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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Book Essay

아낌없이 주는 나무

<나는 나무에게 인생을 배웠다> 서평

by 아리스
세월의 풍파에 휩쓸리다 문득 정신을 차리고 보면 해도 해도 벗어날 수 없는 굴레에 갇힌 느낌이 들면서 ‘이렇게 열심히 사는 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 하는 의문이 든다. 이런 의문을 갖는다는 건 인생에서 무언가 갈증을 느끼고 있다는 증거다. 사람마다 중요하게 여기는 가치는 제각각이겠지만 그 중심에 있는 것은 스스로 느끼는 ‘존재 가치’가 아닐까. 나라는 존재가 꼭 필요한 존재인지 확인하고 싶은 마음은 인간이라면 누구나 가지는 본성일 것이다.
_<나는 나무에게 인생을 배웠다> 중




도심에서 나고 자란 나는 흙을 밟으며 놀아본 적 없는 첫 세대다. 흙을 밟는다는 것은 무엇일까. 흙은 대지를 이루는 가장 기초적인 피조물이다. 흙이 깔려있는 대지에는 무수한 미생물들이 바글대며 어디선가 날아온 거대한 생명의 싹은 이내 솟아난다. 이 작은 생명들은 태양의 따사로운 빛을 머금으며 힘차게 자라난다. 검 붉은색의 토양들은 어느덧 생명들의 보금자리로 재탄생하며 녹음의 절경을 자아낸다.


거대한 숲 그 내면에는 다양한 나무들이 살아 숨 쉬고 있다. 나무는 자신이 살아갈 곳을 바람의 흐름에 맡긴다. 그렇게 한 번 정착한 나무의 싹은 흙 속에 단단히 뿌리를 내린다. 막 싹을 틔운 나무는 한동안 성장을 마다한다. 울창한 숲 속에서 곧고 길게 뻗어나갈 우듬지가 성장하기 전에 나무에게는 더 중요한 일이 있다. 더욱 비대해질 어린 나무는 토양에 단단하고 깊게 뿌리내리는 일에만 전념한다. 단단히 뿌리를 내린 작은 나무들이 모여 경이로운 대자연을 만들어간다. 나무 없는 벌판의 대지는 어떤 생명도 자라나기 힘들다.


토양에 뿌리내린 나무는 붉은 토양에서 수많은 생명들을 불러 모은다. 새들은 울창한 나뭇가지들 사이에 앉아 찌르르 노래를 부르기도 하고, 보금자리를 만들기도 한다. 숲 속 동물들은 시원한 나무 그늘에서 잠시 쉬어간다. 나무는 다람쥐들의 놀이터가 되기도 하고 그들에게 나무는 풍요로운 음식 창고다. 나무 한 귀퉁이 볕이 잘 들지 않는 음지에는 다양한 버섯이 피어날 수도 있다. 대벌레, 자벌레, 사슴벌레, 장수풍뎅이, 매미, 하늘소 등 수많은 곤충들은 나무와 하나 되어 일생을 나무에 의존한다.


완연한 가을부터 살랑살랑 떨어지는 노랗고 붉은 낙엽들은 토양 위에 켜켜이 쌓여 흙의 비료가 되어 준다. 차디찬 겨울, 낙엽의 옷을 벗어던진 나무는 강한 추위에도 불구하고 그 자리에 우두커니 서서 다가올 봄을 맞이한다. 봄이 되면 푸르른 싹이 돋아나고 새로운 생명들이 나무들 사이에서 피어난다. 겨울을 이겨낸 나무는 다채로운 꽃들로 다양한 생명들의 사랑방이 되어 준다. 꽃들이 지자마자 나무는 싱그러운 열매 맺기에 바쁘다. 정녕 나무는 아낌없이 주는 존재다. 나무도 병들거나 나이가 들면 아프기 마련이다. 생을 마감한 나무는 죽어서도 대자연에 나무의 몸통을 헌신하기에 바쁘다. 작은 동물들의 보금자리가 되기도 하며, 곤충들의 먹이가 되기도 한다. 썩어가는 나무는 가을날 떨어진 낙엽들과 함께 비옥한 토양으로 다시 돌아가서 자연을 더욱 아름답게 만들어 준다.


