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일의 듣기 여행-78일 차(뉴질랜드 더니든)
쉽게 단정하는 사람들을 만났다. 은퇴한 노부부였다. 인버카길 수영장에서 한국인임을 물은 그들은 내 여행기간을 듣고는 이렇게 물었다.
"애들은 어떡하고?"
이런 식의 단정은 흔히 있었다. 상대가 결혼을 했는지, 아이가 있는지 묻기도 전에 이미 그것들을 전제하고 묻는 물음이었다. "남편이 있으니까, 회사 좀 쉬는 것도 괜찮지." "애는 몇이예요?" 하는 말들. 그저 살아온 시간이 달라서라고, 젊은 사람일 경우는 어리석음이라고 여겼다. 다른 삶이 있을거라고 상상하지 못하는, 어떤 사정이 있을지 모른다는 배려가 없는 어리석음.
그러나 단정은 그에서 그치지 않았다. 나는 "아직 결혼은 안했어요."라고 말한 후 미소만을 내민 채 침묵했지만, 어떻게 그럴 수 있지 하는 표정을 한 그들에 의해 '결혼을 하지 않으려는 이해할 수 없는 젊은 세대'가 되었다가, '눈이 높고, 자격 조건이 까다로운 사람'이 되었다가 '믿음이 없는 사람'이 되었다. 그들은 뜨거운 탕에서 지치지도 않는지 30분 내리 일장 연설을 늘어놓고는 사라졌다.
언짢기보다는 안쓰러웠다. 그들의 굳은 마음은 나보다 자신들을 불행하는 것 같았으니까. 나는 좋은 사람때문에라도 오래 머문 이 도시가 그들은 싫다고 했다. 한국 유학생들은 아무 생각이 없어 한심하고, 현지인들은 무섭다고 했다. 뉴질랜드 집은 대개 창이 넓은데, 집안이 다 들여다보여서 불안하다고도 했다. 오토바이 타는 사람들은 폭주족으로 여겼다. 그리고 카드를 도둑맞았다면서, 삼개월 작정한 여정인데 아내분은 내일 미리 돌아간다고 했다. 같은 공간, 같은 시기였지만 보고 느낀 것이 너무도 달랐다.
견고하고 걱정많은 사고 방식. 이런 것이 한국인의 특성인걸까. 불행한 그들이 내 나라에서 온 사람들이라 슬펐다. 한국사람이 가진 장점이야 물론 있겠지만, 그런 불편한 모습들이 그들만의 모습이라 생각되지 않았다. 그리고 더니든에서 잠시 머무는 동안 나 스스로도 어떤 부정적인 면을 발견하는 일이 생겼다.
여행 말미에 그리운 것들이 많아졌다. 가장 원초적인 건 음식. 뉴질랜드 온 이후 두번째로 한국음식점을 갔다. 해결할 수 없어 갈급한 건 책이었다. 말이야 팟캐스트를 통해서라도 들을 기회가 많았지만, 술술 한눈에 읽히는 우리글로 된 책이 읽고 싶었다. 어디고 도서관은 늘 있었지만, 오클랜드 이후 한국어 책을 찾지는 못했다.
다국적 학생이 많은 더니든엔 있겠다 싶었는데, 도서관에 비록 한칸이지만 한국어 서가가 있었다. 지난번 방문 때 <연금술사>를 반쯤 읽고는 돌아와서 다시 읽기를 얼마나 고대했던지. '자신의 신화'를 찾아가는 주인공의 여정이 나의 지금의 시간과 닮이 있어 특히 집중해서 읽었다. 그러던 중 웬 사이렌이 울렸다. 주변을 둘러봤지만 다들 별로 놀라지도 않아, 알람이 잘못 울렸거나 무슨 훈련인가 싶었다. 다시 책을 읽던 나는 잠시 후 사서에 의해 쫓겨났다. 어느새 다른 사람들은 모두 밖에 나와있었다. 사람들이 조용히 움직여서 몰랐던 것이다.
안전불감증. 별일 아닐거야 하는 생각. 혹은 귀차니즘. 물론 별일 아니었고 잠시 후 다시 사이렌은 그쳤지만, 침착하면서도 일단 대피하고 보는 뉴질랜드인과 나의 태도는 달랐다. 내 태도가 나의 유일한 것이라고는 생각되지 않는다. 전에 초등학교에 근무할 때 화재 알람이 가끔 울려도 움직이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대개 잘못 울린 걸거야 여기며 아이들도 대피시키지 않았다. 잘못 울렸긴 했지만, 사고는 그 와중에 일어나는 법이니까.
어쩔 수 없는 한국인이라는 말이, 부정적 의미로 쓰이지 않았으면 좋겠다. 똑똑하고 성실하고 정이 많은 사람들. 그러나 그 이면에 행복해지기위해 바뀌어야할 숙제는 무엇일지. 외국까지 오지 않더라도 발견하고 해결할 수 있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