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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퇴사 이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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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진아 Jan 24. 2019

08. 미니멀리즘과 중고거래

퇴사와 여행, 그 후

백수가 되면 할 수 있는 일 중 하나는 정리이다. 쌓이고 묵힌 물건들의 쓰임을 고민하며, 상자 속 옷장 속 창고 속 등을 비웠다. 최근 들어 재미를 붙인 일이 있다. 바로 중고거래. 미니멀리즘과 친환경적인 삶을 지향하고, 소소한 용돈벌이가 된다는 점에서 오래전부터 알라딘이나 중고나라에 책과 각종 물품들을 종종 팔곤 했다. 그런데 새롭게 중고거래 어플을 알게 되어, 기존에 거래하지 못했던 물품들을 팔게 되었다. 웹사이트나 카페가 전국구를 대상으로 하기 때문에 택배 거래가 대부분이다. 그런데 어플은 인근 지역 기반으로 하여 직거래가 더 많아, 너무 무겁거나 깨지기 쉽거나, 혹은 너무 저렴해서 택배거래로 하기 힘든 물건들을 팔 수 있었다.


어플을 깐 지 한 달도 채 되지 않았는데 제법 많은 품목을 팔았다. 미니 컴포넌트, 와이파이 공유기, 스탠드형 옷걸이, 제과제빵 위생복, 좌식 소파, 캔들 워머, 필름 카메라, 매니큐어, 스마트폰 공기계, 블루투스 키보드 등. 친구는 팔리지는 않고 이상한 사람들만 말을 건다며 일주일도 못돼 어플을 지웠는데, 나름 성공적이었다. 


잘 팔기 위해선 기본적으로 물건은 저렴해야 한다. 중고물품을 팔 때 사람들은 살 때 가격을 못내 잊지 못해 낮은 가격 붙이기를 주저한다. 그러나 가격은 사는 사람 입장에서 "내가 그 가격이면 중고를 사겠다" 싶은 가격을 붙여야한다. 그것은 대개 반값은커녕, 2~30프로도 안 할 때도 있다. 돈을 벌기보다 '어차피 안 쓰고 처박아 두느니, 누구 줄 거 아니면 공간이나 비우자'라는 생각으로 마음을 비워야 한다.


다음으로 물건이 하자가 있을 거라는 의심을 최대한 줄여주어야 한다. 나는 최대한 구체적으로 솔직하게 적었다. 흠집, 사용감 같은 것은 숨기기보다 때론 과장할 정도였다. 그리고 덧붙이는 마법의 말. "보시고 결정하셔도 됩니다." 이 말이 안심을 주는지, 대부분은 물건을 훑어보지도 않고 건네받곤 했다. 한번은 "시험해보고 결정하세요."라고 했더니, "싸게 파시는데 그냥 쓰죠 뭐."하고 답했다.


장사라고 하기에도 민망한 수준이지만, 소소한 거래를 통해 사람 심리를 엿본다. 천 원 차이에도 달라지는 인기, 원가의 반의 반도 안 되는 가격에 사는 것이지만 흠집 하나 없길 바라는 기대, 작은 포장에 감동하는 마음, 천천히 생각해 보라고 파는 이가 여유 부릴 때 도리어 마음이 조급 해지는 심리 등.


또한 꽤 많은 물건들을 내보냈지만 티도 안나는 집안을 보며, 내가 얼마나 많은 물건들을 지고 사는가에 대한 반성과 더욱 안 쓰고 있는 물건을 찾아야겠다는 다짐을 하게 된다. 솔직히 새로 들인 물건도 있어서 민망하기도 하지만, 올해는 더욱 가벼워지리라 다시금 결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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