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일
안녕하세요. 문득 좋아하는 앨범에 실린 노래를 듣다가 생각이 났어요. 요즘엔 동네에서 음반 판매점을 흔하게 볼 수 있진 않아요. 하지만 제가 어렸을 때만 해도 동네에 한 군데 정도씩은 있었던 것 같아요. 초등학생이었던 저는 학교가 끝나고 작은 음반 가게에 들러 새로운 앨범이 뭐가 나왔는지, 좋아하는 가수의 앨범이 어떤 게 인기가 많은지 살펴보고 오곤 했어요. 그리고 용돈이 어느 정도 모였다 싶었을 땐 한 두 개씩 사기도 했답니다. 그리고 집에 와서 CD 플레이어에 넣어 틀어놓고 방에서 듣곤 했어요. 음원 사이트가 활발하게 이용되고 있던 시대였는데도 불구하고 말이에요. 저는 그게 재밌었습니다. 앨범을 사면 가사지와 곡들의 정보, 가수의 사진과 앨범의 분위기와 콘셉트 등을 총체적으로 볼 수 있고 그걸 일부분 소유하게 되는 느낌이어서 좋았던 것 같아요. 생각나는 일화가 하나 있는데, 학교가 끝나고 나서 친구들을 데리고 동네의 그 작은 음반 가게를 간 적이 있었어요. 친구들에게는 “내가 자주 가는 곳이야!”하고 말했었죠. 그리고 가게에 도착해서 저와 친구들은 이리저리 음반들을 구경하고 있었는데 그중 한 친구가 용감하게도 사장님께 가더니 저를 가리키며 “우리 친구가 여기 단골이래요!”라고 말을 걸었습니다. 저는 겉으로는 티가 잘 안나는 피부 유형이긴 하지만, 제 머릿속에서는 온몸이 다 새빨갛게 타오르는 기분이었어요. 어릴 적 저는 약간 소심했던 친구였기에 부끄러웠거든요. 그런데 그다음이 더 충격적이었습니다. 젊은 여자 사장님이셨는데, 저를 보고서는 “단골? 그 정도로 뭘 사가진 않았지.” 하고 건조하게 대화를 끝내셨던 거예요. 사장님은 별생각 없이 사실을 말한 걸 수도 있는데 저는 어린 마음에 무척이나 상처를 받았었답니다. 친구들 앞에서 민망하기도 했고, 그동안 이 가게를 들리던 시간들과 앨범을 좋아하던 마음이 무시받는 기분이었거든요. 어쩌면 가게에 어린아이들이 네다섯 명 들어와 정신이 없어 기분이 별로였던 걸 수도 있었겠죠. 학교와 집을 오가는 저에게 있어 나름의 기쁨이자 잠깐의 자유였던 음반 가게 들리기는 그 이후로 그만두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저는 나중에 어른이 된다면 친구가 단골이냐며 묻는 어린아이에게 웃으면서 그렇다고 대답해 줄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겠다고 마음을 먹었습니다.
그 이후로도 앨범을 좋아하기는 매한가지였어요. 고등학교 시절 야간 자율학습을 하느라 매일 같이 학교에 늦은 밤까지 남아있었는데, 집에서 노래 들을 시간이 없자 동그란 CD 플레이어를 챙겨 와서 들었거든요. 그걸 보고 제 친한 친구들이 저를 놀렸었답니다. 친구들이 저를 생각하면 바로 떠올리는 재미난 특징들 중 하나였어요. 모두가 핸드폰 어플을 통해 노래를 들을 때 저는 윙윙 거리며 돌아가는 플레이어에 CD를 넣고 이어폰을 꽂고서는 노래를 들으며 공부를 했으니까요. 아직도 그때 친구들을 만나면 요즘은 CD 안 듣냐며 농담하듯이 놀리곤 합니다.
저는 몇 달 전 이사를 했습니다. 그때 CD 보관함을 제 방에서 옮기는데, 꼬질꼬질하게 때가 탄 10년도 넘은 앨범들을 보게 됐어요. 이제는 저도 어플을 통해서 음악을 주로 듣고, 안 쓰는 것들은 짐이 되는 걸 알기에 한참을 버릴까 말까 고민했습니다. 중고로 팔아도 얼마나 나올지도 모르겠더라고요. 그래도 결국은 버리지 않았습니다. 버린다면 조금 더 쾌적하고 깔끔하며 여유 있는 공간을 집에서 활용할 수 있을 테지만요. 버린다면 저의 일부분을 잃어버리는 느낌이 들 것도 같아서 남겨놨어요. 나를 이루는 건 무엇일까. 사람은 무엇이 쌓이고 쌓여 만들어지는 걸까. 답은 어렵지만 쉬운 것 같아요. 어릴 적 덮어놨던 상자 안에 먼지 쌓인 추억과 애정도 그 하나겠지요. 그걸 다 잊고 잃어버리면서 살고 싶지는 않다고 생각을 했어요. 언젠가는 보관함을 버리는 날이 오기도 하겠죠. 그래도 남기고 싶은 한 두 가지 앨범만은 남겨두지 않을까요? 어릴 적의 저와 지금의 저는 사는 곳도, 머리 모양도 말하는 방식도 모두 달라졌지만 변하지 않는 게 있기는 하니까요. 어디로 흘러가는지 모를 하루하루를 살아가며 고요한 야자실에서 비틀즈의 목소리를 새겨듣던 늦은 오후처럼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