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별은 준비가 되어있던 되어있지 않던 언제나 힘든 거니깐.
설 연휴에 나에겐 당숙 어른, 즉 아빠의 사촌이 상을 당하셨다. 하지만 코로나 때문에 온 가족이 장례식에 참석할 수 있는 상황은 아니었기 때문에, 우리 가족을 대표하여 아빠만 장례식을 다녀오셨다.
엄마와 나는 1박 2일 동안 아빠를 목이 빠져라 기다렸다. 분명 48시간도 안 되는 시간 동안 아빠를 기다리기만 하면 되는 거였는데, 설 연휴라 그런지 그 시간이 더 길게 느껴졌다. 그렇게 아빠를 하염없이 기다리다 보니 아빠가 걱정되었다. 심지어 뉴스를 보니 설날 성묘 때문에 차도 밀린다는 데 아빠가 너무 피곤해지실까 봐 걱정이 안 되려야 안될 수가 없었다. 게다가 아빠의 건강이 막 좋지는 않은 터라 운전하다가 혹시 사고라도 나면 어쩌나, 사람 많은 데 가서 코로나라도 걸리면 어쩌나 별 생각이 다 들었다. 엄마와 나는 문자로 '아빠, 잘 때도 마스크 벗지 마', '차 조심하고 졸리면 휴게소에 차 세워 놓고 자, 길가에다가 세우면 안 돼', '힘들면 큰아빠랑 돌아가면서 운전해'라고 몇 시간에 한 번씩 문자를 보내 놨다.
다행스럽게도 아빠는 무사히 다음날 저녁쯤에 집에 도착하셨다.
"아빠, 수고했어. 차 많이 밀렸어?"
"아니, 그렇게는 안 밀렸어."
"여보, 장례식에 사람 많았어?"
"아니, 코로나라 그런지 사람 많이 안 왔더라고. 너무 텅텅 비어 있어서 괜히 민망하더라"
아빠는 장례식에서 만난 가족들의 근황을 우리에게 들려주시며, 세월이 많이 흘렀긴 흘렀나 보다고 다들 많이 늙으셨다는 말씀을 해주셨다. 그렇게 두런두런 얘기를 나누다가 엄마를 바라보며 갑자기 뜬금없는 말씀을 하셨다.
"당신은 나 너무 사랑하지 말어."
아빠의 말이 황당해서 나는 아빠에게 되물었다.
"뭔 소리여"
아빠는 장례식에서 우는 사람들을 보며 갑자기 엄마와 내 생각이 나셨다고 말씀하셨다. 언젠간 자기도 죽을 텐데 엄마와 내가 아빠의 장례식에서 저렇게 울 것을 생각하니 기분이 먹먹해지셨다고 한다. 그래서 문득 든 생각이 엄마가 나중에 덜 슬프려면 아빠를 덜 사랑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 말을 듣고 엄마는 아빠에게 답하셨다.
"나는 당신 없으면 못살지. 내가 당신을 얼마나 사랑하는데. 당신이랑 한날한시에 죽어야지."
"우리 여보는 나 없으면 못살아?"
"당연하지, 내가 우리 여보를 얼마나 사랑하는데!"
"나도 우리 여보 너무 사랑해서 당신 없으면 못살지~"
나는 엄마 아빠의 닭살스러운 대화와 애정행각을 가만히 보고 있다가 입을 열었다.
"아니 다들 너무 이기적인 거 아녀?"
"?"
"?"
"아니 그러면 나보고 엄마랑 아빠 장례식을 동시에 치르라는 거야? 아니 자식도 생각을 좀 해줘야지. 엄마 아빠가 동시에 나 버리고 가면 어떡해? 말이 돼? 나는 그러면 슬픔을 한 번에 2배로 겪으라는 거야? 진짜 이기적이네. 빨리 나한테 미안하다고 해. 둘 다 오래 살생각을 해도 모자란 판에 뭔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하고 있어."
그러자 아빠의 표정에서 장난기가 슬금슬금 드러나며 나의 불만을 받아치셨다.
"에이 우리 딸은 우리 없어도 잘 살걸? ㅋㅋ 너 봐봐. 지금도 좋게 말하면 되는데 화내면서 말하잖아~봐봐~지금도 엄마 아빠한테 말도 막 하고~"
"아니.. 그거는 엄마 아빠가 황당한 말을 하니깐 그렇지!"
"알았어 알았어~그니깐 우리 딸, 엄마 아빠 있을 때 잘해~나중에 후회하지 말고~"
"아니 솔직히 나만큼 잘하는 딸이 어디 있어! 인정하는 부분입니까?"
"그럼 인정하지~인정하니깐 아빠 물 한잔 좀 떠다 줘 ㅋㅋ"
"엄마도 물 한잔~ㅋㅋ"
나는 벌떡 일어나 부엌에서 물 한잔씩을 떠다 엄마 아빠에게 드리며, 이제 효도했으니 만수무강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ㅋㅋ오냐 만수무강 하마~"
"그래야지 우리 딸 두고 어떻게 죽니~여보 우리 오래 삽시다"
"그래야지 우리 딸 두고 어딜 가~"
그렇게 우리 가족은 대화를 마무리 지었다.
그날 밤, 나는 침대에 가만히 누워서 생각했다.
정말 언젠가는 엄마와 아빠와 이별해야 하는 날이 오겠지. 상상이 잘 안 갔다. 아니 상상조차 하기 싫었다. 엄마 아빠 없이 살 수 있을까? 엄마 아빠 없이 내 세상이 돌아가는 게 말이 되나? 내 인생의 모든 부분에서 엄마 아빠라는 존재가 다 새겨져 있는 것이 당연했는데, 언젠간 엄마 아빠라는 색깔을 더 이상 내 인생의 도화지에 그려 넣을 수 없게 될 수도 있다는 건, 정말 생각도 하기 싫은 기분이었다.
일단 지금은 그런 생각보다는 엄마 아빠가 살아계실 때 더 잘해드리고 효도해야겠다는 생각을 다시 한번 여기에, 그리고 내 마음속에 꾹꾹 새겨 넣어야겠다. 물론 지금부터 이렇게 다짐하고 효도해도 엄마 아빠를 보내드릴 상황을 맞닥뜨리면 결코 쉽지는 않을 거다. 이별은 준비가 되어있던 되어있지 않던 언제나 힘든 거니깐. 하지만 나는 어쨌든 내가 할 수 있는 최대한으로 엄마 아빠에게 잘할 것이다.
그래야 나중에 덜 후회할 테니.
그래야 엄마 아빠가 살아계실 동안 더 많은 행복을 누릴 수 있으실 테니.
그래야 나도 엄마 아빠와의 기억을 더 행복하게 오래 간직할 수 있을 테니.
커버 이미지 출처: photo by 아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