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 무엇을 남길까?
푸른 하늘을 가로질러 하얀 선이 그어져 있다. 비행기가 지나간 흔적으로 남은 비행운이다.
어린 시절에 저 하얀 비행운이 너무 신기해서 한참 동안 그걸 바라보곤 했었던 기억이 있다. 비행운은 '차고 습한 대기 속을 나는 비행기의 자취를 따라 생기는 구름'이라고 한다. 비행운은 처음에 또렷하게 선을 긋고 있지만, 시간이 지나면 구름이 퍼지면서 사라진다.
무언가 지나간 흔적은 오래 남기고 하고, 잠시 보이다 금방 사라지기도 하고, 흔적이 너무 미미해서 전혀 느끼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
'흔적'을 인터넷 사전에서 검색하면, '어떤 현상이나 실체가 없어졌거나 지나간 뒤에 남은 자국이나 자취'라고 풀이하고 있고, 이 말의 유의어로 제시된 단어에는 '자국, 자취, 종적, 보람, 자리, 모습, 뒤'와 같은 말들이 수록되어 있다. '흔적'은 수술을 받은 흔적, 배가 지나간 흔적, 전쟁의 흔적, 타국에서 고생한 흔적 등으로 다양하게 쓰이는 말이다.
사람도 이 세상에 살다가 떠나면 흔적이 남는다. 그것이 커다란 흔적이든, 아주 작고 미미한 흔적이든 흔적은 남게 된다. 사람에 따라 흔적의 크기와 성격도 다르다. 어떤 사람은 선명한 흔적을 남겨 오랫동안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고, 또 어떤 사람은 잠시 뉴스 한 자락에 남을 정도의 흔적을 남기지만 금방 대중들의 뇌리에서 사라지기도 한다. 또 어떤 사람은 있을 때의 조용함 만큼이나 떠난 후에도 흔적을 거의 남기지 않는 사람도 있다.
사람은 누구나 '흔적'을 남기고 싶은 본능을 가지고 살아가는지도 모른다. 보통의 사람들은 가족이나 주변 사람들에게 추억이라는 추상적인 흔적을 남기고 떠나는 것이 일반적이지만, 정치인들은 '업적'이라는 흔적을 남기려고 혈안이 되기 쉽고, 운동선수는 '기록'이라는 흔적을 남기기 위해 피땀을 흘리고, 배우나 작가는 '작품'이라는 흔적을 남기려고 진액을 쏟는다.
이 즈음에서 나는 생각한다. 나는 지금까지 어떤 흔적을 남기며 살아왔고, 앞으로 어떤 흔적을 남기며 살다가 떠날 것인가? 묘비에 이름 석 자 남기는 것 말고, 이 세상에 살다 간 흔적을 어떻게 남기고 갈까? 나는 정치인도, 운동선수도, 유명인도 아니어서 흔적을 남기기도 어렵지만, 굳이 이 땅에 흔적을 남기고 싶다는 강박증도 없다.
내가 떠나고 난 후에 내 주변 사람들이 '그 사람 젠틀하게 살다가 깨끗하게 떠났다.'라고 기억해 준다면 그것으로 만족스럽지 않을까? 거기다가 조금 욕심을 낸다면, 삶의 추억들을 담아 내 이름으로 출간된 책 한 권 정도 남긴다면 더 바랄 것이 없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