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일의 듣기 여행-92일 차(호주 시드니)
장기 여행을 하다 보니 밖에서 음식을 사먹는 일은 드물었다. 뉴질랜드든 호주든 음식으로 유명한 나라가 아니라 딱히 먹어야겠다 싶은 음식도 없었고, 대신 유기농이 기본인 식재료들로 내키는 대로 만들어 먹었다. 그래도 나름 기분을 내고 싶을 때 사먹던 것이 버거다. 대개 혼자라 너무 근사한 식당은 가기가 머쓱한데 버거는 어색할 게 없고, 카페에서도 바에서도 팔아서 커피나 맥주와 먹기도 괜찮았다.
한국에 있을 땐 버거를 자주 먹는 편은 아니었다. 요즘은 괜찮은 수제버거 집이 많이 있기는 하지만 아직 내게 버거는 그저 한끼 때우는 느낌이 강했다. 그런 반면 가격은 있는 편이라 잘 손이 안갔다. 그런데 뉴질랜드, 호주의 버거는 좋은 소고기에 육즙이 풍부하고, 신선한 채소도 듬뿍 들어있었다. 양도 많아 어떤 때는 점심 때 먹고는 저녁을 건너뛰기도 했다.
그래도 그렇지. 사먹은 음식의 80프로는 버거라니. 노상 같은 메뉴를 시키니 처음엔 잘 모르고 먹었는데 이젠 좋고 나쁜 맛을 분간하게 됐다. 저 유명한 퀸즈타운의 퍼그버거, 뉴질랜드 버거 체인인 버거퓨엘, 트위젤 버스 정류장 앞 히드로 카페의 트위젤 버거, 시드니 현대미술관 루프탑 카페의 작지만 두툼했던 비프버거, 본다이비치 근처에서 런치메뉴로 맥주와 함께 먹은 버거가 기억에 남는 버거들이다. 어떤 버거는 아보카도가 들어가 부드러운 맛이 나고, 어떤 버거는 까맣거나 네모난 자기네만의 독특한 빵을 쓰고, 어떤 버거는 비트를 달게 절여 단맛이 났다.
한 가지를 반복한다는 건 그런가 보다. 전혀 모르던 것도 나도 모르는 새 차이를 알고, 좋은 것을 알게 된다. 끈기없는 내가 자주 경험해야 할 자세였다.다만 경계할 것은 밖에서 좋은 것을 찾으며 까탈스러워질 것이 아니라, 내 자신을 좋은 것으로 만들어 갈 것. 그것이 버거가 건넨 이야기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