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기 방울

축제가 끝난 후 퇴근길

by 가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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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제가 끝난 후 모두가 집에 돌아가는 길이다

언제나 그렇듯 모두에 포함되지 않는 이들이 있다

정렬된 길을 뚫고 반대로 나아가는 것은 그 누구의 기대도 아니지만 가야 하는 것이다

그의 퇴근은 인파를 헤치고 나아가느라 오늘따라 고되다

하루의 끝마저 난데없는 이벤트 때문에 지치고 지루해졌다

나는 왜 이 일을 하게 되었으며 왜 지금 같은 복지를 주는 직장을 다니는가

그는 머릿속을 맴도는 질문을 길게 늘인 채 도로 감지 않는다


사람들에게 치이며 작은 건널목을 건넌다

그때 배달을 하는 오토바이가 사람들 사이를 지나간다

오토바이를 탄 배달 기사가 웃으며 죄송하다고 꾸벅 고개를 연신 숙인다

사람들은 그 자리에 멈춰 서서 오토바이가 안전하게 지나가길 기다려준다


그 장면이 그의 눈에 필름이 감기듯 새겨진다

지금 이 순간에도 하루의 페달을 차근차근 밟는 중인 누군가는 친절할 수 있다는 사실

그 친절이 퍼져나가 닿는 공기 방울마다 새로운 색을 입듯이

알고 있던 새로운 명제는 그의 가슴을 퍽 치고 지나간다


세상은 번져가는 공기 방울이겠다

아무도 모르는 새 깊은 바다에 빠져 아가미 가득 물을 들이마시고 싶던 심해의 남색 방울

태양빛 아래 시간이 가는 줄도 모르고 퍼져 누워 있던 느릿느릿한 활자의 라임색 방울

삶의 기전이 다른 방울끼리 만나 온도를 나누고 색을 나눈다


그가 오늘 마신 홍차는 오렌지 페코 등급이다

잘게 부서진 홍차 잎을 우리다가 몇 개가 바닥에 떨어졌다

그 잎을 줍다가 그는 손을 베였다

생각보다 깊게 찔렸는지 빨간색의 피가 슬그머니 고개를 내밀었다

그 고개를 꺾은 건 옆자리의 동료가 준 산리오 캐릭터 모양이 새겨진 네모난 밴드다

이내 빨간색의 리본이 달린 손가락이 되었다


그는 휘파람을 불듯 입술을 모아 공기 중으로 숨을 후 불어 본다

공기 방울들이 날아간다

저 위로 자유롭게 날아간 다음 다시 내려앉았을 때 그 땅의 얼굴에 입 맞추어

발그레 번져가는 복숭아빛 볼을 마주할 때까지 날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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