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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Book Essay

미워하고 사랑하라

<다행한 불행> 서평

by 아리스

불행한 부부 사이의 모습을 자식의 눈으로 바라본 저자에게 결혼은 그야말로 미친 짓이라고 생각했다. 성인이 되고 나서는 엄마에게 이혼을 권유했지만 엄마는 불확실한 행복보다 익숙한 불행을 선택하셨다. 보고 자란 대로 저자는 결혼하지 않으려고 했다.


비혼 주의자였던 저자는 결혼 적령기가 되니 결혼을 해야 되겠다고 문득 생각했다. 그렇게 생각이 짙어질 즈음 아무 남자와 결혼한다. 그렇게 사랑하지도 않은 적당한 남자와 한 결혼은 불행의 연속이었다. 결혼의 성급함과 조급함을 따지기에는 너무 늦었다. 아빠의 영향이었는지 가난보다 남편의 외도를 불행의 이유로 생각했다. 그 시절의 가난은 흔한 일이었으니 흠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결혼하면 함께할 줄 알았던 놀이는 전부 혼자서 하는 놀이였고 혼자 하는 놀이는 금방 싫증이 났다.


생후 몇 개월 안된 아기를 데리고 이혼을 결심한 저자는 가난했지만 한 부모의 삶이 더 편했고 나름 즐겼다. 돈이 궁핍할 때면 아이를 원망하다가도 어린 딸은 위태로운 삶의 이유가 되기도 했다. 아빠가 없는 가정에 대한 좋지 않은 시선만 빼면 혼자서 아이를 먹여 살리는 일은 제법 괜찮았다.


악착같이 일해서 좀 안정을 찾을 때 즈음 괴기한 행색의 남자가 찾아온다. 그 남자는 다름 아닌 전 남편이었다. 딸이 보고 싶다고, 잘한다고 비는 노숙자와 같은 몰골의 전 남편을 받아준다. 20년 만에 재회한 남편은 새로운 사람처럼 낯설었다. 매일 술에 찌들어 삶을 간간이 버텨내고 알코올에 담근 인성은 낮과는 다른 사람이었다. 알코올 의존증이었다. 벌이를 하지도 않았으며, 벌이를 하려는 노력도 없는 남편을 보고 있으면 화가 치밀었다. 위자료를 받아도 시원찮을 판에 돈을 주고서라도 다시 내보내야 하나 그때의 저자는 이루 말할 수 없는 복잡한 심경이었을게다.


저자라고 완벽한 아내는 아니었다. 교활하고 취향이 굳건한 저자는 남편의 취향을 존중하지 못한다. 둘이 사는 곳에서 아내의 취향대로 꾸민 집에는 남편이 고른 물건은 거의 없었다. 집은 마음 편히 쉴 수 있는 곳이어야 하는데, 저자는 시종일관 남편에게 잔소리를 퍼부었다. 내 집에서 긴장을 강요당한 저자의 남편은 그동안 어떤 세월을 살았을까. 상상만으로 숨이 막힌다.


싸움도 열정이나 힘이 있을 때나 가능한 법. 욕심으로 가족을 들들 볶다가 초월 쪽으로 가닥을 잡는 법을 알아간다. 타인을 완벽히 이해하는 건 어차피 불가능한 일이니 체념하거나 포기한다. 저자의 남편은 시종일관 성격이 느긋하다. 생각과 감정을 내려놓고 세상을 관조하듯 사계절 같은 색채를 띤다. 저자는 그런 남편이 지루하지만 지겹지 않다. 변하지 않을 것 같던 저자의 남편도 변해간다. 알코올에 의존하는 횟수가 현저히 줄어들었고 밥을 먹으면 숟가락 놓기 바쁘게 설거지를 한다. 저자를 위한 요리도 하면서 주말이면 나들이를 가자는 제안도 한다.


부부란 서로 사랑하면서 동시에 미워하는 것이 당연했다. 지금도 저자는 남편을 미워하지만 그 무엇이든 '적당히' 살려는 꿈이 생겼다. 미지근한 남편과 살다 보니 생긴 소망이지만, '적당히' 사는 것 또한 최선을 다한 삶 못지않게 어렵다.


저자는 홀로 아이를 키워가며 힘든 암 투병생활을 했고 20년 만에 전 남편과 재결합했다. 맞는 것이라곤 하나도 없었던 남편과 지금도 온도를 맞춰가고 있지만 달라진 것은 하나 있다. 나쁜 일도 결국 지나간다는 것이다. 둘째 아이를 뱃속에 품고 있었던 시절의 내가 생각났다. 남편이 너무 미워서 없어졌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매일 저녁이면 고주망태가 되어 들어온 남편을 한 대 쳐주고 싶었는데 그러지 못해서 달아오른 화는 내내 나를 부정의 감정에 내몰았다. 하루는 너무 화가 나 남편의 옷가지들을 한데 모아 현관문 밖으로 던져버린 적도 있었다. 그 옷을 가지고 어디든 나가서 살라고. 남편이 너무 밉고 그래서 힘든 결혼 생활은 매일 밤 인터넷에서 나보다 더 자극적인 부부의 이야기를 찾으며 스스로 위로했다. 그럼에도 술에 찌든 남편과 대화를 하려고 하면 꼭 싸움이 불거졌고, 이 사람과 결혼한 내가 정말 후회스러웠다. 아이만 없었다면 쉬웠을 결단을 결코 하지 못하며 하루하루를 버텼다.


지금의 우리는 자녀가 세 명으로 불어났다. 남편은 현재, 이름 빼고 모든 걸 바꿨을 정도로 그 모든 것을 나에게 맞춰준다. 비로소 남편이 사랑스럽다. 나는 나보다 남편을 바꾸려 했다. 감사하게도 남편은 그렇게 자신을 타자에게 바꿔간다. 사랑이라는 이유 하나로. 그게 뭐라고 마음의 그릇에는 행복이 매일 가득 차고 넘친다. 그런 남편이 예뻐 보이니 이제야 나도 변해간다. 잔소리를 줄이고, 남편을 사랑하려고 부단히 노력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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