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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리스 Oct 20. 2023

매일 쓰는 연습

 쓰기가 좋아서 입문한 브런치에서 역설적으로 쓰기가 어려워 매번 망설여진다. 준비된 독자들 앞에서 나의 삶은 따분하거나 굴곡이 없어서 지루하다. 챌린지처럼 나와의 약속을 어제부터 했던 터라 약속을 지키려고 기억을 곱씹는다. '감사 일기'가 있는가 하면 보도 섀퍼의 '성공 일기'라는 것도 있다. 매일 잘 해낸 일 다섯 가지를 써가는 훈련이다. 뾰족할 것 없는 지루한 삶에서 매일 잘하는 일 다섯 가지를 추려내는 일은 부끄럽기도 하고 부질없어 보이지만 쓰기 연습도 할 겸 꽤 괜찮아 보였다. 마침 글감이 떨어졌던 참이기도 했다. 


 



스타벅스에서 늘 그렇듯 톨 사이즈 핫 아메리카노를 주문하고 쇼케이스에서 한참 망설였다. 지난번 미키 딜라이트 티라미수 케이크를 잘 먹었던 아이들이 생각나서였다. 또 먹고 싶다던 아이들에게 '다음에도 사 줄게'라고 약속은 했는데, 진열대 앞에서 계산기를 두들긴다. '저 가격으로 떡을 사면 배부르게 먹고도 남을 텐데', '저 양으로는 딜라이트 케이크를 세 개는 사야 해, 너무 과소비야'. 생각이 마무리되기 전 커피는 나왔고 머그컵을 들고 3층으로 올라갔다. 비가 와서 챙겨야 할 가짓수가 하나 더 늘었다고 텀블러 챙기는 것을 깜빡했다. 아파트 지하주차장에서 알아차렸지만, 500원을 아낄 것인가, 5분을 아낄 것인가 하는 저울질은 오래가지 않았다. 제법 시끌벅적한 카페에서도 집중이 잘 된다. 소음들은 마치 숲처럼 내가 몰입해 있으면 하나의 배경음처럼 들리지만, 이야기를 하나하나 들여다보면 숲이 나무가 된다. 카페의 BGM, 아래층의 두 여자의 수다 소리, 바로 옆 테이블의 중년 여성들의 담소, 간혹 들리는 남자들의 중저음 얘기소리들이 오늘은 협주곡처럼 조화조웠다. 이어폰을 테이블에 두고 끼지 않을 정도로. 계획을 지킬 만큼만 세워두어서인지 계획한 오전의 일과를 모두 해냈다. 집에 와서는 비가 한 두 방울 내리지만 라떼 산책을 다녀왔다. 고양이 밥까지 뺏어먹는 라떼는 최근 들어 배가 남산만 해졌다. 노견이라 비만함이 걱정된다. 내일은 다른 일은 제쳐두고, 라떼 산책이 아닌 운동을 다녀와야 할 것 같다. 


 하원한 3호가 만나자마자 업어달라고 애교를 부린다. 힘들어했던 등원과 유치원 생활을 마친 3호가 고맙고 기특하여 두말 않고 업어줬다. 30분 후 유치원에서 나오는 2호를 맞이하는데 내 등에 폭 기댄 3호의 온기에서 곤히 자고 있음을 느꼈다. 앞으로 20분을 더 업어야 한다. 3호가 매일 유모차처럼 타는 킥보드와 오늘은 우산 세 개까지 있으니 짐이 상당하다. 나는 2호에게 기댈 수밖에 없었다. 간혹 있는 일이라 엄마 등에서 자고 있는 3호를 보자마자 2호는 킥보드 두 개를 끌고 묵묵히 집으로 향한다. 예비 초등학생이지만 이럴 때면 듬직하고 큰 도움이 된다. 그럼에도 50분 동안 15kg의 3호를 업고 있으려니 허리 중추 쪽이 아파왔다. 장 우산 세 개도 걸림돌이 되었다. 길바닥에 버리고 싶은 심정을 버리고, 중간중간 멈춰 서서 큰 호흡으로 심신을 가다듬었다. 얼마나 힘들었으면 당시에는 '애 세명도 낳았는데, 이런 것쯤이야, 할 수 있다!'를 내면에 세기며 왔더란다. 듬직했던 2호의 행동을 칭찬해 주는 것도 아끼지 않았다.


 엄마 없는 집에서 친구와 놀지 말라고 당부했는데, 집에 와보니 1호는 친구와 집 안에서 놀고 있었다. 사정이 있었을 것이라 여기며 아이를 꾸중하지 않았다. 유연하게 넘어간 내가 조금은 달라지고 있는 것이 느껴졌다. 어제 데려온 1호의 친구가 엄마 마음에 들어서 일 수도 있겠다. 


 오후 간식으로 방울토마토와 자두를 먹고 저녁으로 데친 두부와 계란말이 그리고 어제 먹다 남은 찜닭을 아이들에게 먹였다. 가공 식품을 밥상에 올릴까 망설이다가 뺐다. 물론 간식으로 공장에서 나온 과자를 먹기는 했다. 가공 식품 없이도 소박한 식탁에 감사하며 먹는 아이들이 고마웠다. 아빠에게서 배운 대로 "엄마는 요리사!"라며 엄마의 요리를 치켜세우니 그 순수한 마음이 또 예쁘고 힘이 절로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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