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좋아하는 장소

100일의 듣기 여행-89일 차(호주 시드니)

by 유진아

"네가 시드니에서 가장 좋아하는 장소가 어디야?"

내가 물었다. 시드니 지인의 집에 플랫으로 함께 사는 청년에게였다. 남녀 친구들 모두에게 '천사' 소리를 듣는다는 말이 수긍이 갈 만큼 선한 인상인 그가 좋아하는 장소라면 나도 좋을 것 같았다.


어느 도시를 방문했을 때, 가볼만한 곳을 물으면 대개는 그저 그런 곳들을 말해준다. 유명한 곳, 랜드마크, 모두들 다 가는 곳. 그러나 오페라 하우스와 하버브릿지가 아무리 멋지고 훌륭해도, 어떤 건물이 가장 좋아하는 장소가 되기는 어렵다. 특히나 사람 많은 곳이 지치는 나 같은 사람에게는. 가장 좋아하는 장소를 위해서는 좀 더 감동이 필요하다.


그가 추천한 장소는 '왓슨스 베이'였다. 서큘러키에서 페리를 타고 두 정거장. 오늘도 투둑 투둑 비가 왔지만, 그 바람에 배를 타고 가며 선명한 쌍무지개를 봤다. 도착하여 보니 메롱 하는 것처럼 튀어나온 작은 만은 절벽처럼 높이 솟아 있어 그 끝에 서면 실연당한 주인공이 된 기분이 드는 곳이었다. 전면에는 섬 하나 보이지 않는 수평선, 그리고 발아래는 천년만년 세월이 만든 층층이 절벽으로 파도가 힘찬 소리를 내며 부딪혔다. 나는 금세 경치 속에 빠져들었다. 시내에서 한 시간도 안 되는 거리에 이런 멋진 장소가 있음이 시드니의 매력인가 보다.


그리고 내가 좋아하게 된 또 다른 장소가 있다. 그 섬을 발견한 건 우연이었다. 다른 지인이 추천했던 현대미술관 위의 루프탑 식당에서, 오페라하우스가 마주 보이는 경치와 맛에 만족하고 내려오는 길이었다. 한창 비비드 축제 기간이라 서큘러키에는 인파가 가득했고, 나는 좀 한가한 장소를 가고 싶었다. 그때 길에 설치된 안내도에서 코카투 아일랜드를 발견했다.


'섬'이라는 말이 주는 아련한 느낌! 해질녘이나 저문 후의 비비드도 멋질 것 같았다. 페리를 타고 가면서 찾아보니 아주 독특한 장소였다.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도 된 곳이라는 데 홍보를 더 하시지. 내가 본 책이 나온 지 오래되어 그런지 책에서도 보지 못했었는데. 한때는 감옥으로 또 조선소로 쓰였다는 그곳은 음산하고 무거웠고, 현재는 미술작품 전시공간으로 쓰여 독특한 분위기를 자아냈다. 섬 전체가 설치 미술공간 같은 느낌이랄까. 좀 더 일찍 와서 찬찬히 둘러보지 못함이 아쉬웠다.


그런데 휴! 시드니의 매력은 날씨라는데 어쩜 이렇게 매일 비가 내리는지. 두 장소 모두 더 머물고 싶었지만, 추위에 떨다 보니 오래 있지 못했다. 시드니에 도착한 이래로 매일같이 비가 왔고, 남은 날들도 마찬가지였다. 예보 상으로 하루나 이틀 정도나 비가 안 올 모양이다. 그대로 모자를 뒤집어쓴 채 다니는 것도 나쁘지 않지만, 젖은 옷들을 처리하는 일과 추위가 문제.


실내를 찾다 보니 본의 아니게 박물관, 미술관 투어를 야무지게 할 모양이다. 그래도 이런 날씨를 알고 보상이라도 하듯 내가 돌아가는 날까지 '시드니 비엔날레' 기간이라 다행이었다. 그래, 아름다운 날씨와 자연은 뉴질랜드에서 실컷 즐겼으니 여기선 세련미를 느껴보자.


DSCN8835.JPG 멋진 쌍무지개라도 볼 수 있어 다행이지 뭐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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