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영 소설가] 지금 당신에게 가고 있답니다

소설가의 에세이_초고를 쓰는 일

by ARKOMUNHAK
지영_배너.jpg



1.

한글 파일에 ‘초고를 쓰는 일’을 입력하고는 가만히 있었다. 무얼 써야 할지 도통 떠오르지 않았다. 며칠간 진척 없는 화면을 노려보다가 초고의 뜻마저 아리송해져서 검색도 해봤다. 표준국어대사전에 따르면 초고는 다음과 같다.


① 초고(草稿), 초벌로 쓴 원고.

② 초고(礎稿), 퇴고를 하는 바탕이 된 원고.


①번 초고의 草에 ‘풀’ 말고 ‘처음’과 ‘엉성한’의 뜻도 있고, ②번 초고의 礎에 ‘주춧돌’과 ‘기초’의 뜻이 있음을 염두에 두고, 초고를 ‘처음이라 엉성하나 그럼에도 주춧돌 같은 기초에 해당하는 원고’로 이해해 보려고 했다. 하지만 이 역시 선명한 기준을 세우기 어려운 표현이기에 여전히 초고가 뭔가 싶다.

사실 내게는 ‘초안(草案)’과 ‘초고’를 구분하는 일도 쉽지 않다. ‘초를 잡아 적’거나 ‘애벌로 안을 잡’은 글과 초벌로 쓴 원고를 분명하게 구분하는 일이 가능할까. 생각하고 끄적이다 보면 초안과 비슷한 것이, 또 생각하고 쓰다 보면 초고와 가까운 것이, 또 생각하고 고치다 보면 원고가 완성될 거다. 그러니 칼같이 구분할 필요가 있나 싶지만, 지난여름 내게 초안과 초고의 기준을 세우는 일은 꽤 중요했다.

이 글만 진척이 없을까. 지금 붙들고 있는 장편 소설 ‘M’―나름 괜찮다고 자부하는 제목이 있으나 여기서는 M으로 부르겠다―도 그렇다. 어느 가을날, 머리카락이 단발로 싹둑 잘려 나가는 순간 나는 긴 머리 히피펌이 하고 싶어졌다. 그래서 다시 기른 머리카락이 어깨에서 한 뼘 더 자랐을 때였다. ‘뽀글뽀글 볶으면 짧아질 테니 조금 더 길러 보자. 그쯤이면 M의 초고도 나오겠네. ……그럼 히피펌은 선물이지!’ 나는 ‘지영이 지영에게 주는 선물 전달식’을 종종 갖는데 그렇게 초고 기념 선물이 결정됐다. 그날 이후 부스스한 머리를 매만지며 속삭이곤 했다. 지영아, 뽀글뽀글 컬이 갖고 싶니? 초고를 완성하렴.

일사천리로 초고가 나올 리는 없었다. 제자리를 맴돌기는커녕 수시로 뒷걸음질 치는 원고를 두고 나는 대체 어느 정도 쓰여야 초고라고 부를 수 있을지 고민했다. 타협의 욕구도 스멀스멀 올라왔다. 그냥 초고라고 치고 머리 볶으러 갈까. 하지만 지영아, M을 보렴. 밑줄이 그어지고 갖가지 색으로, 또 굵게 처리된 부분이 보이니? 메모는 200개가 넘게 있는걸. 밑줄과 색과 볼드가 두세 개씩 적용된 부분들, 주렁주렁 달린 메모들(그런데 이건 무슨 의미야?, 무슨 말이 하고 싶었던 거니?, 이렇게 진행되는 게 맞니?, 나는 모르겠다, 다시 고민!), 초고의 정의를 명확하게 내릴 수는 없지만 나와 나누는 대화가 마무리되지 않은 글은 분명하게도 초고가 아니었다.


2.

입시 지원 조교를 하러 가던 겨울 새벽길에 나는 긴장했다. 전에 음대 입시 조교를 할 때 피아노 연주곡의 같은 부분을 반복적으로 들으며 졸음과 싸워야 했기 때문이었다. 다행히도 미대 ‘조소’ 전공에 배정됐고, 초등학생 때 만지작거린 게 전부였던 점토에 호기심이 생기기도 했으니 기우였다.