점점 도시화되는 오늘날, 우리는 흙을 밟기 위해서 부러 "숲 체험"을 하러 가야 한다. 도시의 아스팔트는 평평하고 단단하다. 딱딱한 아스팔트를 구두를 신고 걸으면 또각또각 소리가 난다. 흙은 밟으면 부드럽고 촉촉하다. 구두의 뾰족한 굽은 흙을 밟으면 흙 속에 파묻히고 예쁜 구두에 더러운 흙이 군데군데 묻기 일쑤다. 우리는 왜 굳이 흙을 묻혀 가며 "숲"에 가는 것인가.


흙은 생태계를 이루는 첫 번째 재료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성경에서는 인간을 흙으로 빚었다고 했으며 우리는 죽어서 한 줌의 흙이 된다. 흙의 첫 감촉은 차갑지만 이내 우리의 체온처럼 따뜻해진다. 따뜻한 흙은 우리가 만지는 대로 모양이 자유롭게 만들어진다. 비옥한 흙에서는 나무의 씨앗이 자라서 나무가 되고 숲이 된다. 그렇게 만들어진 대자연은 다양한 생명들의 터전이 된다. 대자연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경외감마저 느낀다. 맨발 걷기, 숲 치유, 숲 체험과 같은 프로그램은 대자연의 기본 재료인 토양을 만지고, 맨발로 밟고, 느끼면 건강에 득이 된다고 입을 맞춘다.


숲은 한결같은 자리에서 조용히 머무르니 변함이 없는 것 같지만, 계절마다 옷을 갈아입으며 천천히 자신의 속도대로 성장해 나간다. 나무들은 울창한 숲을 이루며 다양한 생명들의 보금자리와 양분을 선사한다. 매일 똑같은 도시와 다르게 숲은 매일이 다르다. 어제와 오늘의 나무는 다르고 바람의 깊이도 분명 다르다. 쨍쨍 내리쬐는 햇살이 있는가 하면, 먹구름만 가득해 금방 비가 쏟아질 것 같은 숲은 맑은 날의 숲과 다른 풍경을 자아낸다. 봄과 가을은 같은 숲임에도 전혀 다른 색깔로 숲을 물들이며, 계절마다 찾아오는 생명들도 당연히 다르다. 그저 나무는 그 자리에 우두커니 서서 생명들에게 주기만 할 뿐이다.


빠르게 흘러가는 도시의 시계는 숲에 들어오는 순간 잠시 멈춘 듯하다. 마치 심장이 알아차리기라도 한 듯 안온한 박동수로 뛰어가고 괜스레 호흡이 길어진다. 길고 느린 호흡은 숲의 좋은 공기를 내 몸으로 흡입한다. 내쉬는 숨에는 몸속 노폐물을 내뱉기라도 하는 듯 천천히 그리고 길게 이산화탄소를 뿜어낸다. 걸음걸이도 느려진다. 느려진 걸음에 맞추어 시선도 다채로운 자연물들과 눈을 맞추며 자연의 경이로움을 느낀다. 어렸을 때의 나는 사실, 숲은 "더럽고 위험한 곳"이라고 여겨져서 싫었다. 화려한 도시가 좋았다. 나이가 들어가는 것인지 숲이 좋아지는 지금 내 취향에 맞게 서가에서 <나는 나무에게서 인생을 배웠다>라는 책 제목을 집어 들었다. 제목처럼 잔잔한 책은 잔잔하게 읽혔다. 아이를 키우고 있기에 숲의 이점은 나에게 더욱 크게 스며든다.


