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노아 Aug 13. 2024

빗물

반가운 손님이 오시려나 비가 내린다. 사실 오늘은 비가 오지 않았으면 했는데 속절없이 비가 내린다. 

오늘은 귀한 분이 아크풀리에서 촬영으로 대관을 했기에 들뜬  맘으로 사령관님 오시듯이 구석구석 쓸고 닦고 사전에 연습까지 해가면서 불편함이 없도록 최선을 다했다. 그러나 그동안은 잘 맞지도 않았던 일기예보는 오늘은 왜 이렇게 정확한지 아침 9시부터 부슬부슬 부슬비가 내린다. 자동차가 경사로를 지나서 잔디마당까지 올라와야 하기에 비가 오는 것은 최악이다. 고객님은 11시에 도착하였고 그때부터 진풍경이 그려졌다. 자동차가 경사로를 지나 막바지 언덕을 차고 올라와야 하는데 3~4M 전에 멈춰서 올라오지 못했다. 전기 차인 터라 전기 충전을 최대로 하면 낫지 않을까 하고 고객님은 주변에 있는 충전소를 찾아갔다. 1시간 이상을 소요하고 차가 왔으나 언덕은 비에 녹을 대로 녹아서 차가 올라오기에는 쉽지 않겠다 생각했다. 그래도 어렵게 잡은 스케줄이라 우리는 한마음으로 시도하기로 했다. 이번에는 경사로 초입부터 미끄러져 내렸다. 이왕 비에 젖은 몸이기에 장정 네 명이 달라붙어서 차를 밀어보았다. 야속하게도 뒷바퀴에서 사정없이 뿌려대는 진흙은 우리를 머그 팩으로 덮어씌웠다. 이 정도면 포기도 방법이라고 결정하고 차를 뺏다. 하지만 그만두기에는 중요한 일정이라 같은 장소의 다른 공간으로 차를 옮겼다. 다행히도 차는 잔디밭으로 올라갔지만

이곳 역시 촬영하기에는 조건이 좋지 않았다. 다시 차를 옮겨서 아스팔트포장이 되어있는 곳으로 가서 주차를 하고 타프를 치고 연출을 하려고 했지만 모든 것들이 서툴고 어설퍼서 발주처에 전화를 하여 최종 컨펌을 받고 일정을 일주일 연기하기로 하였다. 모두들 물에 빠진 강아지처럼 얼굴은 퍼렇고 부들부들 떨고 있었다. 장소를 실내로 옮겨서 간단히 씻고 닦은 후에 식탁에 불판을 폈다. 많이 피곤하고 힘들었을 텐데 얼굴에 미소를 지으며 식사 준비를 하였다. 근사한 스테이크와 삼겹살이 지글거리며 우리의 마음을 위로했다. 덕분에 근사한 점심과 대화를 나누며 <일>로 끝났을 일을 <정>으로 채워졌다. 악천후 속에서 최선을 다했지만 이렇다 할 성과를 내지 못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고맙고 감사했다. 자연스럽게 여러 가지 대화가 오고 갔고 같이 공감하고 같이 행복한 시간을 보냈다. 물리적으로는 손실이지만 감정적으로는 풍부함을 경험했다. 


변경된 촬영 일을 이틀 앞두고 오늘도 비가 내린다. 내가 원하는 시간과 방법은 아닌데도 틀림없이 이일도 그럴만한 이유가 있으리라 생각한다. 나의 작은 계획이 어떻게 완성될지 알 수 없지만 내가 할 수 있는 대안을 강구해 보려고 한다. 창고에 있는 폭이 8M에 길이가 40M가 되는 하우스 비닐을 아내와 함께 경사진 잔디밭에 깔고 바람에 날아가지 않도록 각목과 무거운 돌을 올려서 눌러놓았다. 땅이 녹아내리는 것을 막아보려고 말이다. 어쩌면 이번에도 수포로 돌아갈 수 있다. 하지만 설레는 맘으로 작업을 한다. 다행히도 계획된 촬영이 무사히 끝나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기대로 채운다. 

촬영일에 날씨는 좋아졌고 차는 시간에 맞춰 예정한 장소까지 무사히 차가 올라왔다. 언제 그랬느냐는 듯 하늘은 맑고 오히려 볕이 따갑다. 별다른 문제가 없을 것 같아서 내 개인적인 일정을 소화하며 지난 시간을 회상해 보았다. 모든 것이 새롭고 알 수 없는 미지의 시간을 위하여 우리는 생각하고 계획하고 준비를 한다. 목적과 기대를 가지고 일을 진행하지만 난관에 봉착하는 경우가 있다. 의도한 방향과 결과가 다를 때에는 맘도 상하고 힘들지만 그래도 그 일을 통하여 경험하고 배우고 깨닫게 된다. 별일이 없으면 스쳐 지나갈 일인데 우여곡절을 겪으며 만들어진 한 장의 추억이 새로운 마디로 맺히고 새순이 돋는다. 

작가의 이전글 딱새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