오래전 기억을 더듬어 본다. 주제가 공개되자 30여 명의 수험생이 잠시 침묵하더니 이내 슥슥슥, 종이와 연필이 맞닿는 소리가 수험장을 채운다. 제시된 주제를 해석하고 종이에 드로잉을 한 후 와이어로 프레임을 만든다. 뼈대를 잡은 후 거기에 점토를 붙이고 만지작거리니 새벽 어스름에 저만치서 걸어오는 사람 같은 윤곽이 잡힌다. 점토를 떼고 덧붙이고, 다시 만지작과 만지작을 거쳐 굴곡과 표정과 질감과 명암을 섬세하게 다듬으니 어느덧 한 사람이 선명하게 나타난다. 그날 소설가 지망생에게 조소 모델링은 소설을 쓰는 과정과 닮아 보였다.

그때도, 지금도 나는 소설을 쓸 때 먼저 어떤 이야기를 쓸지 고민하고 서사의 뼈대를 세운 다음, 큼지막하게 살을 붙여 나간다. 내용과 흐름이 얼추 정리됐다 싶으면 본격적으로 쓴다. 사족인 부분은 지우고 덧붙여야 하는 부분을 채운다. 서사가 자연스럽게 진행되는지 확인하며 문장을 매만진다. 얼마간 거리를 둔 후에 수정과 수정을 거치면 한 편의 소설이 ‘일단’ 완성된다. ‘또’ 얼마간 거리를 둔 후에 재차 수정과 수정을 거쳐야 부족하나마 탈고, ‘완(完)’에 도달한다.

소설 쓰기를 조소 모델링에 빗대자면 주제 해석과 스케치는 ‘구상하기’, 와이어로 프레임 잡기는 ‘초안 작업’, 점토로 전체 윤곽 잡기는 ‘초고 작업’, 섬세하게 다듬는 과정은 ‘퇴고하기’, 완성은 ‘탈고하기’로 정리해 볼 수 있을 듯하다. 이 글의 주제는 ‘초고를 쓰는 일’, 그렇다면 나는 와이어 프레임 위에 점토를 붙여 윤곽을 잡는 일에 관해 쓰면 된다. 잠깐, ‘윤곽을 잡다’의 기준은 또 어찌 세우려고. 글을 쓰는 일은 규격화나 수치화가 가능하지 않다. 내가 정의한 초고와 타인이 정의 내린 초고가 같을 수 없으니 단일한 기준을 세우는 일은 무의미하다 싶다. 그러나 선물이 걸려 있기에 그때의 내게는 중요한 문제였다.


3.

생각하고 쓰다가 막막해지면 노트북을 덮는다. 내가 썼음에도 나도 모르겠는 인물의 마음과 서사의 전개 앞에서 종종 도망친다. 도망자는 책을 읽고 영화나 드라마, 다큐멘터리를 본다. 무작정 걷기도 한다. 짧게는 몇 시간, 길게는 며칠간 이어지는데 ‘데이비드 호크니(David Hockney)’의 책을 읽은 날도 얼핏 보면 소설 같은데 소설의 옷을 다 걸치지 않은 게 금세 티가 나는 M에게서 나흘째 도망 중이었다.


그림이 진척된다는 것은 어느 날 아침 일어나서 오늘은 더 그리리라 결심하는 것이 아니다. 작업은 매우 점진적으로 이루어지고, 되돌아볼 만한 시기가 될 때까지는 진척되고 있다는 사실조차 인지하지 못하기도 한다.

―p.111, 데이비드 호크니, 『데이비드 호크니, 무엇이든 예술이 된다』


‘영국 팝아트의 전설’, ‘현대미술의 거장’으로 불리는 분도 작업이 진척되지 않는다고 느끼는데 내가 뭐라고 쭉쭉 나아가겠나. M이 초안과 초고 어디쯤에서 갈팡질팡하는 건 당연하다. 그러니 오늘 선물 전달식을 열자. 그렇게 결정하고 미용실로 향했다. 원하는 대로 될 리가 있나. “손님, 죄송하지만 추천하지 않아요. 히피펌을 하기에 손님 머리는 너무 길고 숱이 많아요.” 헤어 디자이너의 말에 동의할 수는 없었다. 숱이 많다니요? 초안과 초고 사이에서 얼마나 많은 머리카락의 유실이 일어났는지 아십니까? 하고픈 말을 삼키고, 그래도 조언은 따르기로 했다.

다음 날 아침, 그가 최선을 다해 ‘히피펌은 아니지만 뽀글뽀글하게 말아준 컬’에 에센스를 듬뿍 바르고 책상에 앉았다. 도망치는 일은 줄이고 M이 진척을 보이든 말든 한글 파일과 일체가 되기로 결심도 했다. 마음을 다잡자 첫 순간이 떠올랐다.


4.

