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시절에 먹던 나무 열매에 대한 추억
* 열매 사진은 구글 이미지에서 빌려 왔습니다.
어린 시절을 시골에서 자라서 시골에 대한 추억이 많다. 그중에서도 철마다 자연이 주는 열매들을 받아 누리는 것이 참 좋았고, 지금도 돌아가고 싶은 고향이다. 여름이 시작되는 지금쯤이면, 집 주변이나 논밭 근처에서 자라는 나무들에서 색깔도 곱고 맛있는 열매들이 참 많았다. 간식이 흔하지 않던 시절이라 이런 열매들은 더 없이 좋은 간식이었다.
앵두나무 우물가에~
집 뒤뜰이나 우물가에는 으레 앵두나무가 있었다. '앵두나무 우물가에~'로 시작하는 옛날 노래가 있을 정도다. 연분홍빛 앵두꽃이 지고 나면, 연두색 열매가 꽃이 진 자리에 맺혔다가 다 익으면 빨갛게 변한다. 앵두가 빨갛게 익으면, 나뭇가지를 후드득 훑어서 앵두를 따고, 바가지에 담아 물에 헹군다. 먼지와 잎사귀를 대강 물로 씻어내고 한 주먹씩 집어서 입에 넣고 우적우적 앵두를 씹으면, 새콤달콤한 맛이 입안에 가득 퍼진다.(지금도 생각하면 입속에 침이 고이는 그 맛!) 입속에서 앵두를 톡톡 터뜨리면 앵두 과즙과 앵두 씨가 분리되는데, 입술을 오므려서 하나씩 앵두 씨를 뱉어내는 재미도 좋았다. 동생과 친구와 같이 앵두 씨 멀리 보내기 시합을 하기도 했다.
어른이 되고 나서 친구들 모임으로 '천안 독립기념관'에 간 적이 있었다. 기념관 내부를 구경하고 나서 밖으로 나왔더니 건물 옆에 앵두나무 한 무리가 보였다. 빨간 앵두가 나뭇가지가 안 보일 정도로 다닥다닥 붙어 있었다. 나무 밑바닥에도 떨어진 앵두가 데굴데굴 구르고 있었지만, 아무도 앵두를 손대는 사람이 없었다. 시골 출신인 친구들은 머리에 쓰고 있던 모자를 벗어 앵두를 따 담았다. 근처 수돗가에서 앵두를 씻어 한 입씩 나누어 먹었다. 이미 온갖 자극적인 음식에 길들여져서 그런지 어릴 적 그 맛과는 좀 다른 것 같았다.
혓바닥이 자주색으로~
앵두보다 더 인기가 많았던 건 '오디'였다. 뽕나무 열매인 오디는 단맛이 강해서 아이나 어른이나 모두 좋아했다. (요즘은 오디가 웰빙식으로 유명해져서 마트에서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오디는 어른 새끼손가락 한 마디만큼 되는 크기인데, 생긴 모양은 꼭 포도송이 같다. 포도알이 수없이 박혀서 포도송이가 되는 것처럼, 오디도 포도송이를 작게 축소해 놓은 것처럼 생겼다. 오디는 열매가 초록색이다가 익으면 짙은 자주색을 띤다.
오디가 익어갈 때면, 아이들은 뽕나무가 있는 산으로 밭으로 오디를 따러 다녔다. 뽕나무는 잎으로 누에를 기르기 위해 키우기 때문에 아이들이 오디를 몰래 따먹는 것을 크게 나무라지 않았던 것 같다. 그러나 간혹 '남의 밭에서 오디를 따먹느냐'고 꾸지람을 하시는 어른을 만나면 시치미를 떼 보지만, 입을 벌려 보면 금방 들통이 나곤 했다. 오디는 먹고 나면 혓바닥이 자주색으로 변하기 때문이었다.
벚꽃이 진 흔적
학교와 집을 오가는 길 가에는 키가 큰 벚나무가 있었다. 봄에는 그 나무에서 하얀 벚꽃이 예쁘게 피어서 참 보기 좋았고, 하얀 꽃잎이 날리면 도로가 온통 꽃잎으로 가득했다. 몇 학년 때였는지 기억이 나지 않지만, 그 벚나무가 멋진 길을 수채화로 그린 적이 있었다. 원래 그림에는 소질이 없는데, 미술 시간에 수채화를 배우면서 무얼 그릴까 하다가 벚꽃이 가득한 길을 그렸던 것 같다. 그 그림에 대한 평가가 어땠는지는 기억에 없지만, 이상하게 어릴 적에 그린 그림 중에는 유일하다 싶게 그 수채화가 생각이 난다.
벚나무에도 열매가 있는데, 그 이름이 '버찌'다. 벚꽃이 지고 나면 꽃이 떨어진 자리에 열매가 맺고, 처음에 연두색이었다가 익으면 검붉은 색으로 변했다. 요즘은 벚나무도 종류가 다양해서 버찌의 종류도 하나가 아닌 것 같지만, 어린 시절의 토종 벚나무에서 난 버찌는 먹을 만했다. 신맛이 있었지만, 단맛도 제법 있었다.
이제는 동네 마트에만 가도 철따라 온갖 과일들이 넘쳐난다. 우리나라에서 난 과일은 물론이고, 해외에서 물 건너온 과일들까지 마음만 먹으면 골라잡을 수 있다. 그러다 보니 이름도 잘 모르는 나무 열매를 먹을 일도 없고, 관심 가질 이유도 없어졌다. 가끔 아파트 단지에 서 있는 벚나무에 달린 버찌를 보면서 아이들에게 말한다. 아빠가 어릴 때 이런 열매도 간식으로 먹었다고... 그러면 '왜 그런 걸 먹어?' 하는 표정으로 측은하게 나를 바라본다.
간식이 귀했던 어린 시절에 따먹었던 나무 열매들은 그 당시로는 자연이 준 소중한 간식이었지만, 지금 생각하면 아련한 추억이요, 고향 그 자체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