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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리스 Oct 26. 2023

일상이 행복이라니

성공일기를 쓰려고 했는데 변질된 행복일기

 아이들을 재우는 불 꺼진 침대에서 한 손으로 가벼운 전자책을 집어 들었다. 500페이지 되는 책의 마지막 단락을 읽어 내려가는데 졸음이 솔솔 밀려온다. 억지로 잠을 밀어낼 수도 있었지만, 전자책을 내려놓았다. 아직 종알대는 아이들에게 베개 삼아 팔을 내어주고 아이들의 머리맡 샴푸 냄새를 맡으며 스르륵 잠이 들었다. 밀려오는 잠에 빠져든 이유는 미라클 모닝의 맛을 보기 위함이었다. 개운하게 잤다 싶어 불 꺼진 침대에서 스마트폰을 들여다보니 오전 1시 무렵이다. 애매한 시간에 애써 잠을 청해 보지만 말똥 해진 정신에 책을 읽고, 내일의 스케줄을 그려본다. 내일은 도서관에 들러서 지난주 빌렸던 그림책 50권을 반납하고 새로운 그림책들을 대출해야겠다. 2주 전 대출했던 내 책 2권도 반납하고 서가에서 책을 고르는 설레는 계획도 세워본다.


 며칠 전 우편함에 경찰서에서 온 편지가 들어있었다. 점점 오르는 물가에 대응하듯 '절약'을 실천하고 있는 요즘이라서 그 편지는 '방심'에 대한 '후회'로 다가왔다. 펼쳐보진 않았지만 '과속'에 대한 벌금을 납부하라는 안내문일 것이 분명했다. 나는 규율은 준수하는 편이나 속도를 즐기는 운전자다. 과속카메라가 나타나기 전 규정 속도로 줄이며 운전하는 습관이 있는 나는 한동안 규율을 잘 준수했구나 싶었는데 경찰서의 편지를 받고 속이 쓰렸다. 재빨리 납부하고 쓰라린 기억을 지워야지 싶어서 편지를 열어보려고 했다. 고지서를 아무리 살펴봐도 내 이름이 아닌 낯선 이름이 받는 이에 적혀 있었다. 자세히 들여다보니 우리 집이 아닌 다른 집으로 날아온 편지였다. 잘못 날아온 편지에서 안도감과 작은 기쁨을 느꼈다.


 어제까지 아이들 담임교사와의 2학기 상담이 끝났다. 질문할 거리들을 따로 작성하고 시뮬레이션까지 했던 지난 학기와 다르게 이번 상담은 아무런 준비 없이 찾아갔다. 학급에서 좋은 영향력을 품어낸다는 1호, 친구들에게 사랑의 화살표를 많이 받는다는 2호, 순조롭게 유치원에 적응 중인 3호는 학급 내에서 사건사고 없이 무탈하게 지내고 있었다. 아이들이 어리고 주양육자인 나와 끊임없이 소통하기에 다 아는 사실이었다. 그래서 이번 상담은 '부러 시간을 내서 대면해야 하나' 좀 고민이 되기도 했다. 그럼에도, 내 아이를 1년 동안 지도하는 교사를 대면해서 소통을 하면 몰랐던 사실들을 알아가거나 그녀들의 교육관을 엿볼 수 있으니 다녀오길 잘했다 여긴다.  


  상담 시간은 당연히 오후인지라 남편의 휴가가 필요했다. 남편은 재택근무를 하겠다고 하더니 아이들이 등원한 오전, 혼자서 나와의 데이트 계획을 세운다. 오전의 나는 별것 아니지만 분명 세워놓은 계획이 있어 남편의 행보가 좀 불편했다. 매주 아이들과 노닐며 "자기랑만 놀고 싶다", "언제 우리끼리 데이트해?"라고 묻던 남편의 진심 어린 말들이 스쳐 지나갔다. 남편과 자주 갔던 카페에 갔다. 남편은 밥을 먹고, 영화를 보고 싶어 하지만 3시간이라는 오전의 짧은 시간에는 뭐 하나 하기에 애매했다. 가끔 하는 오전 데이트는 늘 그렇게 계획을 세우다 브런치를 먹거나 카페에 앉아서 시간을 보낸다. 그의 B급 어체들은 아빠로서 참 별로라고 여겨졌는데, 둘이 있으니 매력 있어 보였다.


 남편은 한결같음을 넘어서서 나를 위하는 마음이 점점 커진다. 요새 들어 나보다 나를 더 잘 아는 사람 같다는 생각도 든다. 전화 통화를 할 때면 내 음성을 한 마디만 듣고도 "오늘은 왜 기분이 안 좋아?" 묻는다거나, 분초로 내 안위를 살피며 내가 기분이 좋을 때면 모든 행복을 향유한 듯 그의 얼굴에는 행복이 번진다. 그런 남편이 오늘따라 더 고마워서 뒤에서 살포시 안았다. 넓은 허리 면적에 두 팔을 넓게 벌려 "오늘 너무 고마워"라고 진심 어린 인사를 건넸다. 재택근무를 한다던 남편이 오후 내내 육아 동지에 되어주어서였다. 남편은 가끔 내가 이렇게 애교(?)를 부리면 몸 둘 바를 몰라한다. 그런 모습까지 귀여워 보이니 우리 참 잘 지내고 있구나 이런 게 행복이지 싶었다. 연애기간까지 도합 13년이 넘는 시간 동안 그의 우직한 사랑에 벅차오르다가 때론 감격스럽다. 남편은 주변 사람들에게 "와이프가 싫어하는 행동은 안 해" 라며 순탄한 결혼 생활에 대한 지혜를 나눠주기도 했다. 그도 산 세월만큼 몸에 배어있는 습관들이 분명했는데, 점점 나에게 맞춰간다. 사람이 이렇게 변할 수도 있는가 싶을 정도로 많은 것들을 여전히 바꿔나가는 남편, 그런 남편은 오늘도 진심 어린 눈으로 나에게 "예쁘다", "사랑한다" 말한다.


수년 전에는 그런 남편이 '변심(變心)'할까 봐 두려울 정도로 행복했다. 쓸모없는 두려움은 최근 '남편이 죽으면 어떡하나'하는 더 쓸모없는 두려움으로 변질됐다. 이렇게 행복해도 되나 싶을 정도로 근심이 없으니 행복의 끝이 있을까 봐 두렵기도 하다. 글을 쓰기로 작정했는데 삶이 영 순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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