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일의 듣기 여행-65일 차(뉴질랜드 와나카)
와나카 백패커스에선 운이 좋았다. 8인실 여성전용 도미토리에서 묵었는데 첫날에 나포함 둘, 나머지는 나 혼자 사용했다. 첫날에 함께 묵은 이는 한국인이었다. 도미토리에선 처음 만난 한국인이었다.
백패커스는 주로 유럽 백인 청년들이 이용을 많이 한다. 그들은 가장 저렴한 숙소의 가장 저렴한 방을 찾기 때문. 온갖 살림도구를 싸들고 다니며 거의 모든 끼니를 요리를 해서 먹는다. 그들의 식료품 가방에는 식용유, 각종 조미료, 면, 빵, 달걀 등이 가득하고 프라이팬을 들고 다니는 이도 있었다. 나라별로 만들어진 '백패커스 페이스북'에서 동행을 구해 차를 얻어 타기도 하고 히치하이킹도 종종한다. 이렇게 한 푼이라도 더 아끼는 초저렴 여행을 하는 그들은 여성전용 방을 잘 선택하지 않았다.
나나 함께 묵었던 한국인의 경우, 넉넉지 않아 독방은 못 쓸지언정 조금 더 주고라도 여성전용이나 가급적 방 인원이 적은 도미토리를 택했다. 남녀가 훌렁훌렁 옷을 갈아입는 것도, 시끌벅적한 분위기도 꺼리기 때문이다. 덕분에 여성 전용 방에서 이런 행운을 만날 일이 생긴 것.
만났다는 것 자체가 공통점이 많았다. 방학 기간도 아닌 5월에 혼자 백패커스에 머무는 한국인은 흔치 않다. 우린 둘 다 30대였고, 몇 년 일한 직장을 그만두고 긴 여행 중이었다. 다른 점이 있다면 그녀는 여행 전 워킹홀리데이로 일을 마친 상태라는 점. 그것 역시 외국에서 1~2년 생활한 경험이 있다는 점에서는 공통점이었다.
덕분에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직장을 때려치울 수밖에 없었던 이유를 공감했고, 한국 밖의 느리게 사는 삶을 긍정했다. 먼 계획을 세우지 않고 내면의 소리를 좇아 도전하고 개척하는 삶을 바라보았다. 길게 살진 않았지만 지난 어떤 삶의 걸음도 헛되이 사그라지지 않고, 어느 순간 다음 걸음으로 이어지더라는 이야기를 나누며 오지 않은 미래, 여행 이후의 시간에 응원을 보냈다.
이제 슬슬 돌아갈 날에 대해 그리는 중이었다. 여정 중 도움을 받았던 많은 블로그에서 그들이 여행 이후 어떻게 살고 있는 지도 지켜보던 참이었다. 내가 이전에 퇴사와 여행 후에 새롭게 삶을 이어갔던 것처럼, 모두들 나름대로 의미 있게 살고 있었다. 새로운 도전을 하거나 기존 일을 다시 하더라도 이전과는 다른 태도를 가지고 살았다. 공부를 시작하기도, 작은 사업을 만들어 가기도 했다. 에어비앤비나 게스트하우스를 하기도. 어떠하든 전보다는 더 행복에 가까운 모습들이었다.
그래, 어떻게든 될 거야.
무책임한 말 같지만, 불안하여 소원하는 일을 향해 걸음을 옮기지 못하는 이에게는 용기를 주기도 한다. 쓸모없는 걱정으로 잠자리에 누워 생각이 많은 이에게도. 그간 나는 할 수 있는 일과 하고 싶은 일 사이에서 '할 수 있는 일'을 더 많이 선택해 왔다. 긴 여행은 '하고 싶은 일'에 더 가까워지는 시작이었다. 내가 바라는 삶은 끊임없이 자신의 재능을 의심하고, 생활은 가난해질 삶이겠지만 하고 싶은 일을 더 선택하기로 한다. 마침내 수정이 끝난 원고에 돌아온 '굿!'이라는 피드백과 칭찬을 붙잡으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