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TBC <싱어게인>을 통해
우리 사회는 지나친 경쟁으로 지쳐 있다. 학교는 다양한 것을 배우고 경험할 수 있는 장을 넘어 점수와 등수라는 숫자로 가득한 전쟁터로 묘사된다. 그중에서도 최고봉으로 꼽히는 전쟁 ‘수능’을 치르고 성인이 되어도 달라지는 것은 없다. 결국, 사회로 나와 무엇을 하든 우리는 경쟁과 등수를 피할 수 없다. 이러한 과열된 경쟁과 등수는 자연발생적이 아닌 사회가 낳은 인위적인 산물이다. 물론 경쟁 그 자체는 나쁜 것이 아닐뿐더러 필요하기도 하다. 경쟁은 한정된 재화를 효율적으로 배분할 수 있는 방법일 뿐만 아니라, 개인을 성장시키는 원동력이 될 수도 있다. 하지만 무엇이든 지나치면 독이 되고 해롭기 마련이다. 우리 사회가 지나친 경쟁의식으로부터 탈피해 건강한 경쟁사회로 거듭날 수 있는 해법을 우리는 어디에서 찾을 수 있을까?
그 해법을 우리는 방송국 예능 프로그램에서 찾을 수 있다. 모바일 플랫폼을 기반으로 하는 1인 크리에이터부터 OTT 서비스 회사를 넘어 방송국까지, 한국에는 다양한 콘텐츠 제작자가 존재한다. 그중에서도 보다 넓은 대중을 대상으로 제작되는 방송국 예능 프로그램이 가진 힘이 충분히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 예능 프로그램은 우리 사회의 단면을 비추는 거울이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단순히 비추기만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우리 사회의 모습이 예능 프로그램 속에 녹아들고, 그것을 시청하는 우리는 그것을 또다시 답습한다. 우리는 예능프로그램으로부터 무의식적으로 사회의 문화와 모습을 내재화한다.
전 국민이 열광했던 슈퍼스타 K와 위대한 탄생 그리고 K팝 스타부터 쇼미더머니, 프로듀스 시리즈 등 수많은 오디션 프로그램들이 제작됐다. 우리 사회에서 경쟁 그리고 승자와 패자는 없어서는 안 될 시스템이었고, 이것은 예능 프로그램을 통해서도 여실히 드러났다. 오디션이라는 경쟁 속에서 참가자와 평가자는 확실하게 구분되었고, 그들은 경쟁 시스템에서 더 자극적이고 과열되게 각자의 역할에 임할 것을 훈계받는다. 이러한 프로그램들이 대중적인 인기를 얻었다는 것은 우리가 그만큼 과열된 경쟁이라는 시스템에 익숙했다는 것을 방증한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은 무너지고 있다. 지나친 경쟁 속에서 유일하게 우리를 버틸 수 있게 해주는 버팀목은 ‘내 노력을 결과가 배신하지 않을 것’이라는 ‘시스템에 대한 믿음’이었다. 우리는 노력이라는 것이 ‘공정성이 담보된 평가’라는 하나의 블랙박스를 거쳐 결과물로 나온다 믿었다. 그러한 믿음으로 간신히 버티던 우리에게 프로듀스 조작 사건은 일종의 KO펀치로 작용했다. 굳게 믿고 있던 블랙박스 속에는 우리가 상상했던 장치들이 존재하지 않았던 것이다. 우리 사회의 단면을 어느 정도는 미화해 비춰주는 예능 프로그램에서조차, 그 이면에 우리가 기댈 곳은 없었던 것이다. 대중은 이제 지나친 경쟁으로 무장한 오디션 프로그램에 열광하지 않는다. 오히려 경쟁이라는 전쟁터에서 위로와 용기를 원한다. 어쩌면 경쟁 자체가 전쟁터가 되질 않길 바라고 있다.
결국 예능이 먼저 바뀌어야 한다. 사회의 모습을 비추고 재생산하여, 다시 사회에 영향을 끼치는 예능 프로그램에서 다행히도 이미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 그것은 바로 ‘힐링 오디션’이다. 바로 어제 종영한 JTBC <싱어게인>은 무명가수들의 오디션이라는 경쟁을 따뜻하게 풀어내 호평을 받고 있다. 무명생활로 힘들었을 출연진들은 다른 오디션, 경연 프로그램들과 달리 냉혹하고 힘든 서바이벌의 경쟁 속에서 살아남고자 발버둥 치지 않는다. 그들은 그동안 뽐내고 싶었던 자신들의 재능을 마음껏 대중에게 뽐내고, 심사위원들에게조차 지적과 냉혹한 평가보다는, 같이 음악을 하는 동료이자 선후배의 관계 속에서 조언과 따뜻한 응원의 말들을 선물 받는다. 프로그램 속에 등장하는 일련의 과정들은 시청자들에게 따듯함과 위안을 선물한다. 건강한 경쟁에 관해 <싱어게인>이 선물한 따듯함과 위안이 우리 사회에 어떤 영향을 만들어낼지는 이제 지켜봐야 한다. 이처럼 사회와 프로그램 간 순환의 고리에서, 예능 프로그램이 선순환의 스타트를 맡아야 한다. 지나친 경쟁으로 스트레스받던 우리 사회를 어루만져주고, 승자와 패자의 냉혹한 명암이 없는, 과정의 공정성이 담보된 건강한 경쟁의 모습을 만들어낸다면, 우리 사회의 지나친 경쟁의식 역시 건강한 경쟁으로 탈바꿈할 수 있을 것이라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