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포드 사운드 : 신선계의 뱃길

뉴질랜드에선 모든 게 쉬워

by 유진아

[뉴질랜드에선 모든 게 쉬워] 95~99쪽


얼마나 기도했는지 모른다. 프란츠 조셉에서 한바탕 비를 만난 후에도 예보에는 계속 비올 확률이 8,90프로였다. 매일 비와도 좋으니 ‘밀포드사운드’와 ‘마운트 쿡’을 가는 날만은 해가 나기를 바라고 또 바랐다. 예보와 달리 와나카에서는 계속 맑은 편이었다. 그럴수록 더 불안해졌다. 비 예보가 있으니 언제 오기는 할 텐데, 이렇게 미뤄져서 당일 더 많은 비가 오면 어떡하지? 투어가 취소되는 경우도 있다던데.


밀포드 사운드는 세계적인 트레킹 코스여서 몇 달 전에 예약하지 않으면 걸을 수 없다. 다만 직벽 사이의 뱃길을 따라 이동하는 페리로 그 풍경을 즐길 수는 있다. 버스는 아침 7시에 퀸즈타운에서 출발했다. 창밖은 아직 어두웠고, 제시간에 못 일어날까 봐 간밤에 잠을 설친 터라 까무룩 잠이 들었다. 한 시간쯤 뒤 눈을 떴을 때 창밖이 온통 뿌옜다. 구름인지, 안개인지 바로 앞도 보이지 않았고, 호숫가를 지나도 물을 볼 수 없었다. 에라, 모르겠다. 다시 잠을 청하고 눈을 떴을 땐 눈앞이 확 트여 맑고 푸른 하늘이 보였다.


나는 창문에 매달려 여행이 끝나면 보지 못할 푸른 하늘과 녹음에 반했다. 밀포드 사운드로 가는 버스는 도중에 볼거리들이 있을 때 잠깐씩 섰다. 특이한 구멍이 뚫린 바위들이 있는 계곡에도, 키위새들이 돌아다니는 시냇가에도. 중간에 들른 휴게소에서는 알파카 농장이 있어 방문객들에게 웃음을 주었다. 우스꽝스러운 녀석들의 표정은 “오잉?” 하고 쳐다보는 것 같아, 그 눈과 마주치면 사람들은 까르르 웃어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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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망의 밀포드 사운드. 배를 타고 좁은 물길을 따라 탁 트인 바다까지 나아가는 길은 다른 세계로 들어가는 것처럼 신묘했다. 우리식으로 하면 신선세계, 반지의 제왕의 세계에선 리븐델 정도일까. 사람들은 거센 맞바람을 맞아가며 배 갑판에 올라 절경을 구경했다. 그런데 오 분 이상 바람에 맞서기가 어려웠다. 머리카락이 날릴 뿐 아니라 몸도 뒤로 밀리고, 손과 얼굴이 한겨울처럼 얼어붙었다. 그럼에도 사람들은 실내로 들어갔다가도 다시 나오고 다시 나오기를 반복했다.




생애 다시 못 볼 절경이란 생각 때문이었을까. 한 영국 할머니는 그 와중에도 배 앞머리에 서서 한 번도 자리를 뜨지 않고 전방을 주시하며 버텼다. 그만큼 눈을 떼고 싶지 않은 풍경이었다. 간절함 덕분이었는지 투어를 무사히 마치고 차에 오르자 10분도 지나지 않아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우산이 없어 걱정했는데 또 차에서 내릴 때는 비가 뚝 그쳤다.



완벽한 날씨였다, 바라는 대로 움직여준.

완벽한 풍경이었다, 모조리 눈에 담고 싶은.

완벽한 하루였다, 혼자임에도 행복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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