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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흥미 Feb 26. 2023

흥미를 찾아 떠나는 과거 여행

흥미 회복기

어머니께서 항상 어떤 사람을 만나든 어떤 일을 맡게 되든, 포기하게 되는 순간이 오더라도 마지막은 꼭 유종의 미를 거둬야 한다고 귀에 못이 박히게 말씀을 하셨다. 그래서인지 ‘유종의 미’라는 단어는 내 삶에 절대 까먹지 않는 태그 중 하나이다.


퇴사를 할 때 즈음, 쉼이 너무나 간절했다. 너무도 지쳐버린 나의 모습을 적나라하게 보고 있었지만, 순간의 감정은 잠시 뒤로 하고 그 어느 때보다 차분하게 퇴사를 말씀드렸다. 어떠한 흥미도 열정도 없었지만, ‘유종의 미’를 거두기 위해 남은 개인 업무들과 동료에게 전달해 줄 인수인계를 준비하고 있었다.


퇴사를 말씀드린 뒤,
정확히 3개월을 더 회사에 남아 있었다.


내가 생각하는 이상으로 많이 힘들었나. 퇴사를 한 후에 어떠한 흥미도 열정도 남아 있지 않았고 힘들고 지쳐있던 마음을 가다듬기 위해 친할머니가 계시던 충남 시골로 도망치듯 향했다. 나는 그곳에서 내 속에 많은 생각들을 꺼내보다가 할머니 댁에 있던 내 어릴 적 사진들을 발견하였고, 의도치 않게 과거 여행을 떠났다.


본인이 미술 천재인 줄 알고, 미술 관련 대회는 손부터 들던 어린이
8살부터 포트폴리오가 있었던 어린이


돌잡이 때 고사리 손으로 잡기도 힘든 스케치북을 잡은 어린이(돈을 잡지 않은 불효자). 늘 그림을 그리는 것에 큰 흥미가 있었고, 꿈이 다양했던 어린이보다 한 가지 꿈에 큰 행복을 느끼는 어린이. 미술 천재 같다는 주변 어른들에 과한 칭찬을 들으며 빨리 어른이 되어 미술로 전 세계를 평정하고 싶어 하던 어린이. 대학 입학을 앞두고 고2 입시 생활을 시작하며 온갖 눈물 콧물 다 흘리며 좌절의 순간이 많았지만, ‘나에게 그림은 나의 모든 열정을 할애해도 좋을 만큼 가치 있는 일'이었다는 것을 결국 의미 있게 배운 남자 어린이 한 명을 나는 다시 마주했다.


너무도 즐거워 보였던 어린이.



사실, 나는 지난 과거를 회상하는 것을 그다지 좋아하진 않는다. 과거 기억은 미련이 남거나 미화되는 경우가 많고, 그로 인해 현재를 충실히 못 살아가고 현실에 불만스러운 마음만 담기는 것 같기 때문이다.


하지만, 내가 가진 흥미를 찾아야 할 때는 과거로 돌아가는 것도 좋은 방법이 될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내가 지금 현재 어떤 흥미가 있지? 가 명확히 떠오르지 않는다면, 과거로 돌아가 “내가 무엇을 좋아했었지? 나무로 칼을 만드는 것을 좋아했나? 축구를 좋아했나? 혹은 잠깐 배웠던 기타를 좋아했나?” 잠시 예전 기억을 더듬어 가다 보면, 현재의 무기력을 이겨낼 수 있는 힘을 과거에서 발견할 수 있다.


나는 과거에서 보았다.

내가 얼마나 열정이 있었고, 진심을 다했는지를.

흥미를 진정성 있게 대하던 어린이를.


그림 하나에 진심을 다하던 어릴 적 나의 모습을 마주했을 때 왠지 창피한 마음이 들었다.

작은 어린이의 열정과 진심을 너무 쉽게 잃어버리고 방치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어른으로서 부끄러웠다.


내가 지금 어른이라면, 어른이 되고 싶다면, 어린아이의 꿈을 이뤄주진 못하더라도 최소한 짓밟지는 말아야 하지 않을까.


과거에 머물고 있던 작은 어린이의 열정과 진심을 다시 현실로 이끌어오자.

어른으로서 책임감을 갖고.




아참.

잊고 있던 흥미를 찾아 떠나는 과거 여행은 1년 365일 모든 게 무료다. (코로나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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