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사와 여행, 그 후
살사를 배우러 가는 길이었다. 연습실 문앞에서 만난 사람에게 무심코 물었다.
"직장이 어디세요?"
그는 백수라 했다. 나는 당연한 것을 전제하는 물음이 내게도 있는 것에 당황하여 답했다.
"아, 저도 백수예요"
뭐 일주일에 몇시간은 일하고 있으니 완전한 백수는 아니지만, 백수라는 정체성이 맘에 들어 종종 이렇게 밝히는 편이다. 그러다 더 물으면 우물쭈물 하는 일을 고백하긴 하지만.
백수 된 지 20개월, 여전히 고정된 업은 갖지 않으니 가난하다. 그래도 아직 통장은 살아있고 난 내 삶에 더욱 만족해가고 있다. 하고 싶은 대로 산 올 상반기는 무척 바빴다. 올해 마무리한 것을 정리하면?
- 소논문은 드디어 1월에 한곳에 게재
(한 세 군데 떨어졌던가?)
- 졸업 논문 심사 등록을 해 본격적으로 쓰기 시작했고 내일이 드디어 1심이다. 5월 말 2심까지 통과한다면 졸업!
(한학기 연장되면 안될 텐데)
- 여행기 출판은 몇번이 지연됐지만 이제 조판 및 인쇄 작업에 들어가 보름 안에 나올 예정이다.
(얏호)
- 한 재단에서 지원하는 연구비 지원대상자에 선정되어 연구지원금을 받게됐다.
(돈도 돈이지만, 내 하는 길이 허황된 것은 아닌 듯하여 위로가 되었다)
- 한 고등학교에서 논술 수업을 맡아서 진행중이다.
(일종의 최저 생계를 위한 일인데, 과목이 국어보다 재밌어서 즐겁게 일하는 중이다)
- 살사를 배우기 시작했다.
(바쁘지만 머릴 많이 쓰니 몸도 써야한다고 핑계대며^^)
조직에 머물지 않는 삶이 얼마나 지속될지 모르겠다. 최소한의 여비로 살아가는 건 내 한몸만 책임지면 되는 처지라 가능한 일이니까. 그래도 아직은 이대로가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