점점 삭막해지는 도시는 아이들이 뛰어놀 공간이 턱없이 부족하다. 숲은 아이들이 마음껏 뛰어놀고 스스럼없이 만지고 몰두하여 탐험하기에 최적의 장소이다. 숲은 모든 것이 아이들에게 놀잇감이다. 널브러진 돌멩이나 나뭇가지들을 한데 모아 그들만의 역할극에 심취한다. 돌멩이로 탑을 쌓기도 하고, 나뭇가지로 다양한 도구를 만들기도 한다. 떨어진 꽃잎과 낙엽들이 있는 계절이면 놀잇감은 더 풍부해진다. 꽃잎을 돌멩이로 빻아서 요리 놀이를 하면 종일 놀아도 시간이 부족하다. 잘 말려진 낙엽들은 손으로 부스러뜨려 여러 놀이 재료로 사용하기에 안성맞춤이다. 개중 모양이 마음에 드는 낙엽이나 꽃잎들은 고이 간직하며 책 사이에 끼워 놓기도 한다. 자연물을 만지다 보면 그 속에서 공존하는 수많은 곤충들을 만난다. 4월이면 냇가에 개구리알과 도롱뇽 알을 직접 눈으로 관찰할 수 있고 5월부터 흐르는 계곡물에 버들치를 비롯하여 올챙이 등 곤충의 유충들이 활개를 펼친다. 6월의 참나무 아래에는 사슴벌레와 장수풍뎅이 유충들이 토양 아래 노닐고 있으며, 7월이면 본격적으로 메뚜기과 곤충들이 뛰어다닌다. 8월에는 사연 많은 매미들이 합창하기에 바쁘고, 9월이면 따뜻한 봄날부터 보이던 생명들은 꽤 듬직하게 자라났다. 올챙이들은 어느덧 꼬리와 다리를 감춘 채 어엿한 개구리가 되었다. 10월이면 그 수가 확연히 줄지만 여전히 잠자리를 비롯한 다양한 곤충들이 살아 숨 쉰다. 숲은 자연이기에 날씨의 영향도 많이 받는다. 아이들은 대자연에서 뛰어놀며 계절의 변화를 느끼고, 삶의 지혜를 스스로 터득해 간다.


저자는 나무 의사라는 직업군이 생겨나기 전부터 아픈 나무들을 살피고 치료해 주었다. 30년이라는 긴 세월 동안 사명을 다해 최선을 다한 저자는 오히려 나무에게서 많은 것을 배웠다. 세상에서 가장 나이 많고 지혜로운 철학자 나무는 세상을 단단하게 살아간다. 그 어떤 시련에도 불평하지 않고 묵묵히 처음 그 자리를 지켜낸다. 나무는 내일을 걱정하느라 오늘을 망치지 않는다. 그저 자연의 이치에 맞게 오늘을 살아간다.


저서를 읽고 난 뒤, 숲을 보던 내가 나무 한 그루 한 그루를 바라본다. 나무의 이름은 잘 모르지만 보이지 않는 뿌리는 얼마나 깊을까 상상해 보기도 하고, 하늘 높이 치솟은 우듬지의 높이에 그 나무의 나이를 추정한다. 바람의 숨결대로 흔들리는 나뭇잎들을 숲의 나무들과 비교해 본다. 자세히 보니 나뭇잎의 모양도, 나무의 몸통도 모두 다르게 생겼거늘 여태 숲을 이루는 하나의 나무라고 여겨왔다. 세월의 거친 풍파에도 같은 자리를 지키는 나무에를 바라본다. 저자처럼 나무에게서 지혜를 얻기 위해 오늘도 나무를 보러 숲으로 향한다. 곧 알 것만 같다.


여전히 선택은 어렵다. 크고 작은 선택 앞에서 두려움이 밀려올 때면 산에 오른다. 오늘을 사는 나무를 보기 위해서다. 아직 오지 않은 내일을 계산하느라 오늘을 망치고, 스스로를 죽이는 내가 되지 않기 위해 몸으로 전하는 나무의 조언을 듣는다.
_<나는 나무에게 인생을 배웠다>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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