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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퇴사 이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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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진아 Jul 13. 2019

10. 일상 여행, 조지아 행 티켓을 취소한 후

퇴사와 여행, 그 후

조지아 행 티켓을 취소했다. 살면서 급작스레 항공권을 발권한 일은 많지만, 구매한 티켓을 취소하기는 처음 있는 일이었다. 고민이 시작된 건 긴 경유시간을 확인했을 때였다.


인천서 트빌리시까지는 직항이 없다. 중간에 카자흐스탄이나 터키 등을 꼭 한 번은 경유해야 한다. 대학원에서 속상한 일을 당한 뒤 충동적으로 여행을 계획했던 나는 항공료만 신경 썼지 경우 시간을 제대로 확인하지 못했다. 이티켓을 받고 나서야 확인한 경유시간은 총 아홉 시간. 새벽 세시 반부터 낮 열두 시 반까지로, 자러 가기에도 경유지를 잠시 둘러보기에도 어중간한 시간이었다. 문득 밤의 공항 특유의 외로움과 서늘함이 떠올랐다. 제대로 눕지도 쉬지도 못하는 그 시간엔 아무 생각도 움직임도 허용되지 않는다. 오롯이 고독을 마주해야 한다. 한여름 밤에도 스멀스멀 살에 스며드는 추위는 또 어찌나 서러운지. 굳은 몸 구석구석을 어떻게 구부리고 펴보아도 좀처럼 나아지지 않는다. 그럴 때 는 생각이란

 나 도대체 여기서 뭐 하는 거지?


거기서부터 물음은 번져갔다. 나는 이 여행을 왜 하려 하는가. 쉼이 목적인가. 그렇다면 왜 꼭 해외로 나가야 하는가? (혼자 사는 데 말이다) 책을 쓰려고 가는가. 그럼 내가 지금 여행기를 쓰기 위한 정신적, 육체적 힘이 있는가? (나는 현재 무척 지쳐있었다.) 새 글은 꼭 여행기여야 하는가. (작가가 되고 싶은 거지 여행작가만 되고 싶은 건 아니었다.) 쉼도 글도 아니라면 나는 왜 지금 무리해서 여행을 가지?


이런 식으로 이어진 물음들을 좇다 보니 현재 내게 필요한 것은 여행이 아닌 일상의 회복이란 결론에 다다랐다. 그랬다. 나는 떠나는 용기는 가득했지만 머무는 용기는 부족했다. 탐험가이기는 했지만 생활인이 되지 못했다. 도전만큼이나 지속을 위한 대비가 필요했다. 고장 난 가스레인지를 교체하거나 인터넷을 설치하는 일, 자신에게 맞는 옷 스타일을 아 철에 맞게 구매하는 일, 활동 영역을 넓히기 위해 운전을 다시 배우는 일 등. 그리고 무엇보다 한번 좌절된 논문을 다시 도전하기 위해 마음을 비우고 다시 채워야 했다.


그렇게 조지아 한 달 살기를 포기하고 나니 (물론 아쉬움은 남지만) 새로운 만남과 일들이 생겨났다. 이번 방학엔 무슨 일을 겪을지, 하반기는 어떻게 꾸려질지, 궁금해졌다.


그리고 일상을 여행으로 마주하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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