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의 기억 : 뉴질랜드의 냄새

뉴질랜드에선 모든 게 쉬워

by 유진아

[뉴질랜드에선 모든 게 쉬워]

책에서 미처 싣지 못한 사진 동영상을 첨부합니다.



"오클랜드는 뉴질랜드에서 가장 큰 도시다.

시내 중심가엔 높은 건물이 즐비하고

사람들도 바쁘게 다닌다.

그러나 도심을 조금만 벗어나 주거지역으로 들어가면

아담한 집들이 자연을 뒷마당처럼 끼고 있다.

앞뜰에는 오래된 숲에 어울리는 큰 나무가 흔히 보이고,

우리나라에선 국립공원이나 제주도에나 있을 법한

트레킹 코스들도 곳곳에 있다.

트레킹 코스에선 금세라도 천연보호생물이 튀어나올 것만 같다.

도랑에 민물장어가 헤엄치고,

선사시대 화석에서 본 것 같은 식물들이 자란다.

산책로를 따라 걷는 걸음이 고대로의 시간여행을 떠나는 기분이랄까.

동네도 이럴진대 유명한 트레킹 코스는 어떨지.

내가 이런 곳에 와 있구나.

내가 찾던 곳이 여기였구나.

첫사랑을 우연히 만난 것처럼

가슴이 두근거렸다." (52쪽)


오클랜드의 산책로


넬슨 한 달 살기 이후 다시 남섬 여행을 시작했다. 예약을 한 버스는 만석이었다. 넬슨에서 누가 내려 생긴 한 자리 겨우 앉을 수 있었다. 버스를 타자마자 마주한 것은 도시의 냄새였다. 깊게 밴 담배냄새, 높은 인구밀도의 냄새, 엉성하게 씻어 약간은 꿉꿉한 옷가지들의 냄새, 볼륨을 한껏 높인 음악에 여행객들의 재잘거림이 뒤섞인 흥분의 냄새들. 무엇보다 짙은 담배 냄새에 머리가 아팠다. 한동안 내가 키위들만 지내다 외국인들을 만나서인지, 이 버스 사람들이 유난한 건지는 모르겠다. 하여간 이들은 버스가 정차만 하면 어디고 서서 줄담배를 피웠고, 그 냄새를 차에 고스란히 가지고 탔다.


버스 안에서


그러고 보니 넬슨 생활을 하며 담배 냄새를 맡은 기억이 없었다. 한 번쯤 어떤 백패커스 앞을 지날 때 빼고는.

“뉴질랜드 사람들은 담배 안 피워요?”

문득 궁금해진 내가 뉴질랜드 지인에게 묻자, 그는 숨어서 핀다고 했다. 소심하고 남 눈치 많이 봐서 껌도 많이 씹는다고.


내가 만약 짧게 버스여행으로 뉴질랜드 여행을 마쳤다면, 여행 기억의 많은 부분에 여행객들이 주는 인상이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느긋한 여행이 새삼 다행스러웠다. 냄새는 기억에 잘 달라붙는다. ‘인도’하면 사원의 향내, 각종 향신료, 땀 냄새, 동물의 배설물, 탄 냄새, 매연 등 많은 것이 뒤섞여 만든 독특한 냄새가 떠오른다. 첫 해외여행지인 중국에서는 ‘향차이’를 먹고 온갖 데서, 빵에서도 향차이 내가 나는 것 같아서 울렁거렸던 기억이 있다.


뉴질랜드의 냄새는 ‘청정’이다. 비 온 뒤 숲에 갔을 때 나는 맑은 냄새. 시원하고 깨끗한 냄새. 허브티의 향 같은 것도 은은히 배어 있다. 그야말로 자연의 내음. 한번 그 맛을 깊게 본 나는 남섬 여정이 시작되자마자 여행객들을 피해 다녔다. 남들이 식당서 요리를 할 때, 바닷가로 나가 파도소리를 듣고, 씻을 때 밥을 먹었다. 모여 수다를 떨 때 일찌감치 잠을 자고. 어울리는데 언어가 문제려니 생각했는데, 성향이 더 컸던 셈. 그래도 나는 여행자들보다는 뉴질랜드의 냄새를 더 많이 누리고 기억하고 싶었다.


옥빛 물색, 청정의 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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