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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도경 Aug 08. 2017

일하기 전엔 몰랐던 것들

가장 절실하지만/한 번도 배우지 못했던 일의 경제학



현대 자본주의 체제 하에서의 '노동'의 개념과 그 실태에 대한 민낯을 경제학적인 관점에서 샅샅이 까발리는 책.

취직 전이거나 취직 후에 일을 하고 있는 사람(노동자)이라면 한번 읽어보기를 권합니다. 추천.


[주요 구절]


p29

공부를 잘한다는 것은 결국 지루함을 참는 능력이 뛰어나다는 의미라는 것이다. 이때 말하는 공부란 당연히 학부모들이 관심을 갖는 수험 공부를 가리키는 것이리라.

근데 산업사회, 더 정확하게는 자본주의 사회가 성립하면서 지루함을 참아내는 능력은 비단 공부하는 학생뿐 아니라 노동자에게 요구되는 덕목 가운데에서도 매우 중요한 자리를 차지하게 되었다.

비판적인 시각에서 묘사하자면 자본주의 경제란 가진 것 없는 이들에 대한 '위협'과 위협을 통한 '길들이기'라는 두 가지 키워드로 굴러가는 시스템이다.

위협. 일을 하거나 굶어 죽거나, 두 가지 '자유' 중에서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

길들이기. 만약 굶어 죽지 않기로 작정하였다면, 시키는 대로 고분고분 따라야 한다.

근대적인 대중교육은 바로 이러한 '길들이기'라는 측면에서 매우 중요한 역할을 수행하는 제도다.


p32

근대성이라는 말에는 '기술의 근대성'뿐만 아니라 '해방의 근대성'이라는 구성 요소도 포함된다. 흔히 한국 사회에서 산업화와 민주화라는 두 가지 중요한 목표, 가치를 말하고는 한다.

산업화는 과작 기술의 진보, 생산력의 발전, 근대적 계약 등 바로 기술의 근대성을 의미한다.

민주화는 보편적 인간 권리의 신장, 인간에 대한 갖은 억압의 철폐 등을 담고 있는 해방의 근대성을 가리킨다.

기술의 근대성에서 중요한 한 가지는 시간 약속을 잘 지키는 것이다.


p35

수십만 명이 한 날 한시에 모여 치르는 수학능력시험의 점수를 철저하게 서열화한 대학에 진학하는 근거로 삼는다. 영어를 사용할 일이 거의 없는 직장에서조차 신입사원을 뽑을 때 토익점수를 선발 기준으로 삼는다. 이는 모두 지루함을 견디는 능력, 통제하기 쉬운 사람을 뽑는다는 같은 원리를 기반하고 있는 셈이다.

결국 노동력이 만들어지는 첫 과정, 그것은 지루함을 견딜 수 있는 능력을 키우는 것에 다름 아니다.


p49

'돈을 많이 받는다고 해서 노예가 아닌 것은 아니다. 


p90

한국에서 '자기 노동의 착취'가 가능한 중요한 이유는 그 시간 동안 돈을 벌 수 있는 다른 기회가 없기 때문이다.

영세 자영업자의 '죽도록 일해서 겨우 먹고살기'는 별다른 대안이 없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이루어지는 선택의 결과다. 


p104

위험에 대한 태도는 개인의 유전자나 성격에도 기인하겠지만 좀 더 근본적으로는 사희의 구조적 환경이 어떻게 변화하는가에 따라 결정된다.


p107

시장경제의 본질적 원리는 바로 모든 사람들이 자유롭게 모험을 하고, 성공이건 실패건 그 결과는 철저하게, 때로는 처절하게 스스로가 책임져야 한다는 데 있다.


p119

임금이 생산의 기여분에 정확하게 비례하는 것이라고 보기 위해서는 두 가지 전제 조건이 필요하다.

첫째. 노동자 한 명 한 명이 생산에 기여한 바를 객관적으로 측정할 수 있어야 한다.

실은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

둘째. 노동자의 기여와 생산된 가치가 같은 시간 지평을 가지고 움직여야 한다. 쉽게 말해 노동자가 오늘 하루 여덟 시간 동안 일했다면 그는 오늘 하루 동안 생산된 생산물에만 기여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만약 노동이나 생산이 시간에 걸쳐 누적되는 성격을 가지고 있다면 이렇게 말하기는 어렵다.


p127

약간 과장해서 말하자면 인류가 얻어낸 과학기술의 대부분은 애초에 두 가지 목적과 의도에서 비롯되었다. 하나는 전쟁, 누군가를 효율적으로 죽이기 위한 목적, 다른 하나는 노동통제, 누군가를 효율적으로 일 시키기 위한 목적이다.


p140

저소득-장시간 노동이 존재하는 다른 이유 한 가지를 더 들자면 소비자들이 자신의 편익을 극대화하고자 한다는 것. '톨레랑스(tolerance)'가 매우 작다는 사실이다.


p156

노동은 무엇보다도 먹고살기 위한 수단이다. 밥 벌어먹고 살 수 없는 '짓'은 노동이라 불리지 않는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대부분의 사람들은 일을 하고 대가로 돈을 받아 자신의 일할 수 있는 능력을 유지한다. '노동력의 재생산'이라는 경제학적 개념이 바로 그것이다.


p181

한국의 서비스업이 선진국에 비해 낮은 가격으로 버틸 수 있는 데는 앞에서도 말했듯이 '죽도록 일해서 겨우 먹고살기'를 선택할 수밖에 없는 수많은 연세 자영업자들이 있기 때문이다.


p183

따라서 우리가 이나마 살 수 있는 것은 동시대를 살고 있는 다른 누군가가 희생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말할 수 있다. 뒤집어 말하자면 한국 사회에서 소득 수준이 그다지 높지 않은 사람들도 어느 정도 버티고 살아갈 수 있게 해주는 장치 중 하나가 바로 저렴한 서비스 가격이라는 이야기도 된다.


p258

경제학에서 말하는 소득분배의 '슈퍼스타 이론'은 이제 거의 모든 분야에서 관철된다. 슈퍼스타 이론이란 같은 분야에 종사하는 사람들 중에서 최상층부의 슈퍼스타에게만 소득이 집중되는 현상을 가리킨다.

슈퍼스타 현상이 생겨나는 이유는 간단하다. 그 산업이나 직종에서 몇 안 되는 슈퍼스타들만으로도 수요를 충족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누구나 슈퍼스타가 될 수 있는 환경이 갖추어졌지만 그렇다고 아무나 슈퍼스타가 될 수는 없다.

얼핏 조화로워 보이는 완전경쟁의 세계, 그 뒤에는 지독할 정도로 불평등한 세계가 존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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