첫 순간이 생생하게 남은 소설들이 있다. 미얀마 여행 중 기차에서 눈물이 쏟아져 펑펑 울다가 ‘기차에서 우는 사람들’ 얘길 써야겠다 싶어 시작한 소설이, 홍콩행 비행기를 타지 못한 날 책상 위에 올려둔 외장 하드를 떨어트린 바람에 몇 년간 모은 사진 데이터를 날리고 쓴 소설이 있다. 가끔 하던 상상들, ‘만약 모국어를 잃고 낯선 언어만 하게 된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와 ‘절체절명의 상황에서 타인을 위해 희생할 수 있을까?’가 엮이는 순간, 쓸 수 있었던 소설도 있다. 첫 순간이 문장으로 찾아올 때도 있는데 M이 그랬다.

5년간의 태국 생활을 마무리할 때였다. 좋아하는 곳이지만 당분간은 찾기 어려울 듯해 짐을 싸던 중 4박 5일 일정으로 방콕에 갔다. 달리는 차 안에서 창 너머 일상의 거리를 스치며 생각했다. 아침부터 부지런히 뜨겁다. 열대의 볕이 그렇지 뭐. 오늘도 기미와 잡티가 늘겠네. 그리울 거야. 벌써 그립다. ……고모는 소설가였다. 멍한 의식의 흐름 속에서 느닷없이 등장한 문장은 소설가였던 고모가 등장하는 소설을 쓰라는 계시처럼 느껴졌다.

좋아하는 미술관, 도서관, 카페, 식당에 가려던 계획은 무산됐고 호텔에 틀어박혀 나를 찾아온 문장을, 거기서 시작될 소설만 생각했다. 이내 뼈대가 세워졌고 윤곽이 잡혔다, 그렇게 쓰고 싶지만 그럴 리가 있나. 생각에 진전은 없었고, 그 핑계로 먹고 마셨다. 조식부터 차와 디저트를 제공하는 애프터눈 티, 각종 주류와 가벼운 안주를 즐길 수 있는 해피 아워가 포함된 패키지로 예약한 호텔이었다. 저녁마다 살짝 취한 채 나는 중얼거렸다.

“지영아, 써야 할 소설이 있으니 살아야 해. 그러니 취중 반신욕은 금지!”

그렇게 이틀을 보내고 한 번쯤 머물러 보고 싶었던 동네에 있는 게스트하우스로 숙소를 옮겼다. 거리를 걷다가 작은 갤러리에 들어가 로컬 화가의 그림을 보고 향에 홀려 자리 잡은 카페에서 커피를 마시고 현지인들로 분주한 식당에서 밥을 먹었다. 다시 걷고 걷다가 도서관을 발견했다. 사얌(Siam)에 있는 ‘William Warren Library’에 들어서자 ‘고모는 소설가였다’가 가야 할 길이 펼쳐졌다.

그날 끄적였던 메모는 이듬해 200자 원고지 146매의 단편 소설 M이 됐다. 쓰면서도 이건 장편으로 풀어야 한다 싶었으나 쉽게 시작할 수는 없었다. 다른 장편, 프레임에 덩어리가 잔뜩 붙어 있는 ‘열대의 방’과의 이별 때문에 M에게까지 신경 쓸 여력이 없었다. 3년을 붙들고 있었으나 완성된다 한들 독자는 물론 나에게마저 의미가 없을 듯한 소설의 작업을 이어가는 건 무의미했다. ‘열대의 방’에게 안녕을 고하고 새로운 길을 향해 떠나야 하나 쉽사리 그러지 못했던 건 머리가 결정한 일을 마음이 거부하고 있어서였다. 이런 내게 어서 오라며 그곳이 손 내밀었다.


5.

그곳에서 일상은 고요하고 단조로웠다. 일찍 일어나 아침을 먹고 작업하고, 점심을 먹고 근처를 산책하고 돌아와 다시 작업하고, 저녁을 먹고 책을 읽고 영화를 보고 잤다. 산책 코스는 남산 일대, 명동과 청계천, 종로와 서울역이었다. 후암동, 연남동, 혜화동까지 걸어가 커피를 마시고 오는 날도 종종 있었다. 장편을 향해 가는 M과 함께였으니 거리는 해체와 추가와 변형과 확장이 이루어지는 거대한 종이였고, 그리하여 일상은 소란하며 활기찼다.

