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일의 듣기 여행-86일 차(호주 시드니)
집으로 가는 길은 더뎠다. 직항이 비싸기도 했지만, 뉴질랜드까지 가는데 호주도 잠깐 들르지 뭐, 그럼 일본도? 하면서 경유지가 늘었다. 돈은 없어도 시간은 있기에 가장 싼 날짜에 맞추다 보니 귀로조차 여행이 된 것.
과거로 돌아가는 기분이었다. 시차가 세 시간에서 한 시간으로 좁혀져 시계를 돌렸다. 도시의 풍경도 익숙하게 바뀌었다. 무엇보다 오랜 인연이 있었다. 요즘에야 지인 중에 외국에 사는 이가 있기는 흔한 일이다. 나에게는 대학 시절 알고 지낸 가정이 시드니에 있었다. 그들은 베푸는 삶으로 나를 많이 가르쳐주셨고, 나도 그 집 아이에게 과외수업을 해주기도 했다.
공항에 내려 곧바로 '짠'하고 그들을 찾아갔다. 함박 웃으며 포옹을 하자 12년 간의 공백이 순식간에 사라졌다. 정이 깊었던 이들은 그런 걸까? 어떻게 지냈냐는 인사가 무색할 만큼 어제 헤어지고 만난 이처럼 가까웠다. 특히 유치원생, 초등학생이던 아이들이 훌쩍 커 내 머리보다 높아졌는데도 그때 그 시절로 보이는 게 신기했다. SNS조차 없던 시간이었다. 한순간을 전심으로 마음을 나눴던 이들은 오랜 후에 만나도 그 마음이 그대로인가 보다.
시드니 첫날밤은 그네의 집에서 묵었다. 석 달간 얼마나 부실하게 먹었겠냐며 한솥 가득 닭갈비가 볶아나왔고, 나는 밥보다 고기를 훨씬 많이 먹으면서도 밥을 두 그릇이나 비웠다. 동네 축제를 구경하러 나가 아이스크림을 먹고, 전기매트에 이불을 끌어안고 모여서는, 도란도란 그때 그 시절과 서로가 모르던 시간들을 펼쳤다. 금요일 밤에 신당동에 가서 닭발을 사 먹곤 하던 이야기며, 함께 중국에 간 이야기, 내가 그땐 좀 까칠했다는 고백, 누구네는 지금 터키에 있고, 또 누구는 미국인과 결혼했다는 소식 그리고 당시는 서로를 위해 이야기하지 못했던 사연들까지.
아름다웠다. 전에는 일상이었지만 이제는 특별하게 주어진 시간이었다. 별똥별처럼 반짝 빛나고 다시 없을 시간이었다. 우리는 예전과 똑같았지만, 또 너무 달랐다. 다른 생활을 하고 있었다. 이 방향으로 저 방향으로 제각기 흐르다 잠시 꿈같이 만났을 뿐이다. 그러나 잠시 그렇게 머물 수 있다는 것이 삶이 주는 선물이 아닐까. 옛 인연을 만나 추억을 나눌 수 있고, 그럴 사람이 있다면 그것은 또 하나의 즐거운 여행, 시간 여행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