회의가 범한 실책은 그 대표적인 예다. 당시 독립전쟁을 벌이던 식민지 주들은 콘티넨털이라는 지폐를 자체적으로 찍어 냈다. 당시 화폐의 가치는 자유낙하했다. 당시 상황만 고려한다면 종이 화폐는 인간이 생각해 낼 수 있는 최악의 화폐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종이 화폐는 최악의 화폐이기도 하지만 모순적으로 최선의 화폐라고도 할 수 있다. 역대 최고의 내구성과 간편성, 계산 단위 등이 종이 화폐의 최고의 장점을 증명해 준다.
종이 화폐가 생겨나기 이전부터 채굴했던 광물질인 금은 어떠한가. 금은 문명이 싹튼 순간부터 인류를 사로잡아 왔다. 통화량이 금의 양에 의해 제한되기 때문에 금은 하이퍼인플레이션의 가능성이 전혀 없다. 또한 금본위제를 다국가에서 채택한다면 환율이 예상 가능한 패턴으로 고정된다. 종이 화폐의 단점을 장점으로 작용하는 금은 반짝이며 영구적이라는 매력까지 지니고 있다. 그럼에도 금은 위험하다. 교환 수단 기능을 하기 위해서 금의 양은 충분하지 않으며, 가격 변동이 심한 편이다. 마지막으로 금은 가치 저장 수단으로 사용되었을 때 아무런 수익을 올리지 못한다. 금이 종이 화폐를 대체하지 못하는 이유다.
종이 화폐가 생겨나기 전, 다양한 물질들이 화폐의 매개체를 거쳐왔듯이 미래의 화폐는 어떠한 모습일까. 우리는 돈을 얻기 위해 주로 돈을 번다. 투자를 하기도 하고, 길거리에서 운 좋게 돈을 줍기도 하며 혹자는 훔치거나 위조하기도 한다. 2009년 1월, 나카모토 사토시는 돈을 발명했다. 컴퓨터 코딩에 의하여 존재하지 않는 가상 화폐를 새로운 통화로 창조시켰다. 대중들은 비트코인의 가치를 알아보았고 그리하여 비트코인은 가치를 지니게 되었다. 혁신적인 가상 화폐도 단점은 존재한다. 채굴될 수 있는 비트코인의 양은 표면적으로 제한되어 있으며 가치 저장 수단이 될 수 없다. 비트코인은 정부의 간섭이 없어서 신뢰할 수 없지만 역설적으로 정부의 간섭이 없어서 장점으로 가치를 매기기도 한다. 전자화폐의 가장 큰 단점은 분실이나 도난의 위험이 크다는 것이다. 비트코인은 각각 개인 키(일렬의 번호)를 가지고 있어서 전자 지갑에 전자적으로 저장된다. 암호를 적어둔 노란 포스트잇을 찾지 못한다면 비트코인에 넣어 둔 노후 자금을 몽땅 잃어버리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나카모토 사토시는 금융 위기에 대한 분노로 비트코인을 발명했다. 비트코인은 은행가, 정치인, 중앙은행을 배제한 통화가 되고자 했다. 세계 경제는 본질적으로 혼란에 빠지기 쉽다. 그런 혼란에 대해 효과가 입증된 대처 방법 중 하나는 대출 자금의 가격인 금리를 올리거나 낮추는 것이다.
문명은 진화하고 발전해 간다. 현대 사회의 거래 매개체인 종이 화폐 또한 마찬가지다. 불과 몇 년 전까지 자주 사용했던 동전들은 점점 그 존재를 감추고 있다. 종이 화폐도 경조사 아니고서야 보기 힘든 현실이다. 대중들의 지갑은 점점 얇아지거나 없어지고 있다. 종이 화폐보다 신용카드와 삼성 페이, 그리고 애플 페이가 더 각광받은 현대 사회는 종이 화폐의 진화 단계 중 중간 지점에 도달해 있다고 볼 수 있다. 가상 화폐까지 발명된 현시점에서 미래의 화폐는 어떤 형태를 띠게 될 것인가. 종이 화폐는 멸종의 위기를 모면할 것인가. 금융 위기는 기존 경제학에 큰 충격을 주었다. 지난 10년의 경험으로 우리는 몇 가지 교훈을 얻었고, 질문들도 많이 갖게 됐다. 중앙은행의 역할을 더 잘하게 만드는 것이 우리의 목표라고 저자는 단언한다. 즉 거시경제와 금융 부문의 안정을 유지하는 것이 통화 정책이 나아가야 할 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