뭐가 문제인지 모르는
한국에서 성인지 감수성 문제가 본격적으로 대두되기 시작한 것은 약 10년이 채 되지 않았다. 아직도 여러 조직, 단체, 학교 및 회사 등에서 성인지 감수성 문제로 성희롱, 성폭력 사건들이 자주 보도된다. 이러한 문제는 사실 5-10년 정도의 교육이나 홍보로 예방되거나 드라마틱하게 나아질 거라 보기는 어려운 게 사실이다. 국가와 사회 전반에 걸쳐 문화적으로 제대로 자리를 잡아야 만이 어느 정도 만족스러운 수준에 도달할 것이다. 이번 글에서는 회사에서의 종종 발생하는 문제점들에 대해 예를 들어보고 이럴 경우 어떻게 대처하는 것이 좋을지 이야기해 보고자 한다.
사실 이러한 성인지 감수성 문제로 인해 발생되는 사건들은 회사의 크고 작음을 막론하고 여기저기서 터지고 있다. 대기업의 경우 전체 임직원들을 대상으로 해서 지속적인 교육을 진행하고 있고 또 회사의 사회적 책임 부분이 회사의 가치와 이익에 크게 작용하므로 대기업 집단에서 더 민감하게 다루고 있다. 하지만 사건의 발생을 예방하고 임직원들의 사고와 의식을 크게 향상하는 데에는 오랜 시간이 필요할 듯하다.
국내 굴지의 글로벌 대기업에서 있었던 일화를 예를 들어 보면, 사실 밖으로 알려지지는 않았지만 회사 내 임원들 사이에서 특히 여자 임원들 사이에서 이것이 국내 글로벌 기업의 단면임에 탄식을 자아냈던 이야기이다. 문제는 이 기업의 임원 워크숍에서 발생했다. 어쩌면 그럴 수도 있지 하고 가볍게 넘길 만한 일이나 지속적인 교육과 내부 시스템 확충에 많은 투자를 하고 있는 대기업 임원의 의식 수준을 보여주는 것이라 절대 가볍다고 보기 어렵다.
임원 워크숍에서 부사장급 임원의 모두 발언이 있었다. 같이하고 있는 수십여 명의 임원들의 자칫 딱딱할 수 있는 분위기를 재미있는 이야기로 풀어나가려고 한 것으로 예상된다. 이야기의 내용은 이렇다. “저는 골프를 너무 좋아합니다. 그렇다고 골프를 매우 잘한다고 할 수는 없습니다. 시간이 나는 대로 꾸준히 연습하고 골프 라운드 중에 진중하게 임합니다. 골프가 좋은 것이 꾸준히 연습하면 점수도 조금씩 좋아지고 특히 그린 위에서 퍼팅할 때 최대한 집중하여 그린을 읽고 힘과 스피드를 조정하면 아무리 먼 거리라 할지라도 볼을 홀에 직접 넣거나 근처 1m 이내에 볼을 붙일 수 있습니다. 그 이유는 골프 그린의 홀은 움직이지 않으니까요. 그런데 저는 집에 홀이 하나 더 있습니다. 아무리 연습하고 집중해도 직접 넣거나 근처에 바짝 붙여 놓기가 어려워요. 그때그때 다르고 변덕이 심해서 거의 불가능에 가깝습니다.” 그 자리의 대부분의 임원들은 재미있다는 반응으로 흥겹게 웃었다. 하지만 이 자리의 여자 임원들은 어땠을까? 마지못해 미소를 짓거나 얼굴이 굳을 수밖에 없었을 것입니다. 물론 이 자리 임원들의 90%는 남자였다. 그래서 모두 발언을 한 부사장급 임원은 10%의 여자임원들이 같이 있었다는 것을 잊은 것일까? 아닙니다. 그 부사장은 본인의 유머가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그냥 우스개 소리라고 가벼운 농담이라고 믿으니까. 이 분의 성인지 감수성이 국내 글로벌 대기업의 이미지와 가치에 과연 부합한다고 생각되지 않는다.
또 다른 예는 국내에 진출해 있는 글로벌 외국계 대기업의 일화이다. 외국계 기업이라서 인지는 몰라도 이 회사의 여성임직원의 비율은 동종업계 타국 내 기업보다 월등히 높다. 여성임원도 젠더 이퀄러티 정책에 따라 그 비율이 40%에 육박하는 기업이다. 여기서의 문제는 반복적으로 발생하였는데 회식자리에서 발생하는 빈도수가 매우 높았다고 한다. 여성임원을 중심으로 부서 회식이 있는 경우, 매번 이 여성임원의 양옆에는 젊고 잘생긴 남자 직원들의 자리였다고 한다. 이것부터가 이 회사의 성인지 감수성이 어떤지 적나라하게 보여준다고 할 수 있다. 대부분의 피해를 당한 남자 직원들은 이슈를 일으킬 경우 문제 해결보다 자신에게 닥쳐올 불이익을 우려해 아무리 더러운 기분, 수치심이 들더라도 대부분 참아왔다고 한다. 수년간 관례처럼 마치 회사의 고유문화처럼 자리 잡은 행태였던 것으로 보인다. 상황은 이렇다. 젊은 남자 직원들이 여성임원의 양옆에서 마치 호스트클럽처럼 술자리를 보좌하고 술이 거나하게 취한 여성임원은 가끔 남자 직원에게 뽀뽀를 하거나 허벅지 안쪽에 손을 넣거나 하는 행태를 보여온 것이다. 이것을 어렵게 여기거나 피하려 하는 남자 직원들에게는 “남자**가 뭐 그리 빼냐”, “왜? 흥분돼?”, “너는 여자 친구에게 사랑받기 글렀다” 등 천박한 말들을 서슴없이 해댔다고 한다. 이런 사건들이 비일비재하게 발생하는 것으로 보인다. 정작 가해자들은 “이것이 뭐 그리 문제가 되느냐?”, “그냥 장난인데”, “장난을 진심으로 받으면 어쩌라는 거냐?” 등 전혀 문제의식이 없다. 정말 한심한 의식 수준이다.
회사 내의 성폭력의 경우는 그 정도가 너무 심하고 뉴스에도 자주 나오는 사건들이라 여기서 굳이 더 많은 예를 들어 이야기하지 않았다. 하지만 우리 모두가 정확히 인지해야 하는 것은 성희롱과 성폭력은 범죄라는 것이다. 그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범죄임에는 틀림없음에 언어적, 행위적 성희롱 및 성폭력에는 피해자 및 주변인들이 단호히 대응해 주어야 한다. 회사에서 이런 사건에 미온적 대응을 한다면 개인이라도 반드시 형사고발을 하여야 한다. 회사는 나의 행복을 위해서 다니는 곳이다. 하지만 기본적 인권이 유린됨에도 참고 버텨서 얻을 수 있는 행복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