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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도경 Jun 05. 2016

무사 4대 문파와의 혈투

반무협(反武俠), 무협의 미학에 대한 안티테제

예전에 ‘극사실주의 무협영화’라는 제목으로 유행한 동영상이 있었다.

https://www.youtube.com/watch?v=bvLz3io7Usc


그 동영상은 바로 이 영화 ‘무사 4대 문파와의 혈투 (The Sword Identity, 2011)’의 마지막 결투 장면을 따온 것이었는데 실제 무술 고증까지 받았다고 하는 이 영화의 액션이 과연 리얼한가? 아닌가에 대해서 인터넷 상으로는 많은 설왕설래가 있기도 했다.

사실 이 액션에 대해선 이 영상 하나만을 가지고 말해서는 안 된다. 왜냐하면 이 영화의 액션은 영화가 표현하고자 하는 기치 ‘반무협(反武俠), 무협의 미학에 대한 안티테제’를 관객에게 이야기하기 위해 사용한 하나의 장치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이 영화는 무협이되 무협이 아니며 액션 영화이되 순수한 액션 영화라고 말할 수가 없다. 이 자체가 이미 모순된 표현이지만 그런 아이러니가 바로 이 영화가 관객에게 말하고자 하는 진정한 면이라고 필자는 생각해본다.

그만큼 이 영화는 반무협(反武俠)의 기치로 아래 만들어졌다.

 사실 중국 무협 영화라고 한다면 그 말을 듣는 순간 그에 대한 이미지가 사람들에게 바로 떠오를 만큼 그 클리셰가 각인되어 있을 것이다. 하늘을 날고 바위를 부수는 초인적인 힘과 액션, 그런 이든이 모인 문파, 문파와 강호, 무인 협사의 명예와 그 미장센 등등.

하지만 이 영화는 철저하게 이 앞선 무협의 클리셰를 부정하고자 한다.



군인이자 장군의 호위무사 출신인 주인공(실질적으로 군상극에 가까워서 이 한 명 만을 주인공이라고 보기는 어렵다고 보지만)과 동료(군대 교관) 이 둘의 목적은 이 지방의 규율대로 기존 4대 문파를 꺾고 새로운 자신의 문파를 세우는 것이다. 그에 대해 사대 문파는 실력으로 이기지 못하니 대신 활을 쏴서 공격하고 겁박한다. 그러면서 대는 핑계는 주인공의 독문 무기가 왜구의 칼(왜검)을 기본으로 한 것이기에 사악하다는 것이었다. 동시에 정정당당해야 한다는 말만 입에 담는다.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거기다 이들 중 최고의 고수 - 문파마저 내팽개치고 수련한다면 산에 칩거하고 있다가 다시 산에서 내려온 - 구대인은 어떤가? 끝없이 자신은 고수라는 것을 스스로에게 되뇌면서도 정작 자기 개인의 문제는 해결하지 못한다. 그는 진정 고수였으되 인생을 살아가야 하는 한낱 한 인간일 뿐이었다. 심지어 최고 고수인 그도, 이전에 무술은 배운 적도 없고 그저 주인공이 알려준 군대 진법을 배운 여인에게까지도 깨지고 만다. (그전에 이미 다른 문파의 제자들도 모두 깨진 지 오래였다.)

구대인의 칩거로 4대 문파의 수장이 돼 버린 다른 문파의 장문인은 자신이 뛰어넘고자 했던 구대인이 사라지자 그 후론 무술을 수련하지 못 한다. 구대인 칩거의 원인인 부인의 부정을 보면서도 그걸 내버려둔다. “형님을 웃음거리로 만들기 위해서였다.”라고 고백하는 그였지만 그럼에도 그는 구대인의 부인에게 “형님의 명예를 더럽히지 마라.”며 충고한다. 단순하지 않고 복잡하다. 모든 인생이 그러하듯이.



여기까지 보면 슬슬 ‘이게 진짜 무협 영화가 맞나?’라는 의문이 들기 시작한다.

무협이라고 해서 캐릭터가 모두 단순하다는 뜻은 아니다. 무인으로서의 복잡한 드라마가 아니라 인간으로서의 복잡한 드라마에 중점이 맞춰져 있다는 뜻이다. 이들에게 있어 무술은 그저 그냥 살아가는 것에 끼얹어진 하나의 요소일 뿐이었다. 그럼에도 버릴 수도 없고 영향을 받는다. 평생을 읽힌 무공조차도 간단히 익힐 수 있는 진법에 간단히 깨졌음에도 끝내 무공은 버릴 수가 없다. 이미 그것은 삶의 일부이기에.

주인공도 마찬가지였다. 그가 그런 핍박을 받으면서도 끝내 그 무기를 버리지 못하는 것은 무슨 이유였을까?

거기에 화룡점정은 가장 마지막 장면이었다.

결국 문파를 세우는 것을 인정받은 주인공이 두 자루의 검 중 한 자루를 문파를 세웠다는 증명으로 놓고 가게 된다. 그 하인이 그 검을 가져간 장소는 창고 한 구석, 다른 문파들을 상징하는 무기들 옆이었다. 어둡고 먼지 쌓인 거기에 검을 세워놓은 하인은 다시 문을 닫고 나가버린다. 이 장면이 상징하는 바는 참 많은 여운으로 다가왔다.



이 영화는 이러한 ‘아이러니’로 가득 차 있다. 그리고 철저하게 기존 무협에서 나왔던, 액션 미장센을 포함한 무협의 모든 미학을 부정한다. 그것을 위한 액션 시퀀스와 스타일이 바로 ‘극사실주의 무협영화’라고 퍼졌던 그 액션이었던 것이다.

(실제로 그 액션에서 서로 간합을 보며 계속 재는 형태는 중국 스타일이라기보단 일본 검도 대결 스타일에 가깝지 않나 싶다.)

이처럼 이 영화는 무협이 아닌 반무협의 기준으로 봐야만 제대로 맛을 볼 수 있으리라 본다. 무협에서 나왔으되 무협을 부정하는 반무협의 영화이기 때문이다.

오래간만에 색다른 재미를 준 영화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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