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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흥미 Jan 29. 2023

인생의 제동장치

흥미 회복기


흥미는 잃었지만 자본주의 사회에서 일은 해야겠고, 누구나 그렇듯 나 또한 커리어 공백이 생기는 것이 두려웠다. 마음속에 퇴사 결정을 하고 이직 준비는 틈틈이 하고 있었지만, 지칠 때로 지쳐버렸던 시기에 준비가 잘 됐을 리는 만무했다.

귀하에 역량은 실무에서 평가받고 싶었는데요...


이직 준비의 결과는 당연히 좋지가 않았고, 귀하가 보유한 역량만 높게 평가받는 것에서 만족을 해야 했다. 사실 취업 혹은 이직을 준비하면서 탈락과 결과 통보는 비일비재하기에 차분하게 받아들이는 것이 다음을 위해 좋다. 하지만 심적으로 지쳐있는 상태라 그런지 요 근래 받았던 탈락 문자는 꽤 내적 충격이 있었다. 하루라도 빨리 이직을 해서 새로운 경험을 통해 흥미를 찾아보려 했던 계획은 실패했고, 준비를 너무 성급하게 했나 라는 생각이 들어 이직 준비는 잠시 뒤로 미뤄두고 반 강제로 쉼의 시간을 보내게 되었다.




다만, 아무 생각 없이 쉬고 싶진 않았다. 쉼 자체가 나쁘다는 건 아니지만 나는 지금 아무 생각 없이 쉬기보단 나의 흥미를 찾아 작은 보폭이라도 한 걸음 나아가는 게 필요했다. 하지만 방법을 몰랐고 가만히 앉아 방법만 찾고 있자니 우울한 마음이 들어 오랜만에 TV를 틀었다.


쉬는 동안 나의 아저씨, 나빌레라, 유퀴즈와 자주 시간을 보냈다.


위로를 받으며 많이 울기도 했고 공감도 했다. TV라는 매체를 딱히 좋아하지도 않았고 때로는 부정적인 생각이 있었다. 늘 회사 아니면 컴퓨터였고 가만히 누워 바라본 TV는 거의 5년 만인 것 같다. 나 스스로 마음속에 쉼을 찾으니 전혀 계획에도 없었던, 예상하지 못했던 곳에서 큰 위로를 받고 다시 나아갈 용기를 얻었다.


나의 아저씨 8화에, 구조기술사가 직업인 동훈과 지안은 아래의 대화를 나눈다.

동훈 : (건물의 설계 구조처럼) 인생도 어떻게 보면 외력과 내력의 싸움이야. 무슨 일이 있어도 내력이 있으면 버티는 거야.
 
지안 :  인생의 내력이 뭔데요?

동훈 : 다들 평생을 뭘 가져보겠다고 고생 고생하면서 ‘나는 어떤 인간이다’라는 걸 보여주기 위해서 아등바등 사는데 뭘 갖는 건지도 모르겠고, 어떻게 원하는 걸 갖는다고 해도 나를 안전하게 만든다고 생각했던 것들에, 나라고 생각했던 것들에 금이 가기 시작하면 못 견디고, 무너지고, 나라고 생각했던 것들, 나를 지탱하는 기둥인 줄 알았던 것들이 사실은 내 진정한 내력이 아닌 것 같고 그냥, 다 아닌 것 같다고


쉼의 시간을 갖는 것이 내심 두려웠던 나는 동훈의 대사를 듣고 깨달았다. 견고한 내력이 없다면 어떤 근사한 외력이 있어도 무용지물이라는 것을. 성급하게 만든 내력은 금방 무너지는 모래성과 다름이 없다는 것을. 시간이 걸리더라도 단단하게 설계된 내력이 현재 나 자신에게 가장 필요하다는 것을.


나는 지금까지 힘듦을 들어내지 않으려 어설프게 아등바등하며 행복했었나. 혹은, 겨우 이만큼의 힘듦으로 애써 포장하고 연기하면서, 상대방을 진심으로 대했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었나. 인생의 제동장치를 걸어두고 내력을 더 견고하게 설계하기 위해 내가 가장 먼저 찾아야 할 것은, 내 안의 힘듦을 직면하는 '용기'와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나 자신에 대한 '포용'이 필요하지 않을까.


나는 알고 있다. 내가 지금까지 지켜왔던 흥미가 나에게 얼마나 큰 가치를 안겨 주었는지를. 어떤 큰 충격이 와도 흔들리지 않도록 나를 지켜준 기둥이라는 것을. 잠시 금이 갔을 뿐, 절대 약하지 않은 내력의 존재라는 것을.




나는 지금 인생의 제동장치가 필요하다.

내력을 더 견고하게 설계하기 위해, 잃어버린 흥미를 되찾기 위해.


출처 : tvn 나의 아저씨 16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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