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나지 않는 엔딩 크레딧

by 아리따


우연히 채널을 돌리다 멈춘 영화 속에서,

나는 낯익은 골목 하나를 발견한다.


자주 다니던 그 장소가 배경으로 나오면,

어느덧 주인공은 눈에 들어오지 않고

등장인물의 등 뒤로 선명하게 그날의 '나'가 보인다.


친구와 깔깔대며 환하게 웃고 있던 내가,

내 옆에서 실없는 소리를 늘어놓던 그 사람이.

그리고 우리 사이를 메웠던, 싸한 눈 냄새가 나던 그 거리가.


자꾸만 현재의 화면 위로 과거의 기억이 겹쳐 보여

도무지 이야기에 집중하기가 어렵다.

마치 한 장의 필름에 두 개의 장면이 찍힌 '다중 노출' 사진처럼,

한 공간에 두 개의 시간이 일렁인다.


지금의 나와 그때의 우리가 서로의 자리를 양보하지 못한 채

한 장의 풍경 속에 포개져 있다.


옛 노래의 첫 소절에 마음이 쿵 하고 내려앉듯,

어떤 장소는 그 자체로 거대한 저장 장치가 된다.


우리가 미처 챙겨오지 못한 마음의 부스러기들이

그 골목이 여전히 굴러다니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 거리엔, 아직도 끝나지 않은 우리의 계절이 살고 있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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