눈이 펑펑 쏟아지는 날에는 커튼을 젖히고 침대에 누워 창밖을 바라봤다. 일정한 속력으로 내리는 듯한 눈이 실은 미묘하게 달리 내려와, 또 각자의 시간으로 녹는 것을 보고 있으니 생각이 밀려왔다. 소설을 쓰겠다며 하던 일을 정리하고 한국으로 돌아와서 무얼 했나. 길고 짧은 소설들을 생각하고 썼어, 그렇게 말하고 싶으나 대부분은 누워 있었지. 누워서 ‘열대의 방’과 이별하고 있었지. 미완의 상태에서 이루어진 이별이니 실패라고 자책했지. 하지만, 돌이켜 보면 필요한 시간이었다. 먼 데서 돌아온 나를 돌보고, 붙잡고 있던 소설과 헤어지고, 새로운 소설의 싹을 틔웠으니 말이다. 그러니 이제 또 다른 ‘완’을 위해 나아가면 되지 않나. 눈이 그칠 때쯤 나를 다그치던 마음도 함께 녹는 듯했다. 그러니까 그곳에서 나는 M의 프레임을 세우고 뭉툭하게나마 윤곽을 잡아가면서, 미완의 소설과 이별하고 잔뜩 헤진 마음도 돌봤다. 호텔 프린스 505호를 떠올리면 눈 내리던 밤, 창가 너머를 바라보던 내가 떠오르는 이유다.


6.

시간이 흘러 잔잔한 물결과 비슷해진 컬을 매만지며 M의 첫 문장, ‘고모는 소설가였다’를 되뇌어 본다. 호크니가 맞았다. 지리멸렬하다 싶었으나 몇 번의 계절을 지나는 동안 M은 자랐고, 조만간 초고와 퇴고 사이에서 힘겨루기할 수 있을 정도다. 이쯤에서 내가 할 일은 밑줄과 색과 볼드와 메모를 덜어내는 것, 풀처럼 이리저리 흔들린 지난날은 내게만 보였으면 한다.

내게 있어 소설이 초고에 가까워진다는 건 선명하게 드러난 나를 덜어내고 등장인물에 집중하는 일이다. 내 투명도를 높이고 내게서 멀어지는 일이다. 당신이 비치게 하고 당신을 향해 가며, 마침내 내 소설에 당신이 머물 자리를 넓히는 일이다. 그렇다고 초고에 내가 없진 않다. 나는 여전히 여기저기 가득하다. 그뿐일까. 문장은, 비문은 물론 불필요한 수식으로 둘러싸여 있고 묘사의 디테일은 부족하며 서사는 모순적이다. 고치고 다듬을 시간이 있어 다행이다.

퇴고하기 전, 나와 M 사이의 거리를 확보하고 객관적인 시선을 갖출 준비를 할 때쯤 머리를 짧게 자르려 한다. 이 글을 끝내고 미용실로 뛰어갈 수도 있다. 한 움큼씩 빠지는 머리카락을 보면 당장이라도 댕강 자르고 싶기도 하니까. 아, 갈팡질팡은 원고 안팎에서 일어난다. 다시 호크니가 등장할 차례, 그는 이렇게도 썼다.


때로는 옆길로 샜다가 막다른 골목을 만날 수도 있다. 그러면 그냥 그 작은 모험을 그만두고 다시 원래 가던 길로 돌아와 가면 된다.

만약 막다른 길을 만나면 그저 다시 뒤로 공중제비를 돌아서 가던 길을 가면 된다.

―같은 책, p.111


오늘도 M에서 전체 서사와 어울리지 않는다 싶어 에피소드 하나를 몽땅 덜어냈으니 낮은 벽을 마주한 셈인데, 이럴 때 내 오랜 바람인 ‘벽을 차고 날아올라 날리는 니킥’을 결합한 공중제비를 돈다. M이 초고와 퇴고 사이, 퇴고와 탈고 사이를 갈팡질팡하는 동안 얼마나 자주 옆길로 새고 막다른 골목에 들어서게 될까. 도망치고 싶으면서도 계속 나아가는 이유는 만남을 꿈꾸기 때문이다. 면면히 골목을 돌아 나오고 공중제비를 돌며 ‘엉성’에서 ‘완’을 향해, 마침내 당신에게 가고 있는 M을, 그러니 조금만 기다려주시길.



지영_프로필.jpg

지영

장편 소설 『사라지는, 사라지지 않는』, 앤솔러지 『귀하의 노고에 감사드립니다』, 『어제를 기억하는 여덟 개의 방식』, 『킬러 문항 킬러 킬러』가 있다. 5·18 문학상 신인상, 수림문학상을 수상했다.

작가의 이전글[서진 소설가] 미발표작이 나를 구할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