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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퇴사 이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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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진아 Nov 19. 2017

퇴근 이후

마지막 출근


여름 끝자락의 어느 출근길이었다. 푸른 제복을 입은 한 남자가 내 옆을 스쳐 지나갔다. 경찰인가 싶어 무심코 돌아보았는데 팔에 '모범기사'라 수놓인 완장이 달려있었다. 새하얀 머리에 반듯하게 모자를 쓴 그의 걸음걸이는 바닥에 놓인 벽돌만큼이나 가지런했다. 그의 푸른 셔츠와 바지도 수십 년이나 그래 왔던 것처럼 당연한듯 날이 서있었다.


모범기사가 되기까지 얼마나 한 성실함이 있었을까. 사직서를 내고 퇴사 전 마지막 주를 겪고 있는 나는, 벌써 몇 차례 퇴사를 하고 있는 나는, 어쩐지 그의 뒤를 따라 걷는 것이 망연해졌다. 걸음을 멈추고 충동적으로 그의 뒷모습을 카메라에 담았다.


2016년 9월 1일. 마지막 출근을 하고 퇴근을 했다. 나에게 남은 것은 이천만 원 정도의 잔고와 대학원 한 학기 수업, 대책 없는 자신감 같은 것이었다. 없는 것은 계획과 남자 친구와 근심이었다. 

"백수가 될 거야." 

"최소한 6개월, 바라기는 1년은 놀고먹을 거야" 

무슨 자랑이라도 되는 듯 나는 헤벌쭉 웃으며 말하곤 했다. 사실은 스스로에게 하는 다짐이었다.


무던한 편이었다고 생각한다. 꾸역꾸역 제법 잘 견디고 있다고도 생각했다. 그러다 툭, 터진 봇물처럼, 부장의 어떤 한 마디가 가득 부푼 풍선에 닿은 바늘이 되어, 눈물이 몇 시간이고 그치지 않던 어느 오후, 행복해져야겠다고 다짐했다. 10월 황금연휴나 명절 상여금 같은 것에 대한 아쉬움도 더 이상 유효하지 못했다. 사직서 처리가 거의 한 달이나 지체되고, 퇴사일이 결정되었다.


서른여섯의 가을이 시작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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